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강 후보로 꼽히던 한화가 꼴찌를 맴돌면서 한대화 감독 경질론이 대두됐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 있는 한화 스프링캠프를 찾았다. 캠프 분위기는 좋았다. 좌완 에이스 류현진은 어느 해보다 건강했다. 지난해 7억 원을 받고 입단한 프로 2년차 좌완 유창식도 시속 140㎞ 후반대의 빠른 공을 던졌다.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가세도 눈에 띄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에 빛나는 박찬호는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팀 훈련에 적극 동참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텍사스 레인저스 관계자가 “10년 전 우리 팀에서 뛸 때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고 덕담할 정도로 박찬호의 컨디션은 좋았다.
타선도 좋았다. 지난해까지 한화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물방망이 타선이었다. 무엇보다 중심 타자 부재가 심각했다. 4번 최진행이 분전했지만, 상대 팀 투수들은 최진행을 거른 채 후속타자와 대결했다. 그러나 지바롯데 마린스에서 뛰던 김태균이 돌아오며 중심 타선이 순식간에 강화됐다. 한 시즌 20홈런, 80타점 이상이 기대되는 김태균의 합류는 한화에겐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름없었다. 김태균 역시 스프링캠프에서 절정의 컨디션을 과시했다.
젊은 투수들의 성장세도 뚜렷했다. 양훈, 김혁민, 안승민은 프로 입단 이후 가장 뛰어난 구위로 한대화 감독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래서일까. 한화 캠프를 찾는 야구관계자는 너나 없이 “올 시즌 한화가 큰일을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결과는 참혹했다.
한화는 시즌 5번째 경기서부터 꼴찌로 추락했다. 최근 5년간 한화가 이처럼 단기간에 꼴찌로 내려앉고, 6월이 되도록 꼴찌 탈출에 실패한 적은 없었다.
흥미로운 건 한화 팀 전력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도 그럴 게 한화 팀 타율은 2할6푼5리로 리그 공동 4위다. 부동의 1위를 달리는 SK의 2할5푼3리에 비해 1푼이나 높다. 팀 평균자책이 4.85로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안 좋지만, 한화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팀 평균자책 5점대를 유지했다. 예년에 비해 투수진이 좋아졌다는 뜻이다.
▲ 박찬호.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 김태균.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 류현진.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한화 부진의 이유는 많다. 그 가운데 부실한 타선이 꼽힌다. 에이스 류현진은 11번의 선발등판 가운데 8번이나 퀄리티스타트(6이닝 3실점 이하)를 기록했다. 평균자책도 2.76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단 2승을 거두는 데 만족해야 했다. 호투를 거듭했지만, 타선이 침묵한 탓이다. 박찬호도 이름값에 걸맞은 투구를 펼쳤으나, 타선은 역시 약속이나 한 것처럼 터지지 않았다.
김태균의 고립도 심각했다. 김태균은 6월 중순까지 타율 4할을 기록하며 분전했다. 하지만, 김태균을 받쳐줄 타자가 보이지 않았다. 김태균은 타점보다 출루율에 신경써야 할 처지가 됐다.
외국인 투수들의 부진도 한몫했다. 한화가 “영입을 위해 5년 동안 지켜봤다”던 브라이언 배스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흔들리다 별다른 활약 없이 평균자책 48.60을 기록하며 미국으로 돌아갔다. 외국인 마무리 투수 데니 바티스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바티스타는 7세이브를 거두는 동안 3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은 전담 세이브 투수 가운데 가장 높은 6.43이다.
시즌 초 청주구장을 홈으로 쓴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대전구장 리모델링 관계로 한화는 청주구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청주는 원정과 다름없었다. 선수들은 대전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청주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피로도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천연 잔디 구장인 청주구장은 한화 수비진에겐 부담으로 작용했다. 한화는 4월 7일 사직 개막전부터 5월 3일 잠실 LG전까지 20경기를 모두 천연잔디 구장에서 치렀다. 가뜩이나 수비가 불안한 한화 야수들은 천연잔디 구장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실책을 연발했다.
