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청계천 4대강 둘러볼 계획, ‘박’ 국민 소통 외부활동 예고…TK 신당 거론, 유의미한 성적 거둘지는 의문
이명박 전 대통령이 3월 22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천안함 46용사·연평도 포격 도발 희생자·제2연평해전 전사자 묘역을 참배했다. 지난해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이후 3개월여 만의 첫 공식일정이다. 이 전 대통령은 참배 후 방명록에 “자유의 전선에서 헌신한 정신을 기리며 대한민국의 국가 번영과 안보를 지키기 위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고 통일이 되는 날까지 매년 전사자 묘역을 찾겠다’고 약속했다”며 “2018년 3월 수감된 이후를 제외하고는 매년 이곳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앞으로 외부일정을 많이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4월에는 청계천, 5월에는 4대강을 둘러볼 계획으로 전해진다. 청계천과 4대강은 이 전 대통령이 각각 서울시장과 대통령 재임 시절 추진한 대표 사업이다.
공교롭게 박근혜 전 대통령 근황도 비슷한 시기 화제를 모았다. 박 전 대통령은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지난해 3월 24일부터 대구 달성군 자택에 머물러왔다. 그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참석 이후로는 공식 외부활동을 한 적이 없다.
박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유영하 변호사는 3월 22일 영남일보 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른 시일 내 외부활동에 적극 나서 국민과도 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건강상태에 대해 “사저로 온 이후 잘 적응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크게 불편함은 없고 식사도 잘 한다”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대통령이 치매에 걸렸다’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린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어 사저에 온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지금처럼 건강이 호전되면 가까운 시일 내 외부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달성군에 가끔 가던 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대구에 전통시장도 다니면서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이 외부활동을 시작하면 사면·복권된 지 1년여 만이다.
두 전직 대통령 등장을 두고 정치권에서 해석이 분분하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보수진영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그중 하나다. 더 나아가 ‘친이계’ ‘친박계’가 각각 뭉쳐 신당 창당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도 뒤를 잇는다. 여권 한 관계자 말이다.
“국민의힘은 김기현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강력한 ‘친윤’ 체제가 구축돼 윤심 방향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총선 공천이 걸리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정치권 안팎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차기 총선에 검찰 사단 등 본인 측근들을 대거 공천해 국회에 입성시킬 거란 전망이 있다. 국민의힘에 유리한 강남3구나 TK(대구·경북) 등에 출마 준비 중인 검찰 출신이 40여 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럼 기존 의원들과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비윤’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현역 중엔 ‘간판스타’가 없다. 그 역할을 두 전직 대통령이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립대전현충원 참배 자리에는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던 류우익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과 정동기 전 민정수석, 김두우 홍상표 전 홍보수석, 장다사로 전 총무기획관 및 정부에 몸담은 이재오 전 특임장관,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등 ‘친이계’ 핵심 20여 명이 함께 했다. 국민의힘 현역 의원은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과거 친박계 인사들과 접촉면을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유 변호사도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함께했던 참모와 장관을 지낸 분들 중에서 보고 싶으신 분은 연락해 만났다”고 언급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등이 중심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서 선거제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친이계 친박계 신당 창당 가능성에 더 무게감을 싣는다. 국회는 3월 30일 현역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위원회를 열고 ‘선거제 개편안’을 두고 난상토론을 펼친다. 여야는 전원위 구성 이후 2주간 토론을 거쳐 단일 개편안을 본회의에 올릴 예정이다.
정개특위 전체회의를 통해 마련된 선거제 개편 결의안은 3개다. 1안은 도농복합식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다. 2안은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와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3안은 기존 소선구제 및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이다.
앞서 여권 관계자는 “중대선거구제나 대선거구제로 개편되면 한 지역구에서 여러 의원이 당선될 수 있다. 그럼 친이·친박계 인지도 높은 중진들이 신당으로도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며 “3안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돼도 비례대표용 정당을 통해 국회 입성이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앞세운 정당 창당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두 전직 대통령의 자기장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은 ‘보수의 심장’인 TK지역에 한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친이계와 친박계가 각각 신당 창당을 시도한다면 TK에서 맞대결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정가에선 신당 창당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들이 많다. ‘윤핵관’이라 불리는 권성동 장제원 의원을 비롯해 친이계 인사 상당수가 ‘친윤계’로 이름표를 갈아 끼고 국민의힘 요직과 용산 대통령실 곳곳에 포진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이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기는 쉽지 않다.
또한 국민 시선도 곱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사안으로 법적처벌을 받은 게 아니라 비자금 조성과 횡령·뇌물수수 등 개인 비리였다. 사면복권 당시에도 반대여론이 절반을 넘는 등 국민 시선이 곱지 않았다”며 “그런데 친이계가 이 전 대통령을 앞세워 신당 창당을 한다고 국민들이 표를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친박계 정치인들의 경우 대부분 원외 인사들이다. 이들은 내년 총선을 벼르며 박 전 대통령 지원사격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정치권 복귀에 뜻이 있는지 미지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상황을 잘 아는 정치권 한 관계자는 “친박계 정당이 성공하려면 윤석열 정부 실정으로 보수진영 위기가 초래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서줘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야지, 친박계가 자가발전해서는 안 된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보수의 부활을 위해 정계에 복귀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이상 ‘박근혜팔이 정당’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다 해도 내년 총선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둘지도 의문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은 대구시장 경선에 출마한 유영하 변호사를 위해 후원회장을 맡아 공개 지지 발언까지 했다. 하지만 유 변호사는 결국 국민의힘 경선에서 홍준표 당시 후보에 밀려 탈락했다. 이를 보면 친박계 비례대표용 정당을 만든다고 TK에서 의석을 받을 정도의 득표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두 전직 대통령도 아직은 정치 행보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정치는 무슨 정치인가”라며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 정치가 언제든 상황이 변할 수 있지만 시기상조라고 본다”고 말을 아꼈다. 친이계 핵심 원로 역시 “집에만 있으면 건강에 좋지 않으니 날이 따뜻해져 운동 삼아 청계천이나 4대강을 한 번 돌아본다는 것”이라며 “정치적 목적의 활동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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