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50 고등훈련기를 생산 중인 한국항공우주산업(주) 사천공장. |
여기에 현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대기업이 알짜배기 KAI를 인수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검은 커넥션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방산업계 주변에서 KAI 매각과 현 정부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 간에 석연찮은 ‘함수관계’가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기브로커 개입으로 인한 방산비리 척결을 천명한 현 정권이 정부 대 정부 간 구매인 FMS 방식을 표명해놓고 그 이면에 또 다른 ‘꼼수’를 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KAI 민영화 작업과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둘러싼 검은 뒷거래 의혹을 추적했다.
지난 4월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2012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는 2015년까지 국가채무를 GDP(국내총생산)의 30%로 낮추기 위해 공기업 주식 매각 등에 박차를 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KAI의 민영화 작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KAI 대주주인 정책금융공사의 진영욱 사장은 “4월에 매각 자문사를 선정해 하반기 입찰을 거쳐 연내 민영화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경남 사천에 소재한 KAI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군용기 분야 방위산업체이자 민간 항공기 부품 생산업체로 지난해 6월 상장됐다. 외환위기 이후 대우중공업, 삼성항공산업, 현대우주산업 등 3개사의 항공부문이 통합된 KAI는 연간 총 매출액만 1조 3000억 원에 이른다. 수년 내 세계 항공우주산업의 중심업체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는 그야말로 알짜 기업인 셈이다.
정부는 지난 4월 KAI 매각을 발표한데 이어 주관사 선정 등 본격적인 민영화 수순에 들어갔다. 하지만 ‘국가 채무 탕감’이라는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석연찮은 냄새가 풍기고 있다. KAI 인수자로 현 정권과 가까운 대기업이 거론되고 있는 등 매각 과정에서 특혜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민영화된 KAI의 기업가치가 폭발적으로 솟구칠 것이라는 전망과 맞물려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방산업계 주변에서는 “이미 이명박 대통령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A 사가 인수자로 결정됐다”는 구체적인 소문마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조합 측의 반발도 만만찮다. KAI 노조는 “그간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회사 부채비율이 100%로 낮아지고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MB정부는 혈세 10조 원이 투입된 국민기업을 재벌에게 공짜로 넘겨주려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문제는 KAI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단순히 특정 기업의 특혜 시비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KAI 민영화와 정부가 추진 중인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교묘하게 맞물리며 검은 커넥션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 2010년 5월 13일 광주 공군제1전투비행단에서 열린 T-50 전력화 완료 행사에서 T-50 훈련기가 비행을 마치고 귀환하는 모습. 연합뉴스 |
그렇다면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임기 내 밀어붙이는 차세대 전투기사업과 이번 KAI 매각 간에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 것일까. 업계 주변에서는 KAI 민영화와 관련된 갖가지 루머들이 파다한 상황이었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KAI 매각을 서두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KAI는 10월에 있을 차세대 전투기 기종 선정 전에 반드시 국내 재벌에 매각될 것이다. 이미 예견된 수순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민영화를 앞두고 정부가 KAI를 대폭 밀어주고 있는 정황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6월 기업공개를 앞두고 KAI가 제작한 T-50을 인도네시아에 출혈수출한 것을 비롯해 UAE, 이스라엘, 페루 등에도 T-50과 KT-1 수출을 밀어붙였다. 이에 대해 야권은 ‘밑지는 장사’ ‘빛 좋은 개살구’라는 표현을 써가며 “국정원이 벌인 어리숙한 첩보전으로 시작한 T-50 수출 드라마는 결국 국민들 호주머니를 터는 결말로 끝날 것”이라고 혹평했다.
민영화 이후 치솟게 될 KAI의 위상과 기업가치 또한 커넥션 의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투기를 들여오면 해당 전투기의 국내에서의 조립·제작·부품납품 등은 사실상 KAI가 독점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KAI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의 최대 수혜자인 셈이다. 이와 관련 진영욱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은 “KAI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항공우주산업을 하고 있는 곳이다. 앞으로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대표적인 업종이 될 수 있다. 차세대 전투기를 들여오면 기술이전도 받고 할 텐데 그 수혜는 바로 KAI가 받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관련 업체 일각에서는 ‘KAI 몸집과 가치 제고→ 민간 매각→ 전투기 기종 선정 후 일감 몰아주기로 이어지는 현 정권의 잘 짜여진 각본’이라는 주장은 제법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해당 분야 업무를 독점하게 될 KAI가 현 정권과 가까운 기업에 매각될 경우 의혹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것이 바로 KAI 매각과 차세대 전투기사업을 둘러싼 수상한 함수관계 의혹의 핵심이다.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기 리베이트 근절을 선언한 정부가 또 다른 ‘꼼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무기 거래상들 사이에서 이러한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무기구매방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통상적으로 무기구매는 FMS(대외군사판매)방식과 Commercial Sale(상업구매) 방식이 있다. 중개인이 통상 계약액의 1~5%의 중개수수료를 챙기는 상업구매의 경우 권력과 유착한 권영해, 린다 김, 조풍언, 김영완 등 무기 로비스트들의 출현을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대 정부 간 구매방식인 FMS는 무기로비스트가 개입할 틈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일단은 리베이트 비리에서 벗어난 투명한 거래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FMS 방식과 관련한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무기 브로커들은 가장 중요한 이유로 한미 간 협의된 차세대 전투기 구매방식 중 옵셋(offset:절충교역) 조건을 들고 있다. 옵셋의 한 예로는 2003년 KAI가 미국 보잉사가 생산하는 아파치 공격용 헬기의 핵심부품인 동체제작의 독점생산권을 확보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KAI는 2010년까지 7년간 3억 5000만 달러 상당의 아파치 헬기 동체를 공급하게 됐는데 이는 보잉사가 2002년 국방부로부터 차세대 전투기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국내업체에 배정하기로 한 옵셋 조건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우리들은 이번에도 분명히 옵셋 조건이 포함될 것으로 본다. 옵셋이 약 30% 걸려있다는 구체적인 얘기도 있다. 전투기 기종 선정과 연계된 옵셋에는 KAI의 조립·제작·납품 등이 포함될 것이 확실하며 더 나아가 KAI에 대한 세계적인 다국적 항공기 회사의 투자가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고 하더라. 만약 KAI가 전투기의 국내 조립과 제작, 부품납입 등과 관련된 일거리를 독점하고 세계적 다국적 항공기 회사로부터 투자까지 받게 된다면 민영화된 KAI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이는 일부 무기거래상들 사이에서 정부의 ‘꼼수’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 무기브로커는 “표면상으로는 무기 브로커들의 리베이트와 그로 인한 부정을 척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정부와 재벌기업 간에 엄청난 커넥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들이 왕왕 들린다. 정권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여지껏 일이 돌아가는 과정을 보면 뭔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듯한 냄새가 난다. 투명 거래를 표방하는 FMS 방식 속에 옵셋 조건이 포함되고 그것이 결국 KAI의 민영화로 특정 재벌기업에 엄청난 혜택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면 이는 무기 로비스트들의 리베이트로 파생되는 비리보다 더 심각한 사태를 야기할 것이다”며 우려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방위사업청 측은 5월 16일 기자와 통화에서 “옵셋 부분에 대해서는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당장 답변하기 곤란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