▲ 박희수와 정우람.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 올 시즌 두산의 키플레이어인 니퍼트와 김현수. 시즌 초반 두 선수 다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
이만수 감독은 시즌 전 풀타임 1년 차의 윤희상을 “10승도 가능한 투수”라고 칭찬하고서 “박희수와 정우람이 버틴 불펜진은 지난해와 비교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감독의 생각이 맞았다.
7번의 선발등판에서 윤희상은 퀄리티스타트(6이닝 3실점 이하)를 3번이나 거두며 3승 2패 평균자책 3.86을 기록 중이다. 공교롭게도 윤희상이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한 날, 팀도 승리하며 SK 선수들 사이에선 “윤희상이 6회까지 3실점 이하로만 막으면 팀이 이긴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박희수·정우람 카드는 SK 승리방정식의 핵심이다. 박희수는 팀이 치른 28경기 가운데 16경기에 등판했다. 박빙의 승부에선 어김없이 박희수가 나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실제로 SK가 승리한 16경기 가운데 박희수가 등판한 경기는 13경기였다. SK가 승리한 거의 모든 경기에 박희수가 등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풀타임 2년 차의 박희수는 3승 3패 11홀드 평균자책 0.84를 기록하며 ‘불펜 김광현’으로 불리고 있다.
정우람은 SK 투수진의 마지막 필승 카드다. 지난해까지 셋업맨으로 뛰었던 정우람은 팀 사정상 올 시즌 마무리를 맡았다. 1승 1패 7세이브 평균자책 2.92로 세이브 부문 4위에 올라 있다.
두산도 필승 카드가 제대로 들어맞는 팀이다. 시즌 전 두산 김진욱 감독은 타선에선 김현수, 투수진에선 외국인 선발 더스틴 니퍼트를 키플레이어로 꼽았다. 김 감독은 “두 선수가 살아야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도 가능하다”며 “혹여 두 선수가 다치거나 부진하기라도 한다면 올 시즌 우리 팀의 전망은 어둡다”고 털어놨다. 결과는 절망보단 희망이었다.
올 시즌 김현수는 타율 3할4푼7리, 13타점으로 3번 타자의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다. 타율 3할5푼7리를 기록한 2009년 이후 가장 좋은 출발이다. 특히나 김현수는 4할1푼의 출루율에서 보듯 안타 욕심을 뒤로하고, 팀을 위해 더 많이 출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득점권 상황에선 불꽃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득점권 타율 5할2푼4리만 봐도 그가 얼마나 찬스에 강한 타자인지 알 수 있다.
김 감독은 “김동주, 최준석의 컨디션이 다소 좋지 않은데도 두산 3, 4, 5번 중심타선 타율이 2할8푼8리로 삼성(3할1푼3리)에 이어 2위인 건 김현수의 분전이 큰 몫을 차지한다”며 “외야 수비에서도 김현수의 활약이 돋보인다”고 칭찬했다.
니퍼트의 활약은 더 인상적이다. 4월 7일 잠실 넥센 개막전에서 니퍼트는 6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5실점한 채 패전투수가 됐다. 당시 야구계에선 “한국 무대 2년차인 니퍼트의 투구패턴이 노출됐다”며 “지난해처럼 15승을 따내긴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니퍼트는 니퍼트였다. 이후 6경기에서 7이닝 이상을 던지며 2실점 이하의 완벽한 투구를 펼쳤다. 6경기 가운데 5번이나 승리를 따내며 삼성 미치 탈보트와 함께 다승 부문 1위에 올랐다. 시쳇말로 ‘니퍼트 등판=승리’ 공식이 굳어진 셈이다.
