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기각 때보다 단정적 표현…검찰, 재항고 이후 증권성 의견서 추가 제출
일요신문 취재 결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신현성 전 테라폼랩스 공동대표의 몰수 및 부대보전(몰수보전) 청구 기각결정에 대한 검찰의 즉시항고를 지난 2월 16일 기각했다. 법원은 기각 결정문에서 "루나 코인은 자본시장법에서 규제하는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루나가 금융투자상품 중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관련기사 [단독] ‘부당이익 1690억’ 테라·루나 사태 베일 속 피의자 7명 정체 공개).
이번 결정문은 루나가 증권이 아니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썼다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남부지법 다른 재판부는 테라폼랩스 관계자들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루나의 증권성 여부에 대해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등 유보적인 표현을 써왔다.
신 전 대표의 변호인은 "영장재판부는 신 전 대표를 비롯한 이 사건 관련자에 대한 10여 번에 걸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전부 기각하면서 자본시장법 성립 여부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일관되게 판시했다"며 "재판부 모두 루나는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애초 검찰은 신 전 대표 재산에 대해 몰수보전과 추징보전을 함께 청구했다. 몰수는 재산 소유권을 박탈해 국고에 귀속하는 것이고, 추징은 몰수가 불가능할 때 그 가액의 납부를 명령하는 사법처분이다. 몰수보전, 추징보전은 피의자가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 몰수 또는 추징 대상인 재산을 재판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다.
남부지법은 2022년 11월 15일 추징보전 청구를 인용했다. 신 전 대표의 추징보전액은 1541억 원에 달했다. 신 전 대표의 서울 성동구 성수동 자택과 건물 두 채, 서울 금천구 독산동 건물 한 채, 경기 가평·화성 및 충남 태안 토지 수만 평, 지난 3월 오픈한 제주 서귀포시 리조트 분양권 두 개 등 가압류된 재산 대부분은 부동산이었다.
그런데 남부지법 같은 재판부는 같은 날 몰수보전 청구는 기각했다. "청구 대상 재산이 범죄로 취득한 재산이거나 이것으로부터 유래한 자산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몰수보전 기각에 즉시 항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범죄피해재산은 몰수 대상이 아니"라며 항고를 기각했다. 몰수 재산은 국고에 귀속된다. 이 때문에 사기 등 범죄수익을 피해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재산에 관한 죄는 원칙적으로 몰수를 할 수 없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검찰은 루나의 사기적 부정거래에는 재산에 관한 죄(사기) 외에도 자본시장법 위반이 적용돼 독자적 법익을 침해했으므로 재산 몰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루나가 자본시장법에서 규제하는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구속영장과 몰수보전, 추징보전 청구에 대한 법원 판단을 종합하면 신 전 대표 등에 대한 재판 쟁점은 자본시장법 위반보다는 사기와 배임 혐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검찰은 여전히 루나의 증권성 입증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검찰은 몰수보전 청구 2심 판결에 재항고했다. 대법원에 지난 3월 20일 증권성 관련 의견서, 4월 14일 추가 의견서를 냈다. 대법원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일각에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2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사기 혐의로 뉴욕 연방지방법원에 제소한 것이 국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 SEC가 루나를 증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호화폐 분야 전문가인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미국 사법부 판단이 아닌 SEC 주장이다. SEC도 '암호화폐는 증권'이라는 판례를 받으려고 기소한 것"이라며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여전히 암호화폐를 상품이라고 보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구 변호사는 "암호화폐를 산 게 투자계약이 되려면 수익 분배권 외에도 청산할 때 재산 분배권이 있어야 하지만, 암호화폐 백서 어디에도 청산 분배권에 관한 내용은 없다"고 덧붙였다.
암호화폐가 증권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국내 법적 분쟁에서도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지만 대다수 재판에서 쟁점은 아니었다.
암호화폐가 증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는 한 건 확인됐다. 남부지법은 2020년 3월 암호화폐 A 투자자들이 발행사 B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는 발행사 B가 투자계약증권인 암호화폐 A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을 따르지 않았고, 발행사 B의 장부조작 및 시세조종행위로 시세가 하락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장부조작 및 시세조종행위에 대한 입증이 부족할 뿐 아니라, 암호화폐 A를 투자계약증권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법원은 "암호화폐 A를 보유함으로써 수익을 분배받기는 하지만, 그러한 수익 분배는 발행사 B가 암호화폐 A의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제공하는 이익일 뿐 암호화폐 A에 내재된 구체적인 계약상 권리라거나 본질적인 기능이라고 볼 수 없는 점, 암호화폐 자체 거래로 발생하는 시세차익 취득이 암호화폐 A 매수의 가장 큰 동기이고, 이에 관하여 투자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상충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금융당국은 루나 폭락 사태가 벌어진 후에야 암호화폐 시장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는 암호화폐의 증권성 여부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투자를 받기 위해 제시한 광고‧권유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개별 사안별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증권에 해당할 가능성이 큰 예시로는 "사업 운영에 대한 지분권을 갖거나 사업의 운영성과에 따른 배당권 또는 잔여재산에 대한 분배청구권을 갖게 되는 경우, 발행인이 투자자에게 사업성과에 따라 발생한 수익을 귀속시키는 경우"를 들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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