그러나 갖가지 부진 사유에도 결국 책임은 감독이 질 수밖에 없다. 올 시즌을 끝으로 3년 계약이 끝나는 한 감독은 “재계약은 신경 쓰지 않는다”며 “팀을 잘 추슬러 상위권에 도전하는 게 유일한 목표”라고 말한다. 하지만, 야구계 안팎에선 한 감독이 시즌 중 전격 경질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 리모델링한 대전구장. 그간 선수들은 청주구장을 홈으로 사용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한 감독 경질설이 불거진 건 6월 12일부터 16일까지 5연패 당한 직후다. 모 야구인은 “2009년 이후 줄곧 하위권에 머문 한화가 올 시즌도 변함없이 꼴찌를 달리며 그룹 차원에서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안다”며 “구단에서 한 감독에게 유무형의 압력을 가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전조는 있었다. 한화는 지난 5월 12일 이종두 수석코치와 강석천 타격코치, 강성우 배터리 코치, 후쿠하라 미네오 수비코치를 전격적으로 2군으로 내리는 대대적인 코치진 개편을 단행했다. 이어 외부에서 김용달 타격코치를 급히 영입했고, 한용덕 투수코치를 수석코치로 승격시켰다.
야구계에선 코치진 개편을 구단 의지로 본다. 실제로 2군으로 내려간 이 수석코치, 강 코치, 후쿠하라 코치는 한 감독의 사람이자 감독이 원해서 한화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다. 그런 이들을 제치고, 한화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한 코치를 수석코치로 올린 건 구단이 한 감독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라는 것이다.
한화가 계속 부진하자, 야구계에선 한화 차기 감독 후보군이 떠돌고 있다. 천안북일고 이정훈 감독과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대표적인 차기감독 후보군이다. 한 야구인은 “올 시즌 LG 김기태 감독이 천안북일고 이정훈 감독에게 수석코치를 제안했으나, 이 감독이 정중히 거절한 적이 있다”며 “고교감독이 프로팀 수석코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뭐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감독이 때를 노리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참고로 천안북일고는 한화그룹이 재단이다.
김성근 감독이 차기 한화 감독 후보군에 포함된 건 순전히 그의 능력 때문이다. 야구계는 “지금의 한화를 바로 잡을 외부인사는 김 감독밖에 없다”는 데 의견을 함께한다. 수비불안 해소와 투수진 각성, 미숙한 주루플레이 보완, 팀플레이 강화 등에 있어선 김 감독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화 구단은 “시즌 중 감독 경질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화 노재덕 단장은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데 어째서 감독 경질설이 불거졌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한화 내부에선 “올 시즌 팀 성적이 부진해도 시즌 중 감독 교체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먼저 시즌 중 감독 경질을 꺼리는 게 그룹 분위기다. 1985년 배성서 초대 감독 이후 한화는 팀 역사가 27년이 되도록 단 8명의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감독대행도 1번밖에 없었다. 1998년 7월 강병철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희수 감독대행이 유일했다. 이 감독대행은 다음 해 정식감독으로 취임했다. 대부분은 임기를 모두 채우고 옷을 벗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의리 경영’이 야구단에도 적용된 결과다.
올 시즌 팀 성적은 나쁘지만, 한 감독의 평가가 좋다는 것도 경질설을 낭설로 보는 이유다. 지난해 한 감독은 2년 연속 꼴찌에 머문 한화를 공동 6위까지 끌어올렸다. 끈끈한 야구와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보며 야구 팬들은 한 감독을 ‘야왕’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많은 야구계 관계자는 “지난해 넥센이 좋지 않은 팀 성적에도 계약기간이 1년 이상 남은 김시진 감독과 3년 재계약을 맺은 것처럼 한화도 한 감독과의 재계약을 통해 팀의 안정과 리빌딩을 꾸준히 진행하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김 감독은 뜻밖의 재계약 후 “다음 시즌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올 시즌 넥센은 줄곧 선두권을 유지하며 김 감독의 공언이 빈소리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