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유상범 논란 속 홍·원·동 외곽에서 연일 빵빵…안철수까지 마이크 가동, 김기현 여전히 존재감 아쉬워
#꺼지지 않는 집안 마이크
연이은 설화로 당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했던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4월 24일 최고위원회의에 복귀하자마자 김기현 대표를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그는 이날 회의에서 “저번 최고위 회의는 그 누구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 개인적 사유로 불참한 거란 말씀을 드리겠다”며 “현 상황에서 최고위 회의에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어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당원들이 선택해 줬기 때문”이라며 “지난 전당대회 때 저는 여론조사 3%라는 꼴찌로 시작했으나 그렇다고 ‘엄한’ 곳에 도움을 구걸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태 최고위원은 “전광훈 목사가 저를 ‘간첩 같다’고 비난했음에도, 그리고 전당대회 기간 제 주변에서 전 목사에게 간첩 발언을 그만하게 해달라고 연락을 좀 해보라고 한 제안도 저는 단칼에 거절했다”고 했다. 김 대표가 전당대회 때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 전광훈 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을 꼬집은 발언으로 풀이됐다. 김 대표 또한 전당대회 레이스 초반 지지율이 하위권이었다.
태 최고위원 발언은 이내 집안싸움으로 번졌다. 김병민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4월 25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나가 “(태 최고위원이) 선거 때 애먼 곳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제 기억으로 태 의원이 선거 때 가장 크게 도움을 요청했던 분은 김기현 당대표가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거 어디든지 김기현 대표가 가는 곳마다 태영호 후보가 나타나서 선거운동을 했다”며 “낮은 지지율에서 시작한 (태 최고가) 김기현 당대표 후보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꽤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태 최고위원이 김 대표에 대해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다는 취지의 역공이었다. 태 최고의원은 파장이 커지자 김 대표를 때린 발언이 아니라면서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앙금은 이미 커진 상황이다.
엉뚱한 마이크가 가동되다보니 정작 제대로 된 소리가 나와야 할 대변인 마이크에서 잘못된 의견이 나오는 사태까지 최근 일어났다. 4월 24일 공개된 윤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가 그 시초였다. WP는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에 대해 “저(I)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거나,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용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즉시 “윤 대통령은 어느 나라 대통령이기에 일본을 대변하고 있느냐”고 질타했다.
그런데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틀린 반박 논평을 내면서 윤 대통령의 방미 외교에 불필요한 생채기를 남겼다. 유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주어를 생략한 채 해당 문장을 사용했다.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로 해석해야 한다”며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오역을 가지고 민주당은 반일 감정을 자극한다”고 몰아붙였다.
윤 대통령을 인터뷰한 한국계 WP 기자는 4월 25일 소셜미디어(SNS)에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윤 대통령의 한글 인터뷰 원문 녹취록을 공개했다. 주어가 일본이 아니고 윤 대통령이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유 대변인이 사실과 맞지 않는 논평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발끈하며 여권을 비판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바이든 날리면’ 때는 전 국민을 듣기 테스트 시키더니 이번에는 읽기 테스트냐”며 “방미 일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고나 치고 거짓말로 응수하다가 이제는 그 거짓말도 들통 났다”고 꼬집었다.
#홍·원·동 스피커의 위력
홍·원·동(홍준표 대구시장·원희룡 국토부 장관·한동훈 법무부 장관) 스피커가 끊임없이 불을 뿜고 있는 것도 김 대표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든다는 분석이다. 특히 홍 시장 논평 범위는 갈수록 넓어지는 중이다. 홍 시장은 4월 18일 페이스북에 “당 지지율 하락은 김기현 대표의 무기력 때문”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김 대표를 직격했다.
4월 26일에는 윤 대통령에 대한 조언을 하면서 여당을 나무랐다. 홍 시장은 윤 대통령의 대일외교가 야권 등의 비판을 받는 것과 관련해 “윤 대통령의 대일 외교 자세에 대해 집중 비난을 받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정공법으로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어 “그걸 방어하는 여당의 논리도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고 덧붙였다. 궁색한 여당 논리는 유상범 대변인 실수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홍 시장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런 이유 탓인지 김기현 대표는 4월 13일 홍 시장을 당 상임고문직에서 전격 해촉했다. 홍 시장에 대한 발언 봉쇄 시도로 읽혔다. 상임고문직에서 해촉하면 여의도 정치에 대한 논평 명분을 상실하는 것이니 판사 출신인 김 대표로서는 홍 시장에게 중앙당 관여 자격 상실 선고를 내린 셈이었다.
