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D 반대매매로 삼천리 등 8개 종목 하한가 직격탄…통정매매에 의한 시세조종 가능성도
#비상하던 ‘팔선녀’, 느닷없는 번지점프
지난 4월 24일 한국SG증권에서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진 8개 종목은 삼천리, 대성홀딩스, 서울가스, 선광, 세방, 하림지주, 다우데이타, 다올투자증권이다. 최근 1~2년 사이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10배 가까이 주가가 폭등했지만 불과 며칠간의 폭락에 그동안의 상승분을 거의 다 반납했다. 이들 종목은 △최근 외국인과 기관 매수로 주가가 급등했고 △최대주주 보유 지분이 많아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물량은 적으며 △신용매매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중견기업으로 재무적으로는 꽤 안정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렇다 할 호재도 없다. 요약하면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시장에서 그리 주목받을 만한 종목이 아니었다.
최근 1년 이상 이렇다 할 조정 없이 주가가 꾸준히 올랐다는 점에서 ‘통정매매’에 의한 시세조종 의혹을 제기하는 시각이 있다. 통정매매란 미리 정해진 시간과 가격에 주식을 매매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작전 수법이다.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무려 8개 종목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이 같은 주가 관리가 이뤄졌다면 전문가 집단의 개입을 의심할 수 있다.
실제로 강남 부유층 등을 중심으로 일명 ‘부띠크’ 형식의 투자전문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증시 주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기업인 가족과 연예인 등 부자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특정종목 ‘관리’를 통해 수익을 내는 세력이다. 가수 임창정이 이런 세력에 돈을 맡겼다가 이번 사태로 상당한 피해를 봤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들의 실체와 불법 여부를 확인하려면 해당 종목 거래내역에 대한 금융당국과 검찰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누가 방아쇠를 당겼나
8개 종목은 모두 상승국면에서 한국SG증권을 통한 매수가 많았다. 급락이 촉발된 것도 역시 한국SG증권 창구다. 외국인 투자비중이 높지 않은 종목인데 외국계 증권을 통한 거래가 많다면 파생상품 거래가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의심되는 파생상품은 최근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차액결제거래(CFD, Contract For Difference)다. 총 투자금의 40%만 자기자금으로 내면 나머지 60%는 차입이 가능하다. 400만 원을 투자하면 1000만 원어치 투자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투자는 투자자가 하지만 투자 실행은 중개증권사가 한다. 투자자는 증거금의 80% 이상을 유지해야 하고 투자 손익에 책임을 진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의 출발을 CFD 반대매매로 추정한다. 반대매매는 주가 하락으로 손실이 발생하면 투자과정에서 이뤄진 대출의 회수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중개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로 파는 행위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시작된 지난 4월 24일 이전에는 8종목 모두에서 이렇다 할 주가 하락이 나타나지 않았다. 차입금 회수에 문제가 없는데 굳이 반대매매를 해서 회수 위험을 높일 이유가 없다. 24일 대규모 매도 물량이 나온 것은 반대매매라기보다는 차익실현 또는 주가하락 위험을 피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문제가 된 8개 종목 가운데 5종목에서 한국증권금융(증금)이 5% 이상을 보유한 주주로 신고돼 있다. 증금이 신용융자를 제공한 대가로 주식을 담보로 잡은 것이다. 그만큼 돈을 빌려 해당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주가가 하락하면 반대매매 등으로 낙폭이 커질 수도 있다는 신호다. 다올투자증권, 세방, 다우데이터, 선광 등은 지난 4월 10일 한국증권금융이 담보로 잡은 주식이 늘어난 사실을 공시했다. 이들 8개 종목 모두 4월 중순 이후 주가 상승세가 멈췄고 지난 4월 17~21일에는 모두 하락세로 돌아섰다.
주가 조정 조짐에 금융당국의 조사 등으로 불안을 느낀 CFD 투자자가 차익실현을 결정했다면 중개증권사는 그에 따라 주식을 팔아 손익을 투자자에게 넘겨야 한다. 단기에 대규모 매도물량이 나오면서 다른 투자자들의 불안까지 키웠고 결국 투매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투매로 주가가 급락하면 뒤늦게 뛰어든 ‘빚투’ 자금들에서 반대매매가 이뤄지게 된다. 이는 다시 주가를 더 떨어뜨릴 요인이 된다. 실제 이번 사태 초기에는 한국SG증권 창구의 매도가 많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른 증권사에서 쏟아지는 팔자 물량이 더 많아졌다.
#‘빚투’의 역습 우려 커지는데…
이른바 ‘팔선녀 사태’의 주요 배경으로 추정되는 CFD는 2015년 교보증권이 처음으로 도입한 이후 현재 국내 증권사들 상당수가 제공하는 서비스다. 2019년 11월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 요건이 대폭 완화하면서 CFD 시장이 급성장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CFD 거래 규모는 2020년 30조 9000억 원에서 2021년 70조 1000억 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금융투자 상품잔액이 5000만 원 이상이고 연소득 1억 원 또는 순자산 5억 원 등의 요건을 충족한 전문투자자에만 허용된다.
이는 장외파생상품으로 투자자는 주권 등을 직접 매매하거나 소유하지 않는다. 총수익스와프(TRS)와 마찬가지로 투자자산 매매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 명의로 이뤄진다. 개인자금이지만 시장 통계에서는 기관이나 외국인(외국계 증권사) 자금으로 분류된다. 중소형 종목에 기관이나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면 개인들은 뭔가 재료가 있는 것처럼 착각해 추격 매매에 나설 수 있다. CFD를 활용해 주가를 부양하려는 세력의 먹잇감이 될 위험이 존재한다.
지난 4월 19일 ‘빚투’ 지표인 신용융자 잔고는 20조 원을 돌파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이 동시에 폭락한 2022년 6월 이후 열 달 만이다. 신용융자 급증과 함께 코스피는 올해 들어 25%나 급등했다. ‘팔선녀 사태’ 이후 증권사들은 2차전지 테마주 등 최근 주가가 급등한 종목에 대한 신용융자를 중단하거나 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 금융당국도 증권사들에게 신용공여나 파생상품을 통한 차입투자 위험을 각별히 관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금감원은 불공정거래 혐의 개연성이 있는 종목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할 방침이다.
그런데 이 같은 시장 불안에도 개인들의 주식 투자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팔선녀 사태 와중에도 개인들은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에서 매수 우위를 보였다. 주춤했던 에코프로비엠 등 2차전지 테마주도 다시 급반등하는 모습이다. 팔선녀 사태가 일어난 종목이 최근 투자 열기가 뜨거운 테마와는 거리가 있는 데다, CFD와 관련된 불안도 증시 전반으로 보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올해 들어 예금금리가 낮아지면서 시장 자금이 다시 증시로 가파르게 유입되고 있다”면서 “2차전지 테마는 단기 재료가 아니라 산업전반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만큼 이미 주가 많이 올랐지만 더 오를 것이란 믿음이 강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에코프로비엠 등 2차전지 테마주들의 대차잔고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CFD 같은 파생상품이 아니더라도 올해 들어 주가가 6배 가까이 오른 종목에 외국인들의 공매도가 집중된다면 신용융자 제한으로 추가 매수여력이 줄어든 개인이 이에 맞서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공매도로 주가가 급락하게 되면 ‘빚투’ 반대매매를 촉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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