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4월 3일 법원에 출석하는 모습. 이 전 비서관은 자신이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을 지시한 ‘몸통’이라고 자처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적당히 할 거면 다시 하지도 않았다. 한상대 총장 의지도 강력하다.”
지난 2010년 9월 끝난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에 대해 여론의 거센 뭇매를 맞았던 검찰은 이번 재수사에서는 ‘남다른’ 각오를 내비쳤다. 지난 3월 16일 꾸려진 특별수사팀에 박윤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팀장)을 필두로 검사 14명을 배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검찰로서는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폭로로 인해 마지못해 나서긴 했지만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어차피 터질 문제였다. 장 전 주무관이 폭로하는 것을 보고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면서 “한 총장도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 재수사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등 떠밀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정권 실세에게 ‘면죄부’를 줄 것이란 말이 파다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검찰 수뇌부가 이 사건을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 그것도 현 정부 성골로 꼽히는 TK 출신 박윤해 부장검사(경북 상주)에게 맡겼다는 것이 알려지자 야권에서도 “검찰은 수사 의지가 없다”며 공세를 가한 바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1차 수사를 이끌었던 노환균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고향이 상주이고, 현재 서울중앙지검장인 최교일 검사장도 경북 영주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고려’에 의한 수사 배당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한 권재진 법무부 장관의 경우 민간인 불법사찰이 이뤄지던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한 바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의 주요 보고라인이 이번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셈이다. 그동안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을 비롯한 야권 의원들은 “권재진 장관이 있는 한 수사는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결과적으로 수사 초반 제기됐던 부실수사 우려는 어느 정도 ‘적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증거인멸 및 불법사찰의 윗선 및 이명박 대통령의 인지 여부, 민간인 불법사찰의 추가 사례 등 제기됐던 의혹 그 어느 것 하나도 명쾌하게 풀리지 않았다. 불법사찰 관련자들이 2심에서 유죄를 받은 직후인 지난해 4월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입막음’ 용으로 건네진 관봉 5000만 원의 출처도 어디인지 드러나지 않았다. 장 전 주무관 이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돈이 전해졌다는 정황이 포착됐지만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수사팀은 이들에게 돈을 줬거나 검찰 수사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을 비공개로 불러 조사했지만 혐의 입증이 힘들다고 결론을 내렸다. 관봉 5000만 원에 대해 정권 실세 비자금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검찰의 이러한 ‘꼬리 자르기식’ 수사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 정정길 전 실장과 임태희 전 실장. |
앞서의 수사팀 관계자는 “이번 수사 과정에서 진경락 전 과장이 2008년 8월 작성한 ‘공직윤리지원관실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문건을 확보했다. 여기엔 ‘VIP(대통령)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청와대 비선→VIP 또는 대통령실장’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건이 만들어질 당시 대통령실장이던 정 전 실장도 불법사찰 내용을 보고받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근거다. 또한 임 전 실장은 불법사찰 수습과정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임 전 실장은 2010년 9월 불법사찰의 실무진인 이인규 전 총리실 지원관과 진경락 전 과장 가족들에게 금일봉을 건넸는데 입을 막기 위한 것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가 흐지부지됨에 따라 특검 도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여야는 18대 국회에서 이 사안과 관련해 특검을 실시하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그러나 그 속내는 다소 다르다.
우선 새누리당은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도 ‘사찰 피해자’라는 것을 최대한 부각시키며 이명박 정부와 거리를 두는 한편, 참여정부 시절 이뤄졌던 총리실 민간사찰도 특검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야권은 대대적인 공세를 예고하고 나섰다. 율사 출신 민주통합당 중진 의원은 “이번 사건의 본질은 특정 세력(영포라인)이 국정을 농단한 것이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특검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의혹을 해소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 박영준 전 차관. 박은숙 기자 |
“울주 산업단지 입찰 경쟁사 밀어준 느낌”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에 연루돼 구속 수감 중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민간기업에 대해 불법사찰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로 조만간 추가 기소될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차관은 지난 2008년 울산 울주군 산업단지 조성 사업권을 원하던 S 사 대표로부터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 원을 받은 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동원해 S 사와 경쟁을 벌이던 T 사를 불법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시행업체 선정평가를 할 때 S 사에 유리한 점수를 주도록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울산시 측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이끌었던 비선라인이 이권에 개입해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은 수소문 끝에 T 사 전직 임원 A 씨와 전화통화를 했다. A 씨는 철저히 익명을 요구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사업 입찰 당시 총리실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당초 우리가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S 사가 우리와 공동사업자로 선정될 것이란 소문이 돌아 확인을 한 적이 있었다. 높은 곳에서 S 사를 봐준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파다했다. 결국 우리가 단독 사업자로 선정돼 그때는 루머라고 생각했다.
-높은 곳이란 어디를 지칭하나.
▲당연히 청와대다. 지금 나오는 뉴스들을 보니 총리실일 수도 있겠다 싶다.
-사찰을 받고 있다는 낌새는 못 챘나.
▲전혀 몰랐다. 다만 울산시 쪽에서 “S 사와 같이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울산시가 S 사를 밀어주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총리실 직원들이 우리 쪽에 직접적으로 어떤 액션을 취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 검찰 수사 결과 이명박 정부 실세로 불리는 박영준 전 차관이 관여한 정황이 나왔다.
▲S 사가 고위층에 선을 댔다고 들었을 때만 해도 울산시 공무원쯤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박 전 차관이라니 놀랍다. (박 전 차관이) 돈 1억을 받았다고 하는데 정권 실세가 설마 그 정도 돈에 그렇게까지 했겠느냐. 또 우리 말고도 다른 입찰에도 개입했을 것으로 본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