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장악력 의문부호 속 ‘한동훈 조기 등판론’ 고개…잠룡들 훈수정치에 비주류 공세까지 혼란상 우려
#김기현 임기 시작부터 흔들
김기현 대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당 회의에 참석해 메시지를 내야하고, 임기 초반이라 인사를 나눠야 할 사람도 많다. 여기저기 부르는 곳도 많다. 아무리 당대표라지만 울산 남구을 본인 지역구도 틈날 때마다 챙겨야 한다. 게다가 현장 행보까지 많이 한다. 3월 28일 아침엔 서울 경희대 학생식당을 찾아 요즘 대학가의 화제가 된 ‘1000원 아침밥’을 학생들과 함께 먹으며 대화했다. 김 대표는 식사에 앞서 학생들과 함께 줄을 선 뒤 오전 8시부터 발권을 시작하는 1000원 조식권을 직접 샀다.
김 대표의 이런 행보는 당대표 취임 후 나타나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컨벤션 효과를 누려야 하지만 복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낮게 나오는가하면 지지율 하락세는 김 대표가 등판한 전당대회 이후부터 더 심화하고 있다는 것은 몹시 아린 대목이다. 아침부터 대학가로 달려가는 일정을 잡아야 할 만큼 여당에 대한 젊은층 지지율이 낮아진 것도 고민이다.
전반적인 여론도 김 대표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보수언론조차 김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허리를 굽혀 ‘폴더 인사’를 하는 저자세 논란에 불을 지피는 등 취임하자마자 부여되는 허니문 기간도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다. 친윤 일색 당 지도부 구성 역시 언론으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당 장악력에 대한 의문부호도 달리고 있다. 김재원 최고위원의 이른바 ‘전광훈 목사 발언’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쏟아지며 당이 시끄러웠는데 당 지도부에 대한 대표의 통솔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으로 직결된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3월 25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북미자유수호연합’ 초청 강연회에서 “우파 진영에는 행동하면서 활동하는 분들이 잘 없었는데, 전광훈 목사께서 우파 진영을 전부 천하통일을 해서…. ‘우리 쪽도 사람은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3·8 전당대회 직후인 지난 3월 12일에도 전 목사가 주관하는 예배에 참석해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김 최고위원은 당 안팎의 비판이 쏟아지자 두 발언 모두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김 최고위원 발언을 김기현 대표 리더십과 연관 지었다. 홍 시장은 3월29일 SNS(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당 대표가 카리스마가 없고 미지근한 자세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당 운영을 하게 되면 당은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서 “살피고 엿보는 판사식 당운영으로는 당을 역동적으로 끌고 갈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그리고는 김 최고위원에 대한 강한 조치를 요구했지만 김 대표의 성격상 징계 가능성은 없다는 게 당내 주류 의견이다.
설상가상으로 여당을 직할 체제로 바꿔놓은 윤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상승세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것도 김 대표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고 있다. 한일관계 복원에 나선 윤 대통령이 큰 호응을 얻어내지 못한 데다 일본이 상응조치는커녕, 역사왜곡을 강화하는 모습까지 나타나면서 용산은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더욱이 근로시간 조정을 둘러싼 정부의 갈지자 행보까지 나오면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다시 하락세로 접어드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김기현 대표 당선 과정에서 목격됐던 용산의 입김 논란이 자꾸 투영되면서 그가 정통파 투수가 맞느냐는 얘기가 임기 초반부터 나오는 것”이라며 “김 대표는 지금 주무기를 던져야 한다. 그런데 주무기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더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동훈 조기 등판론 솔솔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당 지지율이 이런 형편이라면 내년 총선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으니 구원투수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좋은 선수가 대기하고 있다면 조기에 등판시켜 미리부터 몸을 풀어야 한다는 논리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조기 등판론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친윤(친윤석열)계 초선으로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된 박수영 의원이 ‘한동훈 나와라’에 불을 댕겼다. 그는 3월 2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내년 4월 총선 전 한 장관의 정치권 등판 주장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좀 등판했으면 좋겠다”면서 조기등판을 주문했다.
박 의원은 한동훈 등판론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한 장관이 1973년생이다. X세대의 선두 주자라 볼 수 있는데 그분이 나와서 기존의 586, 소위 운동권 세력, 이 세대들을 좀 물리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총선 때마다 나오고 실제로 유권자들에게 가장 강하게 투영되는 ‘정치권 물갈이론’의 적임자가 한 장관이라는 취지다.
