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0일 추락한 쉬벨사의 캠콥터 S-100. 쉬벨사의 한국 에이전트 스포키무인항공은 2010년 파산한 선병석 씨로부터 에이전트십을 물려받았다. |
▲ 과학수사대가 추락 사고로 전소돼 희생자가 발생한 조종기기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경기일보> |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무인헬기 납품과정에서의 원초적인 의혹이 제기되는 등 사건은 또 다른 권력형 비리로 흘러갈 가능성도 남겨두고 있다. 핵심은 문제의 헬기가 그간 성능 및 적합성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져왔던 기종인데다가 납품사업을 둘러싸고도 외압 및 특혜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모든 의혹의 정점에 사고가 난 무인헬기 사업권을 따낸 장본인인 일명 ‘황제테니스 사건’의 주역인 선병석 전 서울시 테니스협회장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의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취재 과정에서 무인헬기를 둘러싼 석연찮은 의혹들 외에도 선 씨가 ‘해군 정보함 탑재 무인정찰기사업’을 빌미로 주변으로부터 대규모 차입을 감행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선 씨가 황제테니스 사건을 비롯해 각종 권력형 비리사건에 단골로 등장했던 ‘스캔들 메이커’라는 점에서 무인헬기 사업과 관련해 묻혀있던 의혹들이 재점화될 조짐마저 감지되고 있다.
5월10일 낮 12시 33분경 군납품을 앞두고 시험비행을 하던 헬기가 추락했다. 사고가 난 오스트리아 쉬벨사 무인헬기 ‘캠콥터 S-100’ 기종은 2008년 10월께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지난해부터 군 등이 서해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북한군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점은 2008년 이 무인헬기 사업권을 따낸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자 ‘황제테니스 사건’의 주역인 선병석 전 서울시 테니스협회장이라는 사실이다. 선 씨는 선정된 무인항공기의 국내 에이전트인 한국무인항공센터의 오너였다. 한국무인항공센터는 현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6월 당시 유력한 후보기종이었던 미국 AAI사를 제치고 사업권을 따냈다. 하지만 한국무인항공센터는 자금난으로 파산했고 해군 무인정찰기 납품사업은 제작사인 쉬벨사의 국내 에이전트인 스포키무인항공이 2010년 인수해 승계하게 됐다.
문제는 선 씨가 이 사업권을 따낼 당시 해군과 방산업계 일각에서 납품거래 과정 및 적정성 등과 관련해 적잖은 의문과 우려가 제기됐다는 점이다. 해양환경에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해양 운용실적도 없는 무인헬기를 저가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외압 및 특혜 가능성이 거론됐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해군 내에서는 “비바람이 거센 해상의 특성상 ‘고정익’(항공기의 동체에 고정된 날개)이 아니면 안 된다”는 등 반대가 상당했음에도 선 씨가 사업권을 따낸 것을 두고 여러 말이 오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모든 의혹의 배경에는 선 씨가 황제테니스 사건의 주역으로 당시 이명박 시장과 상당한 친분 의혹이 일었던 인물이었다는 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실제로 2004년 열린우리당은 “이명박 시장과 선병석 전 회장은 여성을 동원한 별장파티를 즐길 만큼 특수 관계였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 2008년 재벌가 자제와 전 국무총리 아들이 연계된 뉴월코프 주가조작 및 횡령 사건으로 구속된 선병석 씨(가운데). |
따라서 이번 사건은 헬기 추락이라는 사고 자체를 넘어 황제테니스 사건을 비롯해 여러 차례 물의를 빚었던 선 씨가 어떻게 해군 정보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무인정찰기 사업을 맡게 됐는지에 대한 의혹으로 확전되고 있다. 실제로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의 원초적 배경에는 권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선 씨의 석연찮은 사업권 수주 의혹이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사정기관 주변과 정보통 일각에서도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얘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방산업계의 한 정보통은 “현 정권과 관련해 선 씨는 알려졌던 것 이상의 치부를 알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향응 및 접대와 관련된 충격적인 내용인데 선 씨가 측근들에게 ‘증거도 있다’며 떠벌리고 다녔다더라. 이 대통령에게 치명적인 내용인 만큼 대통령 당선 후 정권 차원에서 선 씨를 ‘마크’하는데 무척 신경을 써왔는데 무인정찰기 납품 역시 ‘배려’ 차원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선 씨가 정치권 이쪽저쪽에 줄을 대는 브로커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를 둘러싸고 항시 뒷말이 무성했다. 일단 그가 사고를 치면 골치 아프다는 얘기가 들렸다. 일례로 2008년 주가조작 사건 때도 선 씨를 집행유예로 풀어주기 위해 다른 관련자들의 처리까지 시간을 끌며 고심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또 모 단체장이 연루된 뇌물수수 사건에 휘말려 구속된 선 씨를 청와대 측에서 직접 나서 빼줬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사의 증언은 더욱 구체적이다. 그는 “2007년 말 선 씨가 한 사업가에게 서울시 관련 시설물 입주를 따준다며 5억 원을 받았는데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법적다툼으로 번진 적도 있다. 이때도 선 씨는 이 대통령을 들먹이며 돈을 챙긴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무인정찰기 사업을 빌미로 선 씨가 대규모 차입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해군 무인정찰기사업의 진행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는 한 인사는 “선 씨는 수시로 고위층과 끈끈한 관계를 과시했다. 무인헬기 4대를 납품하는 사업은 그다지 돈이 되는 것이 아닌데 선 씨는 이를 빙자해 주변에서 돈을 엄청 끌어 들였다. 내가 아는 사람도 그에게 돈이 물렸다. 그가 권력과의 친분을 거론하며 주변으로부터 끌어댄 돈은 실 사업비의 몇 배는 될 것으로 짐작된다”고 했다.
