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기의 여왕’ 새누리당이 대선후보 경선 룰을 두고 심각한 갈등에 직면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이 고수하는 ‘원칙’이 당내에선 ‘불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일 새누리당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총회에 참석하는 박 전 위원장.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그동안 잠잠하던 새누리당이 복작거리고 있다. 경선 룰 개정을 둘러싸고 비박주자들과 친박계의 기 싸움이 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황우여 당 대표가 지난 15일 비박주자 대리인들과 만남을 가졌지만 별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황 대표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만남을 주선해주겠다는 뜨뜻미지근한 당근만 제시했고 소통의 문은 닫혀버렸다. 사실 ‘고용사장’ 황 대표가 경선 룰 정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너의 지시를 철저하게 따를 뿐이다. 막후에서 전권을 휘두르고 있는 박 전 위원장의 한마디에 당 지도부는 로봇처럼 따르기만 할 뿐 어떤 타협책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우택 최고위원이 황우여 대표의 적극적인 소통을 촉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당 지도부가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지시를 받아 로봇처럼 앉아있다고 비판을 받을 것이다. 나는 그럴 군번도 아니고 그렇게 하긴 싫다”고 말했지만 당 지도부가 처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누가 감히 나서서 박 전 위원장에게 ‘양보하라’며,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경선 룰 개정에 대한 박 전 위원장의 입장은 상당히 강경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사석에서 ‘대통령 안 돼도 된다. 끝까지 원칙대로 밀고 나갈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특히 친이계가 지난 2007년 경선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룰을 고쳐놓고 질만 하니까 또 다시 개정을 요구하는 후안무치한 태도에 대해 상당히 격앙돼 있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박 전 위원장측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자신이 룰 개정의 피해자이면서도 승복을 했고 끝내 패배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니까 또 다시 룰을 고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 상식의 문제로 박 전 위원장은 받아들인다. 개정에 합의해주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무원칙과 신뢰의 추락은 또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 공익적 관점에서도 이번 사안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 주변에서는 여전히 박 전 위원장의 일방적 태도에 대해 우려와 함께 질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양보와 타협 없이 오만하다’ ‘소통이 안 된다’는 말은 점잖은 축에 속한다. 소장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독재자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양보라는 것은 절대 모르는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자신감이 넘쳐 항상 참모들을 주눅 들게 하고 그들의 말을 잘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합리적인 성향도 강했다. 자신이 간과했던 것이나 모르는 부분은 과감히 참모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적어도 청와대 들어가기 전까지는 상당히 열린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이 대통령이 참석한 캠프 회의는 항상 난상토론으로 흘렀고 때론 이 대통령이 참모들을 말리기까지 했다. 그런 이 대통령도 청와대라는 권부에 들어가면서 고집불통으로 바뀌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박근혜 전 위원장을 한번 생각해보라. 지금도 이런데 만약 청와대에 들어간다면 누가 그 앞에서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겠느냐. 그게 지금 21세기에 적합한 리더십이란 말인가. 권력 분점과 열린 리더십은 세계적 추세다. 내가 볼 때 이번 경선 룰 개정도 큰 틀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친박계는 박 전 위원장이 경선룰과 관련해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발언한 이후 전부 입을 닫고 있다. 감히 누구도 나서서 정면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원로그룹인 7인회 멤버들은 이 문제를 박 전 위원장의 향후 대선행보 전략과 연관 지어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7인회 멤버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이번에 박 전 위원장이 비박주자들 주장에 밀려 양보를 할 경우 다음에 또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할지 모른다고 본다. 박 전 위원장 지지율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후보교체도 요구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박 전 위원장의 당선을 바라는 세력들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쥐고 흔들어서 흠집을 내는 데만 목적이 있다. 그렇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해 놓아야만 대선 이후에도 여당 내 야당으로서 그 정치적 활로를 모색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략적인 문제 때문이라도 경선 룰 개정은 비박주자들의 뜻대로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현재 갈등조정 불능상태에 있다. 집권을 바라보는 여당이 당내 현안에 대해서도 이렇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꽉 막혀 있는데 박 전 위원장이 향후 집권을 하게 된다면 더 큰 국정혼란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많다. 더구나 지난 4·11 총선에서 젊은층과 중도층의 저조한 지지에 대해 말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고집불통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더해질 경우 외연 확대에 큰 장애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지난 15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정몽준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왼쪽부터). 이들 비박주자 3인방은 완전 국민경선제를 요구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이번 경선 룰 개정이 결국 파국을 맞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보고 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고집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일단 한번 정한 원칙은 절대 바꾸지 않는’ 스타일상 경선 룰 개정이 비박주자들의 소원대로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이에 대해 “친박계가 비박주자들의 공세에 부담을 느껴 일단 협상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양측 모두 극적인 타협은 힘들 것으로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양쪽 다 시간을 끌면서 명분을 최대한 쌓은 다음 각자의 길로 갈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주자들은 탈당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점점 접점 없는 심각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사실 박 전 위원장의 경선 룰에 대한 집착이 꼭 틀렸다고도 볼 수 없다. 야권에서 모바일투표를 전격 도입하면서 오픈프라이머리 정신을 살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조직적인 참여로 민심이 당심에 왜곡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 새누리당의 경선규칙인 당심과 민심의 채택 비율을 50 대 50으로 가져가는 게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더구나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한다고 해도 비박주자들의 ‘종편 시청률에 가까운’ 지지율 때문에 일반 국민들의 참여가 극히 저조할 것이고 결국 당원 대의원들과 그들이 끌어 모은 ‘위장 국민’들이 오픈프라이머리의 정신을 왜곡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정치행위는 이해관계가 충돌했을 때 그 갈등을 조정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박 전 위원장이 자신의 말이 합리적이고 옳은데 왜 비박주자들이 저렇게 정치공세를 벌이냐고 하면서 역정을 내는 것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전계완 MBN정치아카데미 대표는 이에 대해 “사실 박 전 위원장 측의 주장도 틀린 게 없다. 그것도 말이 되지만 정치라는 게 갈등조정이라는 고유기능 측면에서 볼 때 꼭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집착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여야가 합의한 법도 바꾸는 마당에 여당의 당헌당규 개정문제가 무슨 헌법도 아닌데 왜 바꿀 수 없는지 모르겠다. 경선 룰 개정에 대한 양측의 주장이 옳고 그른 문제를 떠나 여당이 정권재창출을 하는 데 있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따지는 게 우선이다. 그런 면에서 박 전 위원장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자신의 대권가도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결정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이 대선승리라는 ‘대리’(大利)를 위해 경선 룰 고수라는 ‘소리’(小利)를 버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서의 전 대표는 이어 “지금은 양측이 본격 전투에 앞서 벌이는 일종의 신경전 성격이 짙다. 양측 모두 자신들의 주장을 완벽하게 관철해내지 못할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이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그에게 큰 마이너스이고 비박주자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여론에 의해 결정되지 않겠느냐. 중요한 것은 박 전 대표가 총선 전 쇄신작업을 비교적 잘 수행해 냈고 그 결과로 승리도 했다. 이번 경선 룰 정국은 그에게 찾아오는 두 번째 위기다. 그의 불통 리더십을 불식시키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본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수습해 봉합하지 않는다면 대선도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반 국민들에게 박 전 위원장의 현행 룰 고수는 힘 있는 대권주자의 오만함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는 사이 당심은 “이대로 가면 진다”는 우려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모두 박근혜 전 위원장의 입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