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직구’ 시구로 주목받은 방송인 이수정. 사진제공=KIA 타이거스 |
▲ 탤런트 유인나.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
▲ 그룹 ‘달샤벳’의 아영이 시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
한국 프로야구에서 시구는 일상이다. 정규 시즌 동안 매일 본다. 여기다 본경기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끈다. 구단들은 그날 시구자가 누구인지 홍보하기 바쁘다. 문제는 시구자의 대부분이 여성 연예인이라는 것이다.
모 구단 마케팅 팀장은 “한 시즌 시구를 100번으로 본다면 90번 이상은 여성 연예인이 맡는 게 사실”이라며 “여성 연예인이 아니면 대중의 관심을 모으지 못한다”고 밝혔다. 다른 구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원체 여성 연예인의 시구가 주류를 이루다보니 구단 간 영입 경쟁이 치열하다. 재미난 건 다른 구단 시구자로 나선 여성 연예인을 초청하는 건 금기라는 것. 수도권 구단 마케팅 과장은 “많은 여성 연예인이 한두 번씩 시구 경험이 있는지라, 초짜 시구자를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며 “다행히 요즘은 여성 연예인 쪽에서 먼저 시구를 의뢰한다”고 귀띔했다.
여성 연예인들이 시구를 원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힘들이지 않고 인지도를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이한 투구폼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면 ‘개념 시구녀’ 혹은 ‘랜디 ○○’하는 별명으로 그날 포털사이트 메인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여성 연예인들은 투구폼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직접 선수를 찾아가 투구를 배우는 이도 있다. 더불어 그들의 옷차림도 날이 갈수록 시원해진다. 이제 핫팬츠는 기본이다.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시구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연예인은 거의 없다. 핫팬츠 차림의 여성 연예인은 더욱 보기 어렵다. 시구가 특정인의 홍보장소로 전락하는 걸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리틀야구 선수나, 연고지의 보통 사람들이 시구자로 나선다.
넥센은 2008년 의미 있는 시구자를 초청했다. 목동구장 마운드의 흙을 고르는 일을 담당하는 구장 관리인에게 시구를 부탁한 것이다. 관리인은 “어찌 신성한 마운드에 오를 수 있느냐”며 거절했지만, 구단 측의 부탁에 결국 시구를 승낙했다. 시구 전날 밤 관리인은 어둠이 내린 목동구장 마운드의 흙을 몇 번이고 다졌다.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다진 흙 위에서 시구를 하는 감격스런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넥센 측은 “시구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싶은 게 우리의 시구관”이라며 “앞으로도 보통 사람들에게 시구를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넥센은 올 시즌까지 그 약속을 지키는 유일한 구단이다.
근래 들어 배트걸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발단은 롯데 배트걸 신소정 씨다. 무용학도인 신 씨는 아르바이트 삼아 부산 사직구장에서 배트걸로 일했다. 일당 6만 원짜리 일이었다. 경기 중 배트과 공을 나르는 그를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 롯데 배트걸 신소정 씨.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
사실 배트걸이 등장한 건 꽤 오래된 일이다. 시초는 LG였다. 1993년 LG는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배트보이 대신 배트걸을 등장시켰다. 창단 4년 차의 LG는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를 견학하며 선진 마케팅을 배워왔다. 당시 LG는 딱딱한 경기 분위기에 부드러움을 가미할 목적으로 배트걸을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배트걸은 기존 배트보이와 별다를 게 없었다. 타자가 던진 배트를 가져오거나 구심이 원할 때 새 공을 배달하는 단순 업무를 반복했다. 그러다 2010년에 접어들면서 배꼽티를 입는 배트걸이 등장하며 남성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실용적인 면을 내세워 배트걸보단 배트보이를 선호하는 구단도 많다. 두산이 대표적이다. 두산은 여성 연예인 시구 초청엔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지만, 배트걸에 대해선 매우 보수적이다.
두산 김정균 마케팅 팀장은 “야구는 야구다워야 한다. 그라운드는 선수들을 위한 신성한 공간이어야 한다. 팬을 위한 서비스가 필요하다면, 그라운드가 아닌 스탠드에서 하면 된다”며 “빠른 경기진행과 기동력에 있어 배트보이의 장점이 더 크다”고 말했다.
배트걸의 배꼽티 착용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대개 여성팬들이 그렇다. 야구팬 최유미 씨는 “어째서 배트걸이 배꼽티를 입고, 일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배꼽티 입은 배트보이를 봤느냐”고 반문했다. 최 씨는 “배꼽티는 경기 진행과는 전혀 무관한 옷차림”이라며 “구단들이 너도나도 여성의 상품화에 나선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에서 배트걸은 친숙한 존재다. 한국처럼 배트걸은 아르바이트생이 대부분이다. 일본의 배트걸은 일당 6000엔(약 8만 4000원) 정도를 받는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는 일도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 배트걸처럼 배꼽티를 입는 경우는 거의 없다. 되레 빠른 경기진행을 위해 경쾌한 트레이닝복이나 티셔츠, 반바지를 입는다.
모 야구인은 “배트걸이 여성의 상품화로 의심되는 배경엔 언론 보도도 한몫했다”며 “여성 아나운서와 여성 시구자, 여성 배트걸 등 유독 ‘여성’만을 부각하는 언론의 성차별적 보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야구계에서 여성은 언제까지나 주변인 혹은 상품으로만 남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