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으로 높아진 기대감엔 부담도 따라…“웃음 덜고 감동 더해 ‘똔똔’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장편 영화 중 다섯 번째에 이름을 올린 ‘드림’은 우여곡절이 많은 영화였다. 처음 각본을 쓰기 시작했을 때가 벌써 10년을 훌쩍 넘긴 시점이었던 데다, 간신히 완성하고 나니 이번엔 제작이 순탄치 않았다. 수차례 거절 끝에 겨우 찾은 제작사로 이제야 작품이 빛을 보는가 했지만 그마저도 무산됐다. 이 정도로 좌절을 겪으면 포기할 법도 한데 이병헌 감독은 끝까지 ‘드림’에 말 그대로 ‘꿈’을 놓지 않았다. 극 중 등장하는 국가대표 홈리스 축구단을 떠올리게 하는 끈기였다.
“한 번 제작이 무산된 상태에서 캐스팅도 어려웠고 투자는 더 어려웠고 부침이 많이 있었죠. 그래도 저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드림’은 2010년 브라질에서 열린 홈리스(노숙인) 월드컵 대회에 한국팀이 처음 출전한 실화를 가져온 건데, TV에서 그 경기 방송을 해주는 걸 제가 봤거든요. 그런 경기가 있다는 것 자체도 전혀 몰랐지만 노숙인들을 지원해 주는 잡지 ‘빅이슈’ 같은 게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던 거예요.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을 몰랐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시작하게 됐던 것 같아요. 당시 경기 내용이 ‘드림’ 영화 내용과 거의 완전히 같거든요. 그 이야기를 쉬운 형태의 대중영화로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드림’은 선수 생활 최대 위기에 놓여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축구선수 홍대(박서준 분)와 열정과 돈 빼고 다 갖춘 현실파 다큐PD 소민(아이유 분)이 축구라곤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오합지졸 노숙인들을 모아 2010년 전 세계 노숙인 축구선수들이 참가하는 홈리스 월드컵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모두 실화와 똑같이 흘러가지만 캐릭터들의 면면은 모두 이병헌 감독의 손에서 완전히 새롭게 탄생했다고 했다. 특히 실제 2010년 한국 대표팀엔 없었던 홍대와 소민의 캐릭터를 구상할 때 좀 더 공을 들였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제가 2015년 홈리스 월드컵에 함께 갔었는데 그분들한테 여러 가지 사연을 많이 들었었어요. IMF, 잘못된 빚보증,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당한 사고 같은 것처럼 우리가 쉽게 떠올릴 만한 것들이 많았죠. 그런 사연에서 착안해서 캐릭터를 만들어 갔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 영화가 다소 지루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사람들 사이에 톤업을 조절해줄 수 있는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홍대와 소민이가 만들어진 건데 지금 와서 보면 조연을 위해 만들어진 주연인 것 같아요. 저한텐 그런 게 꽤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이병헌 감독 특유의 ‘말맛’ 나는 대사로 티키타카를 이어가는 홍대와 소민의 케미스트리는 ‘드림’에서 가장 큰 호평을 받는 부분이기도 했다. 노숙인들이 팔자에도 없던 축구에 도전하는 신이 드라마적인 측면에 조명을 두면서 다소 느슨한 템포를 이어갈 때 홍대와 소민이 등장하는 신은 남들보다 2배속의 속도감을 유지한다. 이병헌 감독은 이 부분 역시 연출에서 특별히 안배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제게 이 시나리오가 굉장히 어려웠던 건 뭔가 새로운 구상을 하기엔 이야기 자체가 실화이면서도 조심스러웠기 때문이었어요. 보통의 쉬운 형태로 간다면 전형적이란 단점이 있으니까요. 홍대가 사고를 치고, 원하지 않는 곳에 가서 사람을 만나고 성장한다는 구성 자체는 너무 전형적이잖아요. 그 전형성을 쓰려고 한다면 정말 재미있게 써야만 하는 거죠. 그래서 처음에 속도가 빨라야 한다 생각해서 휘몰아치는 느낌으로, 관객들이 ‘재미있게 웃으면서 이 상황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홍대가 운동장 안에 서 있더라’라고 느끼길 바라면서 연출했어요.”