▲ 넥센 강정호가 홈런 단독 1위를 달리는 등 타격 전 부문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
▲ 정성훈. 사진제공=LG 트윈스 |
넥센은 시즌 전 점찍은 필승 카드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상위권 도약에 성공했다.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서 넥센 김시진 감독은 “3번 이택근, 4번 박병호는 제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한다”며 “5번 강정호만 2009년의 활약을 재현한다면 포스트 시즌 진출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현재 강정호는 김 감독의 기대에 120% 부응하고 있다. 타격 전 부문 최상위권을 점하고 있다. 타율 3할4푼3리로 이 부문 4위, 홈런은 12개로 단독 1위, 타점 역시 28개로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나 강정호는 그동안 지적됐던 ‘선구안이 좋지 않다’는 평을 무색하게 18개의 볼넷을 얻어내며 이 부문 6위에 올라 있다.
KBO리그에서 대표적인 슬로 스타터였던 강정호는 “최근 컨디션이 무척 좋다”며 “체력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타율 3할, 25홈런, 80타점 이상을 노려보겠다”고 말했다.
강정호가 개인 성적에만 몰두한다고 보면 오산이다. 강정호가 홈런을 친 11경기(4월 15일 경기는 2홈런)에서 넥센은 7번이나 승리했다. 강정호의 홈런이 승리로 직결됐다는 뜻이다.
LG는 4번 정성훈 카드가 들어맞은 경우다. 시즌 초 LG 김기태 감독은 “좌타자 일색의 타선에서 4번은 우타자가 맡을 필요가 있다”며 그 주인공으로 정성훈을 낙점했다.
당시 야구 관계자들은 4번 정성훈 카드를 부정적으로 봤다. 그도 그럴 게 지난해 정성훈의 홈런은 9개였다. 타점도 57개에 불과했다. 특히나 최근 5년간 그가 4번 타순에 배치됐던 건 단 8타석뿐이었다.
팀 내부에서도 “정성훈에게 극심한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차라리 이병규를 4번에 배치하는 게 낫다”라는 분석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김 감독의 전략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정성훈은 타율 3할1리, 8홈런, 20타점으로 LG 붙박이 4번 타자로 맹활약 중이다.
정성훈이 상대 팀 에이스에게 강하다는 건 큰 장점이다. 정성훈은 두산 김선우와 삼성 윤성환, 넥센 브랜든 나이트, 롯데 라이언 사도스키에게 타율 3할3푼3리, 한화 류현진에겐 5할, KIA 서재응과의 맞대결에선 10할을 기록하고 있다.
▲ 삼성 중심 타선 이승엽과 최형우.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필승 카드를 통해 승수를 쌓는 팀도 있지만, 반대로 필승 카드가 통하지 않아 위기에 빠진 팀도 있다. 대표적인 팀이 삼성이다. 시즌 초 삼성 류중일 감독은 “지난해 홈런왕 최형우가 이승엽 효과를 톡톡히 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니까 이승엽의 입단으로 최형우의 심적 부담이 확 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많은 야구해설가도 “이승엽이 3번을 치면 상대투수들이 이승엽을 피하느라, 4번 최형우와 맞대결할 게 자명하다”며 “그만큼 최형우에게 정면승부 기회가 자주 찾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최형우는 팀이 치른 30경기에 꾸준히 출전했지만,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전해 홈런왕이 다음해 120타석이 지나도록 홈런을 치지 못한 건 최형우가 유일하다. 게다가 지난해 3할4푼이던 타율도 2할로 뚝 떨어졌다. 주자 있을 때 타율도 2할1푼7리밖에 되지 않아 “최형우가 타석에 서면 찬스가 무산된다”는 악평을 듣고 있다. 최형우는 병살타 5개로 이 부문 1위이기도 하다.
최형우는 5번 타순으로 재배치됐지만, 여전히 타격감은 좋지 않다. 류 감독은 “조만간 슬럼프가 끝날 것”이라며 “최형우를 계속 중심타순에 배치해 타격감을 찾도록 배려하겠다”고 말했다.
KIA는 필승 카드가 ‘부상’으로 무너진 사례다. 시즌 전 KIA 선동열 감독은 “뒷문 강화를 위해 한기주를 마무리로 쓰겠다”고 밝혔다. 타선의 중심은 이범호에게 맡기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두 선수는 팀 성적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한기주는 시즌 초 3경기에 등판하고서 팔꿈치 통증으로 1군에서 제외됐다. 이범호는 시범경기 중 햄스트링 부상으로 아예 개막전부터 2군에 머물렀다. 두 필승 카드를 써보지도 못한 KIA는 블론세이브 4개와 팀 홈런 10개로,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뒷문이 약하고 장타력이 떨어지는 팀으로 전락했다.
