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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접 만나본 ‘코리안 좀비’ 정찬성은 싸움닭 이미지와는 달리 마음씨 착한 ‘순수 청년’이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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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16일, 미국 페어펙스 페트리어트센터에서 벌어진 ‘FC on Fuel TV 3’ 메인이벤트 페더급 매치에서 더스턴 포이리에(24·미국)를 맞이해 4라운드에서 초크 기술(상대의 발에 방어 허점이 생길 때 재빠르게 팔과 목을 조여 여러 부위에 동시다발적 고통을 주는 기술)에 이은 서브미션(항복) 승리를 거머쥔 ‘코리안 좀비’ 정찬성(25·코리안탑팀/성안세이브).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UFC 메인 이벤트에 올랐던 그는 ‘명승부 제조기’라는 별명답게 4라운드 1분 7초 만에 위대한 미션을 수행해 냈다.
최근 4연승을 모두 KO로 장식하며 강한 면모를 보였던 포이리에를 꺾은 후 정찬성이 승리 소감을 대신해 말한 내용이 “I want Jose Aldo!”였다. 조세 알도는 UFC 페더급 챔피언으로 14연승을 달리는 절대 강자다. UFC에 입문하면서 목표로 삼았던 챔피언과 타이틀매치를 벌이고 싶다고 선언한 ‘코리안 좀비’는 그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짜릿함을 맛봤다. UFC 데이나 화이트 회장이 오는 7월 28일 조세 알도와 도전자 에릭 코크 경기의 승자가 오는 연말이나 내년 연초에 정찬성과 챔피언 벨트를 걸고 싸우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얼굴에 메인 이벤트의 격렬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정찬성을 만났다. 가슴이 훈훈해지는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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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정찬성은 UFC 1차전 상대였던 레너드 가르시아에 대해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고 설명한다. 가르시아는 이미 WEC에서 활동할 때 자신한테 WEC 첫 패를 안긴 선수였다.
“2011년 3월 초에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3월 17일이 내 생일이었는데, 그날 UFC로부터 오퍼가 왔다. 가르시아랑 싸우지 않겠느냐고. 알고 보니 가르시아랑 붙기로 한 상대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나한테 기회가 온 건데, 마침 내가 미국에 있었던 게 좋은 연결고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시합이 한 달도 아닌 10일 후에 치러진다는 얘길 듣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합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상대가 가르시아이고, 이전에 당했던 패배를 꼭 복수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서로 터프하게 경기하는 스타일이라 재미있는 게임이 나올 것 같았다.”
정찬성은 가르시아를 상대로 UFC 사상 최초의 ‘트위스터’ 서브미션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 경기는 ‘오늘의 경기’로 뽑혔고, 마침내 ‘올해의 서브미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트위스터는 정말 흔한 기술이 아니다. 체육관에서 연습을 하긴 했었지만 정작 시합 중에 그런 기술이 나올지는 몰랐다. 나조차 그런 기술이 나왔다는 게 굉장히 신기했다. 정말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지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찬성은 지금까지 치른 경기 중에서 그 1차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가 있는 경기라고 말한다.
“당시 난 막다른 길에서 헤매는 상황이었다. 이미 WEC에서 2패를 했고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런 절박한 상태에서 행운의 기회를 붙잡게 됐다. 만약 그 경기에서 졌더라면 난 군에 입대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찬성 하면 화끈하게만 경기하는 선수로 인식되었다. 내 한계가 분명하다는 생각도 했는데 다른 스타일로 바꿔서 처음 도전한 게임에서 트위스터 기술이 나오니까 얼마나 놀라고 기뻤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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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성이 5월 16일 열린 UFC 메인이벤트 포이리에와 경기에서 서브미션으로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슈퍼액션 화면캡처 | ||
정찬성이 가르시아를 상대로 UFC 사상 최초의 트위스터 서브미션 승리를 거뒀다면 캐나다 ‘영건’ 마크 호미닉을 만나선 UFC 역사상 최단 시간(7초) 승리를 따낸 기록을 갖고 있다. 정찬성은 “호미닉과의 경기는 정말 운이 좋았다”며 이런 설명을 곁들인다.
“모두가 그 경기에서의 승자를 호미닉으로 점친 가운데 7초 만에 경기를 종료시켰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 건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컸다. 난 호미닉을 상대로 내가 갖고 있는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경기를 오래 끌어 가고 싶었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호미닉이 너무 쉽게 무너졌다.”
정찬성의 7초 승리는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소개되면서 그의 별명인 ‘코리안 좀비’도 유명세를 탔다. 정찬성은 ‘코리안 좀비’란 닉네임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그 별명은 WEC 가르시아와의 첫 경기 이후 미국 팬들이 불러준 닉네임이다. 한국에선 WEC에서 치른 시합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가르시아와의 경기 때문에 정찬성이 존재했고, 그 경기 때문에 별명이 생겼고, 그 경기로 인해 이후 더 좋은 시합이 잡혔다. 그때 만났던 가르시아를 UFC 데뷔 무대에서 또 만났으니, 이런 인연도 없는 거다.”