그러나 해촉 조치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홍 시장에 대한 주목도를 더 높였다는 평이다. 홍 시장이 훈수정치를 중단할 가능성 역시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두고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4월 25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홍 시장이 김기현 대표에게 비판을 집중하는 것과 관련, “정치적 포지셔닝(목표에 알맞은 전략)이 괜찮다”고 평가했다.
그는 “홍 시장이 반윤 할 수는 없지만 반김기현, 비윤석열의 길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는가”라며 “따라서 김기현 대표와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 전 수석은 “홍 시장은 지자체장이기에 정치적 발언, 주장, 메시지를 내기가 쉽지 않은 그런 상황인데 거기에 날개를 달아준 게 ‘상임고문 해촉’이었다”며 “이는 (홍 시장) 입에 모터를 달아준 것으로 뉴스에서 사라질 수가 없는 존재가 됐다”고 해석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 행보도 주목도가 높다. 불법행위를 하는 건설노조에 대한 엄단 방침에다 최근에는 전세 사기 대책을 내놓으면서 스피커 볼륨을 한껏 키우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범 배후에 민주당 유력 정치인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당보다 먼저 나서 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원 장관은 집이나 교통 문제 등 국민들의 체감 관심도가 높은 현안을 다루는 부처 수장이라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이다. 전국을 누비며 해결사 역할을 자임, 자연스럽게 발언의 강도도 높아지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중이다.
말솜씨가 좋아 야당이 ‘조선제일혀’라는 별칭까지 붙여놓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과 거침없는 설전을 이어가면서 뚜렷한 정책 의제를 꾸준히 던지고 있다. 최근엔 마약 이슈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데 ‘악 소리 나게 강하게 처벌할 것’ 등 언론이 좋아하는 어휘를 콕 찍어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스피커를 키우고 있다.
한 장관은 도어스테핑에 능하다. 출근길이나 국회 방문길에 기자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능수능란하게 야당을 마구 때리면서 자신이 강조하는 정책까지 홍보하는 재주를 지녔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홍·원·동의 말솜씨뿐 아니라 순간적인 기회 포착력이 사실 압도적”이라며 “마이크 역전 현상이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김기현, 언제까지 예열만
김기현 대표 측은 시간이 가면 해결될 문제로 보고 있다. 당 조직 정비가 이제 끝나가고 있으니 당대표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대표 목소리 크기가 회복되고 당 지지율 역시 상승한다는 것이다.
최근 중앙당 윤리위원회 구성을 마친 국민의힘은 4월 27일 중앙당 당무감사위원회를 꾸렸다. 이에 따라 조만간 전국 당원협의회에 대한 당무감사에 착수하면서 내년 총선에 대비한 조직 정비 작업을 개시할 것으로 보인다. 현역 의원들이 대거 당무감사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은 당무감사위원회에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는 김현아 전 의원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총선을 1년 정도 앞두고 당내 비리 의혹을 털어버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2021년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윤관석·이성만 의원, 이정근 전 당 사무부총장 등에 대해 당 차원의 당무감사나 진상조사 등을 하지 않은 민주당과 차별화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국민의힘은 잇단 설화로 논란을 일으킨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 등에 대한 징계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김 위원에 대해서는 고강도 징계가 내려지는 것 아니냐는 당 안팎의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3월 전당대회에서 뽑힌 두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론이 급부상하자 김 대표와 전당대회 과정에서 경쟁했던 세력이 마이크를 다시 가동하는 것도 김 대표에게는 새로운 부담이다. 김 대표와 당권을 두고 경쟁했던 안철수 의원은 최근 잇따라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 의원은 4월 2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현 지지율 침체 및 민심 이반 원인을 3·8 전당대회 직전 ‘당원투표 100%’로 바꾼 대표 선출 규정 탓으로 돌리면서 “최고위원 한두 명 징계하고, 사퇴하는 것으로 해결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이 늘어나고 제3지대론까지 나오는 것도 김 대표의 마이크 소리를 키우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김 대표의 마이크 예열 기간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악재 터널의 끝이 현재로서는 잘 보이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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