하지만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 인사는 “결국 채권 관계에 있는 사람이 압류된 시제품 2대를 경매를 통해 받아갔다. 당시 해군에서는 무인 정찰기 거래에 대해 반대의견이 상당했는데 이 때문인지 해군 측은 계약한 헬기 4대가 모두 만들어져 성능 통과를 거쳐 납품될 때까지 대금지급을 에스크로(특정물을 제3자에게 기탁하고 일정 조건이 충족된 경우 상대방에게 교부하는 방법) 수법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선 씨는 주변에서 끌어들인 막대한 돈을 갚지 못하고 큰 곤경에 처했다. 하지만 독촉이 들어올 때마다 선 씨는 납품이 완료되면 갚겠다고 큰소리치는가 하면 무인항공센터를 계속 유지하면 납품할 때마다 에이전트 피(대리인 수수료)와 유지보수비가 나온다며 채권자들을 설득했다. 특히 걸핏하면 고위층과의 친분을 들먹이는 바람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했다.
여러 정보통들과 제보자들의 주장대로 선 씨가 권력 및 고위층과의 친분을 악용했는지, 또 그것을 빌미로 대규모 차입을 벌였는지의 여부는 섣불리 단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무인헬기 사업과 관련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어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추락한 무인헬기가 ‘2010 G20 서울 정상회의’ 당시 경호 업무를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 문제의 S-100은 2010 G20 서울 정상회의 당시 경호업무도 지원했다. 쉬벨사 무인헬기 홍보자료 캡처 화면. |
더욱 재미있는 것은 2010년 11월 G20 준비상황을 소개하는 공중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도 이 헬기가 자세히 소개됐다는 사실이다. 쉬벨사 역시 ‘캠콥터 S-100이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보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무인헬기의 G20 정상회의 지원은 청와대 경호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무인헬기 지원을 누가 제안·지시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경호 업무에 활용됐는지 등 갖가지 의혹에 대해 청와대는 지금까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미래경영연구소 황장수 소장은 “미등록에다가 완벽한 성능검증까지 마치지 못한 헬기가 20개국 국가 원수들이 참여한 회의장 상공에서 경호보안을 지원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나. 윗선의 힘이 개입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나는 ‘선 씨가 TV출연 등 홍보효과를 빌미로 주변에서 돈을 더욱 쉽게 끌어댔다’는 얘기도 직접 들었다. 선 씨는 이 사업을 미끼로 과다한 돈을 빌렸고 무인헬기 두 대는 경매로 넘어갔으며, 이후 이를 확보한 측에서 에이전트십을 넘겨받아 운영하다 사고가 난 것이다. 나는 이미 지난해 몇몇 인사들로부터 선 씨의 무인헬기사업 및 차입, 선 씨에 대한 정권차원의 비호 의혹에 대한 얘기를 듣고 정부기관에 제보도 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다. 실세와의 석연찮은 관계, 군납 과정에서의 특혜와 외압 의혹, 사업권 획득을 빙자해 이뤄진 대규모 차입, 홍보용 G20 시연과 미등록 상태 헬기운영 등 얽히고설킨 모든 것들이 여전히 미스터리다”라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기자는 일련의 의혹들에 대한 선 씨의 입장을 들어보고자 다방면으로 그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