#포이리에의 도발
UFC 3차전 상대였던 포이리에와의 경기는 사실 SNS 공간에서 이뤄졌다. 포이리에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좀비 사냥을 나가볼까’라고 선제 공격을 했고, 이에 정찬성은 ‘6초 안에 끝내준다’라고 맞받아쳤다.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UFC 화이트 회장은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정찬성과 포이리에의 경기를 메인 이벤트로 내걸며 홍보에 앞장섰고 정찬성은 3라운드가 아닌 5라운드 경기를 벌였지만 4라운드에 끝내고 말았다.
“내 입장에선 포이리에의 도전이 고마웠다. 챔피언 벨트에 빨리 도달하려면 ‘쎈’ 선수를 만나야 했는데 포이리에는 랭킹이 4위였고, 난 12위였기 때문에 나로선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합 준비하면서 진짜 부상을 많이 당했다. 이전에 당한 부상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듯,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상을 빌미로 시합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불안했지만 시합 날이 다가올수록 설렘이 더 컸다.”
정찬성은 경기 중에 오른 무릎을 다쳤다. 그러나 정작 경기할 때는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링 위에만 올라가면 아드레날린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것 같다. 무조건 상대를 때려 눕히고 싶은 욕망만 들끓는다. 체력적인 부담이 컸지만 생애 최초의 메인 이벤트 경기였고, 내 경기를 보기 위해 티켓을 산 관중들을 위해서라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통증을 못 느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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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안탑팀 양동이(왼쪽)와 정찬성.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코리안 좀비’도 맞는 게 두렵다는 생각을 할까? 정찬성은 맞는 건 두렵지 않은데 맞고 기절하는 건 두렵다고 말한다.
“WEC 2차전에 붙은 선수가 조지 루프였다. 그 경기에서 내가 KO로 졌는데 조지 루프의 하이킥을 맞고 기절하고 말았다. 눈을 뜨니까 앰뷸런스에 실려 가고 있더라. 그 후 2~3개월 동안 심하게 방황했다. 가만히 있다가도 맞고 기절할 때를 떠올리면 눈물이 절로 흘렀다. 링 위에서 싸우는 게 무서워졌다. 그렇게 번민의 나날을 보내다가 UFC 데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조지 루프와의 경기 전까지만 해도 난 화끈한 경기만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다. 상대를 힘으로만 제압하려 했다. 왜냐하면 그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화려한 기술을 깰 수 있는 터프함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한 번 녹아웃되고 나서 모든 게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격투기는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조지 루프 경기가 지금의 날 만들었다. 나의 모든 걸 바꿔 놨다. 격투기를 대하는 자세도, 스타일도….”
#“I want Jose Aldo!”
정찬성은 포이리에와의 경기에서 판정승이 아닌 서브미션이나 KO승을 거뒀을 경우 인터뷰 때 이 말을 하리라 결심했다고 한다. 바로 조세 알도와의 경기를 하기 원한다고.
“내가 WEC 대회를 위해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그 대회의 메인 이벤트 경기가 조세 알도 경기였다. 조세 알도는 미국행을 결심하게 했던 선수였다. 그 선수와 싸우고 싶었고, 그 선수와 싸워서 이기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그런데 그 목표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선수였으니까. 하지만 포이리에 경기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대결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조세 알도는 내가 봐도 무서운 선수다. 격투기 전문가, 팬이라면 90% 이상이 조세 알도의 승리를 점칠 정도로 최강의 파이터다. 하지만 난 자신 있다. 링 위에서라면 난 그를 이길 수 있다.”
정찬성은 조세 알도와의 경기가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에서 치러지길 바라고 있다. 한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UFC 대회 메인 이벤트 경기의 주인공이 자신과 조세 알도라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76㎝, 76㎏의 정찬성은 직접 만나보니 왜소해 보였다. 막 시합이 끝난 이후라 70㎏의 체중도 안 나갈 것 같은 가냘픈(?) 체구였다. 마음씨 좋은 ‘착한 남자’표 웃음을 터트리며 진솔한 얘기를 풀어내는 그가 링 위에만 올라서면 ‘싸움닭’으로 돌변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순박한 청년 정찬성이 인터뷰 말미에 이런 다짐을 내보인다.
“조지 루프랑 싸울 때 입었던 셔츠를 빨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피가 잔뜩 묻은 셔츠다. 그걸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다시는 그때처럼 형편없는 경기를 펼치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는 녹다운당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riverofly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