선 감독은 “우리 팀 불펜진 평균자책이 5.38로 8개 구단 중 가장 높다”며 “한기주가 돌아와야 불펜진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범호와 관련해선 “2군 경기에서 충분히 컨디션을 조절한 만큼 1군에서 제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선 감독은 17일 2군에서 재활 중이던 양현종, 이범호를 1군으로 승격시켰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롯데와 한화
시즌 초 1위를 달리던 롯데는 필승 카드의 부진으로 중위권으로 밀려났다. 롯데의 기세를 꺾은 장본인은 외국인 투수 라이언 사도스키다.
2010, 2011년 2년 연속 10승 이상, 평균자책 3점대를 기록한 사도스키는 시즌 전만 해도 롯데 선발진의 핵이었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타이완리그 출신의 무명투수 쉐인 뉴먼을 믿기엔 부족함이 있다”며 “에이스 장원준이 빠진 만큼 나머지 선발투수들이 전해보다 2, 3승을 더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감독은 내심 지난해 11승을 거둔 사도스키가 13승 이상을 기록하길 바랐다. 그러나 사도스키는 올 시즌 7경기에 선발 등판해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2패 평균자책 6.00의 초라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피안타율이 3할3리에 이를 만큼 구위가 좋지 않다. 볼넷도 22개로 한화 양훈에 이어 리그 2위다.
양 감독은 “해마다 사도스키가 시즌 초엔 성적이 좋지 않았다”며 “더워질수록 제구가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양 감독의 낙관적 예상에 동감을 나타내는 야구전문가는 많지 않다.
제구는 잡힐지 몰라도, 사도스키의 구위가 지난해와 비교해 현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도스키와 두 차례 상대한 넥센 아무개 타자는 “컷패스트볼과 싱커의 꺾이는 각이 예전만 못하다”며 “속구 구속도 그리 인상적이지 못하다”고 평했다.
한화는 필승 카드가 필패 카드로 둔갑한 경우다. 시즌 전 한화 한대화 감독은 “스프링캠프 내내 내야진 안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 결과 유격수 이대수와 3루수 이여상의 수비실력이 상당히 좋아졌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스프링캠프에서 이대수는 지난해 골든글러브 유격수 수상자가 되면서 자신감이 충만해진 상태였다. 한화의 골칫거리였던 주전 3루수 자리를 꿰찬 이여상도 뭔가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시즌 10경기를 치른 4월 19일까지 한 감독의 기대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이대수는 타율 1할8푼2리로 부진했지만, 수비에선 실책 3개만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다. 3루수 이여상은 타율 3할3푼리, 실책 1개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그러나 두 선수의 선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4월 19일 이후 이대수는 타율을 2할5푼까지 끌어올렸으나, 실책 5개를 추가했다. 이여상은 타율이 1할이나 떨어졌고, 3루 수비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가뜩이나 두 선수의 수비실책이 팀 패배와 직결되며 한화 팬들은 “이대수, 이여상을 출전시키지 마라”고 강하게 요구했고, 코칭스태프는 궁지에 몰렸다. 결국 두 선수는 16일 2군으로 내려갔다.
한 감독은 “두 선수에게 팀 패배의 책임을 묻고자 2군행을 지시한 게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이대수와 이여상의 2군행을 통해 선수들이 ‘나 아니면 누가 있나’하는 안이한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무개 야구해설가는 “올 시즌 한화의 실책이 무려 31개나 된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실책성 플레이까지 포함하면 한화 수비진은 프로팀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실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덧붙여 이 해설가는 “한화는 실책뿐만 아니라 주루, 팀 플레이에서도 최악”이라며 “한화 내부에서 한 감독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되레 지난해 넥센처럼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감독을 재신임하는 게 장기적인 안목에서 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