소민의 경우는 시나리오 초기와 현재의 모습이 가장 많이 달라진 캐릭터라고 했다. 당초 홍대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로 설정돼 있었지만 감독과 스태프의 ‘사심’이 이뤄낸 기적 덕에 초기 설정을 갈아엎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미친 척하고 한 번 (출연 제의를) 넣어봤는데 되더라고요. 그러면 당연히 다 수정해야죠.” 당시 캐스팅 회의 상황을 떠올리며 이병헌 감독은 웃음을 터뜨렸다.
“저희 영화가 멀티 캐스팅이라서 아이유라는 슈퍼스타를 캐스팅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전 아예 리스트에 올리지도 않았었는데 회의 때 보니까 스태프 하나가 소민이 리스트 맨 위에 아이유 씨 사진을 올려놨더라고요. 왜 그랬냐고 물어봤더니 ‘진심 어린 마음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팬심으로 사진이라도 한 번 올려 봤어요’ 그러데요(웃음). 저도 사실 아이유 씨 팬이라서 ‘그래, 그럼 미친 척하고 한 번 넣어보자. 하겠다고 한다면 시나리오 다 수정하겠다’ 했는데…. 그렇게 일주일 뒤에 다 수정하게 된 거죠(웃음).”
그런가 하면 홍대 역의 박서준은 촬영장 안팎에서의 기둥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고 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 아이유와 이 감독이 촬영이 끝날 때까지 서로 서먹했던 것과 달리 박서준은 오히려 먼저 다가가려 애썼다고. 남이 만들어준 친목의 장에 자연스럽게 끼어들 수 있는 것은 낯가림이 심한 사람들에겐 특별한 행운이었다.
“제가 정말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배우들하고 장난치고 밥 먹고, 술 마시고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잘 못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본인이 나서서 해주는 거예요. 먼저 저한테 밥 먹자고 말 걸어주고, 식당도 자기가 알아보는데 심지어 술도 잘 마셔(웃음). 그렇게 술 마시면서 작품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제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줘서 너무 고마울 뿐이었죠. 반면 아이유 씨 같은 경우는 저랑 서로 말을 안 거는 편이었어요(웃음). 사적인 대화 아니면 일 대화라도 해야 하는데 자기 일을 또 너무 잘해버리니까 그 대화도 할 게 별로 없는 거예요(웃음). 그런데 그렇게 생긴 이상한 거리감이 저한텐 참 기분 좋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떤 부침이 있더라도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였기에 4월 26일 개봉까지 마치고 난 이병헌 감독의 마음은 일단은 홀가분하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일상은 돌아왔어도 끊겨버린 발걸음은 돌아오지 않는 한국 극장가의 상황을 본다면 마냥 후련함만을 느끼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23년 1~4월까지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들이 100만 관객조차 넘기지 못하고 VOD 시장으로 빠져버리는 암울한 현실 속 무려 1600만 관객을 동원했던 ‘극한직업’의 감독이 차기작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은 영화인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넘치는 기대감을 안겨왔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마음은 작품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크지만 그래도 여전한 부담감이 있다는 게 이병헌 감독의 말이다.
“저는 이 많은 한국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하는 이 현상이 코로나 이후 굉장히 방어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티켓 값 이슈까지 생기다 보니 당연히 관객 유입이 안 되는 상황인데 사실 관객 분들이 ‘아바타2’를 보거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티켓 값이 아깝다고 안 하잖아요. 영화가 재미있다는 건 기본적인 건데, 그 기본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창고 영화’라는 표현을 쓰긴 싫지만 그런 상태의 영화들이 방어적으로 비수기에 나오는 건 당분간은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영화계에서 그런 위기는 늘 있었고 항상 극복해 왔어요. 뒤이어 나오는 영화들이 있으니 ‘드림’이 구원투수가 됐으면 하는 말은 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중간은 했으면 좋겠네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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