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충남 천안시 상록리조트 그랜드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충남도당의 당대표ㆍ최고위원 선출대회에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 경선 후보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584명이 참여한 전남 경선은 더 참담했다. 이해찬 후보는 193표를 얻으며 4위로 밀려났다. 김한길 후보가 284표로 1위, 강기정 후보가 232표로 2위, 추미애 후보가 224표로 3위에 올랐다. 전남에는 이른바 ‘이해찬-박지원 연대’의 한 축이었던 박지원 원내대표의 지역구(목포)가 있고, 암암리에 박 대표 측의 조직적 지원이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후보의 성적표는 너무 초라하다.광주·전남에서 선전한 김한길 후보 역시 친노그룹의 일원인 김두관 경남지사의 보이지 않는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이 사실은 친노그룹에겐 전혀 위안거리가 못된다. 김 지사는 친노그룹의 방계일 뿐이다. 박지원 대표의 한 측근 인사는 “박 대표가 경선 관리자 역할을 맡고 있어 운신의 폭이 좁긴 했지만 박 대표의 조직이 이해찬 후보를 지원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오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이해찬 후보가 과거 국무총리 시절 호남 고속철도 조기 완공에 반대하는 등 호남의 반발을 살 만한 행적을 보였던 것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친노그룹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었다”고 전했다.
전남 지역 한 의원은 “호남의 친노그룹에 대한 불신은 참여정부 때부터 시작됐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경상도 사람 대통령 만들어줬더니 영남정권을 만들었다’는 정서가 퍼져 있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런 정서가 많이 사라졌었는데 이번 총선 과정에서 친노그룹이 호남을 홀대하는 것처럼 비쳐지면서 다시 반 친노 기류가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이번 경선에서 확인된 호남의 ‘친노 비토 기류’를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이유는 당대표 경선으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오는 7월쯤부터 시작될 대선후보 경선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친노그룹의 대표 주자로 나서는 문재인 상임고문에게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문 고문은 지난 2006년 이른바 ‘부산정권 발언’으로 호남의 반발을 산 전력이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 고문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신항 및 북항 재개발 등 정부로서는 할 수 있는 만큼 부산에 신경을 쓰고 지원을 했는데 시민들의 귀속감이 전혀 없다.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런 전력과 최근의 ‘친노 비토 기류’가 중첩될 경우 문 고문에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영남의 대선주자가 호남의 선택을 받아 대선에 나서는 ‘2002년 노무현 모델’을 따라가야 할 문 고문이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문 고문의 위기는 곧 그의 경쟁자들에겐 새로운 기회다. 호남의 ‘친노 비토 기류’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쟁 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문 고문과 마찬가지로 ‘2002년 노무현 모델’을 따라가야 하는 손학규 상임고문이 당장 수혜자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손 고문은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자신의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도 호남에 공을 들였다. 2010년 당대표 취임 후 전권을 휘두르지 않고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와 권력을 분점하는 모양새를 취했던 것도 호남의 마음을 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가 호남의 마음을 잡을 수만 있다면 문 고문과 비교도 되지 않는 당장의 지지율 열세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호남의 여론이 ‘믿을 건 우리 식구뿐’이라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기울 경우 정동영, 정세균 상임고문 등 존재감이 미미했던 호남 출신 대선주자들에겐 반전의 기회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호남에 만연했던 ‘호남 후보 필패론’이 폐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민주당 당대표 경선이 대선후보 경선의 역동성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박공헌 언론인
정체성 잃은 ‘용감한 녀석들’
그들은 이번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우상호·조정식·강기정 등 3명이나 도전장을 냈지만 이해찬·김한길·추미애 등 선배들에게 철저히 밀리고 있다. 초반 판세로 볼 때 당대표를 포함, 총 6명의 최고위원을 뽑는 이번 경선에서 이들 세 명 모두 당선권에 들어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저 ‘최고위원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세대교체’를 내걸고 호기 있게 출사표를 던졌던 그들의 목표가 아니었다. 또 ‘최고위원 한 자리’는 그들에게 희망을 걸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지지자들의 바람도 아니다.
지난 1996년 15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부터 민주당의 ‘젊은 피 수혈 전략’의 일환으로 영입되기 시작한 486그룹은 이제 민주당 내에서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선두주자였던 김민석 전 의원이 ‘철새 행보’와 비리사건 연루 등으로 이탈했지만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 등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들과 우상호 윤호중 최재성 강기정 조정식 백원우 등 1980년대 학생운동의 주역들은 재선·3선 의원 고지에 오르며 그 자리를 채웠다. 민주당 내 486그룹의 모임인 ‘진보행동’에는 30명에 가까운 전·현직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권에 도전하거나 최소한 당권을 쥐고 민주당을 이끌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이번 당대표 경선은 486그룹의 현주소가 이 같은 기대에서 한참 떨어져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울산·부산·광주·전남·대구·경북 등 초반 6개 지역 대의원 현장투표 결과 486그룹의 세 후보는 3위(강기정)와 5위(우상호), 6위(조정식)를 기록했다. 최고위원단의 절반을 486그룹이 차지할 수도 있는 만큼 선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이처럼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강기정 후보는 사실상 정세균계, 조정식 후보는 손학규계의 대리인 격으로 출마했다. 486 대표성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진보행동’의 지원을 바탕으로 출마한 우상호 후보가 486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우 후보의 성적은 참담한 수준이다. 특히 민주당의 정치적 고향이랄 수 있는 광주·전남에서 우 후보는 8명의 후보 중 각각 7위와 6위에 그쳤다.
486그룹의 초라한 모습에 대해 당내에선 “‘자기 정치’를 하지 않고 양지만을 좇은 결과”라는 혹평이 나온다. 486그룹의 선배 세대에 속하는 한 의원은 “486들이 어렵더라도 자신들만의 영역과 색깔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대선주자나 당권주자의 그늘 속에서 안주했다”며 “오죽하면 ‘숙주 정치’라는 말이 나오겠느냐”고 말했다.
현장성을 상실한 게 486그룹의 패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경선에 출마한 문용식 후보는 486 후보들을 향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20명 넘게 죽어갈 때,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농성할 때 민주당 486들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꼬집었다. 1970년대 반 유신 투쟁에 앞장섰던 수도권의 한 의원은 “486들이 민중들과 함께하겠다던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지도자의 반열에 오르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