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맞아 5월 23일 김해 봉하마을에 열린 추도식에서 권양숙 여사가 분향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2012년 5월 23일 오후 2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도식이 시작되기 직전 권양숙 여사가 아들 노건호 씨와 함께 추도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와 딸 노정연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날 건호 씨는 4대 종단(천주교 기독교 불교 원불교) 대표들의 추모 의식이 끝난 뒤 단상에 올라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논란이 진행형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는 심경을 내비쳤다. 권 여사 역시 침울한 표정으로 추도식을 지켜봤고 식이 끝난 후 시민들의 환호에도 별다른 인사 없이 참배를 위해 대통령 묘역으로 향했다.
▲ 봉하마을에서 추모객들이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
▲ 봉화산 부엉이바위를 배경으로 노 전 대통령의 모형상이 세워져 있다. 유장훈 기자 |
봉하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권 여사의 우울증 소문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퍼졌다고 한다. 지난 2월 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미국 부동산 구매 의혹과 관련, 딸 정연 씨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자 정치권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던 때였다. 설상가상으로 3주기 추도식 직전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의 300억 원 괴자금 소문까지 더해지자 남은 가족들도 적잖은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봉화산에서 만난 김진봉 씨는 “가족들이 연이어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데 우울증이 걸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며 “건평 씨 수사의 경우 노 전 대통령 3주기로 인한 국민적 열망을 잠재우려는 전형적인 정치 검찰의 행태다. 이러다 애먼 사람 잡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노 전 대통령의 자살과 관련해 서거 전날 권양숙 여사와 부부싸움을 했었다는 익명의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올 초 한 인터넷 매체에서는 ‘정부고위관계자’라는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전날 심한 부부싸움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줄담배를 피며 잠을 이루지 못 했고 권양숙 여사는 만취상태에서 잠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관해 봉하마을 복수의 마을 주민들은 “그런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일축했다. 다만 “근래에 마을 주민들과 권 여사가 교류가 없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권 여사는 지난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에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가 있기 전 비공개로 소환조사를 받았던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한 4월 30일을 전후로 해서 잠과 식사를 거른 채 심하게 자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통합당 출신 전직 보좌관은 “당시 권 여사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당시 대통령 측근들이 권 여사를 돌보는 데 집중한 나머지 노 전 대통령의 심중을 살피지 못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울증 재발과 부부싸움 의혹과 관련해서는 “3주기를 앞두고 마음에 동요가 없다면 이상하지 않겠나.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추도식 내내 권 여사 곁을 지켰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 역시 “날이 날이니 만큼 잠시 힘들어 하고 계실 뿐, 건강상에 큰 문제는 없다”며 우울증 루머를 일축했다.
봉하마을 관광안내소 관계자는 “내년 대통령 사저의 개방에 맞춰 봉하마을 인근에 새로운 집을 마련하고 있는데 거처를 옮기면 좀 더 편안해지실 것 같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권 여사님이 혹시라도 자책을 하고 있다면 이제 그만 벗어났으면 좋겠다”며 “노 전 대통령이 살아계실 때와 같이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 지역 활동에도 참가한다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김해=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노풍 편승은 이제 그만”
5월 23일 대선주자들은 추도식이 끝난 직후 ‘노풍’에서 벗어나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노무현의 남자’ 문재인 당선자는 추도식 이후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사퇴하며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전했고 ‘리틀 노무현’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추도식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대선 출마하게 되면 도지사직을 던지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며 경남권을 벗어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 같은 발언을 두고 민주통합당 출신 전직 보좌관은 “당 대표 경선에서 비노세력이 약진하자 ‘노풍’을 이용해오던 쪽에서 ‘3년 탈상’이라는 정치적 용어를 써 가며 친노색 벗기에 나서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한편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패배를 점쳤던 창조한국당 유원일 전 의원은 “대선은 야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노풍만으로 절대 오는 12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대선주자들이 건전한 경쟁을 통해 다른 비전을 보여줘야만 부동층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수]
▲ ‘봉하 열차’를 타고 온 추모객들이 진영역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
강원서 스승·학생 12일 동안 걸어와
‘Bonghwa Express’
2012년 5월 23일 오전 7시 35분, 서울역에 특이한 이정표 하나가 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를 맞아 코레일 천안역과 노무현재단이 함께 마련한 ‘봉하열차’였다. 특정 행사를 위해 정기선이 아닌 임시 노선이 마련된 것은 사상 최초. 봉하열차는 5월 20일과 23일 이틀간 1100여 명의 승객을 싣고 달렸다.
이날 열차를 함께 탄 정연주 KBS 전 사장은 “1주기와 2주기 때는 비가 내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3주기에는 날씨가 화창하다. ‘그만 울어도 좋다’는 그 분의 명령이 아니겠느냐”며 객실을 돌며 인사를 나눴다.
봉화산 앞에서 치러진 추도식이 엄숙한 분위기였다면 봉하마을 밖은 하나의 축제에 가까웠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여대생은 “슬픈 자리이지만 야유회에 와있는 것 같이 즐겁다”며 “어쩌면 노 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이런 분위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노무현재단 홍보팀 관계자 역시 “이번 추도식은 ‘슬픔을 희망으로 바꾸자’는 메시지가 있다”며 “강원도 원주의 한 대안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12일 동안 걸어 봉하마을에 오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도 이런 소식들에 가장 기뻐하실 것 같다”고 전했다.
시각장애인 작곡가 송율궁 씨는 “추도식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에 관한 꿈을 꿨다. 그동안 거리가 멀어 내려올 엄두를 내지 못하다 덜컥 KTX를 예매했다”며 “제 기억으로 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유일하게 직접 시각장애체험을 하셨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가장 먼저 예비후보로 등록한 박광수 부모교 교주(46)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박 씨는 “그분의 기운을 받아 18대 대통령에 당선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드러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