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가 바둑만화 <미생>을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하며 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미생(未生)’은 바둑용어 ‘미생마(未生馬)’의 그것이다.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말, 상대로부터 공격 받을 여지가 있는 말, 상대가 노리는 말. ‘미생’을 바둑만의 전문용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바둑 말고 다른 동네에서 사용되는 걸 들어본 기억은 없다.
주인공은 장그래, 기발한 이름이다. 프로기사를 지망한 한국기원 연구생이었으나 입단에 실패하면서 날개를 접은 청년이다. 그래서 ‘미생’이라고 했을 것이다. 청년은 잠시 좌절과 방황을 겪는 중에 지인의 소개로 종합상사의 인턴사원이 된다. 수습 과정을 거쳐 2년 계약직사원으로 합격되는 것까지가 1부, 회사 생활을 시작하는 2부를 며칠 전부터 다시 연재하고 있다. 앞으로 장그래의 연인이 될 것으로 보이는 여주인공의 이름은 안영이…^^ 바둑계의 원로 안영이 선생의 이름이다.
▲ <미생> 주인공이 출근 첫날 지각할 처지에 놓인 모습. 작가는 ‘곤마(살아남기 어려운 돌)’라고 표현했다. |
바둑 콘텐츠의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지는 30년이 넘었다. 쉽게 말하면 바둑소설 바둑만화 바둑노래 바둑드라마 또는 바둑영화 같은 것들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바둑소설. 관전기 쪽의 원로 작가 노승일이 1970년대부터 추구하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승일은 경희대 국문과 출신으로 젊었을 때 절에 들어가 신춘문예에 승부를 걸었다가 여의치 않자 1970년대에 한국기원의 <월간바둑>에 기자로 입사해 1980년대 초반에 편집부장을 역임했는데, 못 이룬 신춘문예의 꿈을 바둑소설로 연장해 집념을 보였다.
노승일이 기자-차장-편집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월간바둑>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상금 1000만 원을 걸고 몇 년 동안 바둑소설을 현상 공모했는데, 아쉽게도 응모가 많지 않았고 당선작도 없었다. 공모를 시작하기 훨씬 전에 작가 천승세가 <월간바둑>에 ‘봉기사(奉棋士, 성이 봉씨인 프로기사) 다락방’을 연재했으나 끝을 보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월간바둑>이 유명 중견작가들의 바둑콩트를 실었다. 꽤 재미있었던 바둑콩트 릴레이는 2년쯤 계속되었고 이후엔 한동안 소강상태였는데, 몇 년이 지난 1992년 프로기사에 인생을 걸었던 청년의 이야기 ‘입단연가’를 발표했다. 지금은 작고한 캐나다 교포 홍성화의 작품이다. “프로기사 입단을 열망했으나 실패한 이른바 ‘이무기’들의 가슴을 적셔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5년에는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이 대하소설 <국수>를 발표했다. 김성동은 젊은 시절 중이었는데, 1970년대 후반 어느날 승복 차림으로 <월간바둑> 기자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고, 1년쯤 근무하다가 사표를 내고, ‘병 속의 새’를 화두로 삼은 중편소설 <만다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남자가 먹어야 할 밥은 절밥, 돌(바둑돌)밥, 글밥, 세 가지”라는 것은 김성동의 말이다.
1997년 무렵에는 바둑을 잘 두고 좋아하는 영화감독 조세래의 바둑소설 <역수(驛水)>가 나왔다. “바둑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조선시대 바둑꾼 2대의 파란만장한 승부를 다룬 소설로 지난날 한-일 바둑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방랑기객’을 방불케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제목이 좀 어려웠는데, 작자도 동감해 2000년대 중반 <승부>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했다. 조세래는 요즘 바둑영화를 찍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리고 <역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둑주간지에 노승일이 <실명 소설 차민수>를 연재했다. 프로기사 차민수 4단의 인생 역정을 극화한 것이었는데, 작가 본인으로서는 30년 적공을 꽃피운 셈이었다. 2003년 시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병헌 송혜교 주연의 SBS의 드라마 <올인>이 바로 ‘소설 차민수’다. 드라마는 대성공이었고 포커판의 용어 ‘올인’은 일상어가 되었고, 촬영 무대였던 제주도 성산 일출봉 근처의 섭지코지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바둑만화의 원조는 단연 강철수 화백. <발발이의 바둑스토리> <바둑판은 넓고 잡을 돌은 많다> <명인> 등 여러 편이 있다.
바둑소설, 바둑만화의 관건은 기보다. 소개한 소설, 만화 중 기보가 들어간 작품은 일본의 <방랑기객>과 강 화백의 만화 정도다. 기보가 들어가지 않아도 바둑소설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기보가 없다면 바둑소설과 그냥 소설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구별되지 않는다고 해서 작품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애매해진다. ‘입단연가’는 이무기들의 가슴을 적셔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무기가 아닌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웠다. <국수> <역수> <올인>은 그냥 소설이라 해도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역시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실감은 약할 수밖에 없다.
<미생>에도 기보는 그저 시그널 타이틀로만 나오지만 스토리의 서술과 전개가 기존의 작품들과 좀 다르다. 작가 윤태호는 매회 바둑의 격언이나 잠언, 절정 고수들의 어록 등을 주인공의 상황과 매치시키고, 주인공의 상황을 수시로, 바둑으로 풀어준다. 또 주인공의 상념은 바둑 스승의 가르침, 입단 실패에 따른 좌절감, 자기비하감, 공부하던 시절 한 판의 바둑, 한 판의 승부를 치르며 느꼈던 고독과 무력함, 새로운 다짐, 스스로에 대한 타이름 등과 간단없이,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그래서 실감이 강하다. 물론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기존의 작품들과 실감이나 공감에서 별로 큰 차이가 없겠지만. 하긴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바둑소설이나 바둑만화에 관 관심이 없고 열심히 찾아 읽지도 않을 테지만.
바둑소설의 본보기는, 아직까지는 <방랑기객>이라고 생각한다. 기보와 얘기가 얽혀 들어가는 그것. 그런 의미에서 <미생>에도 기보가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고, 바둑을 그만큼 녹여 넣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일 텐데, 기보까지 요구하는 건 지나친 일이겠지만. 또 바둑을 모르는 독자들까지 끌어들이려면 기보까지 넣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미생>이 과연 기보 없이 바둑만화를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지 기대되는 바 크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