한 장관이 민주당 십자포화 대상이 된 점도 정치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계기로 작용한다고 박 의원은 봤다. 민주당 내부에서 한 장관 탄핵을 주장하는 데 대해 그는 “셀럽을 뛰어넘어 히어로(영웅)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줄 우려가 있다”며 “한동훈 개인으로 봐서는 아주 좋은 일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한 장관은 지난해 ‘전당대회 차출론’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한 장관의 전대 출마를 골자로 하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오르내렸다.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이미 갖춘 데다 야당의 쟁쟁한 정치인들과의 토론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한 장관은 보수진영의 차기 대선 후보 반열에 올라간 상태다. 이런 연장선에서 여당 의원들은 “한동훈이 내년 총선 승리의 보증 수표”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당내에서는 한 장관 등판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시기가 문제일 뿐, 정치인으로 등장하는 것은 정해진 순서라는 분석이다. 이 관측이 힘을 얻는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들 중에선 한 장관이 내년 총선에서 ‘후보 중 한 명’이 아닌 ‘후보들을 이끄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점치는 이들이 많다.
한동훈 조기 등판이 현 시점에서 어렵다는 시기 상조론도 적지 않다. 외부 수혈이 능사가 아니고 현 체제의 안착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내년 공천권 행사 과정에서 중요 역할을 할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3월 3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일을 잘하고 있는데 왜 자꾸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려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철규 사무총장은 친윤계 핵심인사 중 한 명이다.
직전 정책위의장을 지낸 성일종 의원도 3월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가 “당에서 한 장관 차출이나 이런 걸 전혀 검토한 적이 없고, 아직도 총선이 많이 남아 있다”면서 “장관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는 그러한 추측성 보도는 틀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비록 소수지만 ‘한동훈 불가론’도 나온다. 뭐든지 잘 안 된다 싶으면 한동훈 이름을 불러대는 것 자체가 집권당으로서 체면을 구긴다는 이유다. 정치인으로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인물인 데다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는 정치판 생리상 윤 대통령과 이력이 겹치는 한 장관은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모델이라는 게 불가론자들의 논리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3월 28일 MBC ‘뉴스외전’에 출연, “장관보다 방송패널이 제격”이라며 야당과의 설전이 잦은 그의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한 장관이 정치를 시작한다고 해도 그의 출발선을 놓고 극심한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나갔던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3월 28일 YTN ‘뉴스 라이브’에 나가 “한동훈 장관은 분명 서울 강남에서 소구력이 있을 것이지만 중도 확장력이 필요한 강북의 한 지역구를 정해서 빨리 뛴다면 훨씬 더 좋은 훈련들이 될 것”이라며 한 장관에게 ‘강북 험지 출마’를 요구했다.
#되살아나는 이준석 악몽
당내에서는 아무리 좋은 투수라도 초반 제구력 난조는 있기 마련이라면서 다선 의원인데다 울산시장 경험까지 갖고 있는 노장 김기현 대표가 예방주사를 맞은 뒤 면역력을 만들 것이라는 의견이 일단 강하다. 새 원내대표 선출까지 앞두고 있어 더 어수선한데 지도부 진용이 완전히 갖춰지면 일사불란한 모습이 갖춰질 것이란 얘기도 뒤를 잇는다.
하지만 김 대표가 임기 시작 초반부터 지지율을 까먹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한동훈 장관이라는 대체 리더십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으로서는 부담이다. 당내 구성원들은 물론, 대선을 코앞에 두고 대선 후보군과 좌충우돌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당의 극심한 혼란상을 노출시켰던 이준석 체제 악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의힘은 홍준표 대구시장·오세훈 서울시장·원희룡 국토부 장관 등 차기 대선 후보군이 이미 명확하게 형성돼있어 지도부 리더십에 혼란이 생기면 이들 후보군의 훈수정치가 즉각 가동될 수밖에 없다. 훈수정치에 비주류의 공세까지 중첩되면 총선을 앞두고 초대형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이런 가운데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좌장으로 참여하는 국회 토론회가 4월 18일로 잡히면서 국민의힘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치권 내 이른바 비주류·소장파 출신들이 모여 양당 체제를 넘어 제3지대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을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의 단일대오에 원심력으로 작용할지, 혹 정계 개편이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주판 튕기는 소리가 요란해지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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