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유나이티드(흰 유니폼)와 FC서울의 경기 장면. 제주는 선수비 후공격을 하는 ‘방울뱀 축구’로 홈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FC서울 |
한창 승승장구하다가도 조금만 삐걱거리면 금세 질타가 쏟아지는 성적 위주의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는 항상 이와 관련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득점을 해야만 승점 3점을 챙길 수 있지만 실점을 하면 그만큼 승리의 확률은 낮아진다. 전혀 다른 부분 같지만 어찌 보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전략과 전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하면 “가장 재미없고 흥미가 떨어지는 축구”라고 비판하지만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수비 축구를 보는 축구계의 시선은 과연 어떨까.
# 부산의 ‘마이웨이’
지금은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최강희 감독이 머물렀던 전북 현대의 화끈한 축구는 모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90분 내내 상대를 몰아치는 막강한 화력. 골이 터지든 터지지 않든 K리그 팬들은 “모처럼 진짜 축구다운 축구를 봤다”고 갈채를 보냈다. “적어도 홈 서포터스 앞에서는 ‘이런 (공격) 축구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당시 최 감독의 설명이었다.
어찌됐든 전북의 이런 축구는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한바탕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결과 다른 팀들도 이와 비슷한 용어들을 지어내며 저마다 흥미진진한 공격 축구를 공표했다. ‘신공(신나게 공격)’ ‘무공(무조건 공격)’ 등이 쏟아져 축구 보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조금은(?) 기대에 못 미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과거의 전북과 같은 공격 일변도의 전술을 택하기 어려웠다. 직면한 현실은 벤치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줬고, 어느 선까지는 안정 노선을 추구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결국 실리 쪽으로 무게를 두게 됐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실리 축구’의 예가 바로 부산 아이파크다. 올 시즌 K리그에서 부산은 초반 부진을 털어내고 조금씩 전진하더니 이제는 스플릿 시스템의 상위리그 진입에 이어 상황에 따라 우승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조금씩 ‘전진 앞으로’를 외치면서 득점을 올리긴 해도 여전히 득점 없는 경기가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실점도 아주 적다. 막강한 디펜스 운용으로 ‘적어도 패하지 않는’ 축구를 구사하며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이런 부산의 축구에 비난의 화살이 쇄도한다. ‘재미없다’는 것이 이유다. ‘질식 수비’라는 혹평에 가까운 얘기까지 들려온다.
그러나 안익수 감독의 철학은 분명하다. “지지 않는 것도 축구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훨씬 떨어지는데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 내내 밀리다가도 딱 한 번 공격이 성공해도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멀리 돌아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실점이 적은 팀이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0점대 방어율을 올리는 팀치고 스플릿 시스템을 기준으로 하위권에 내려앉는 경우는 없다. 실점 많은 팀이 오히려 공격마저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영진 전 대구FC 감독은 “그 누구도 수비 축구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현장에서 성적 하나하나에 울고 웃는 상황에 처해본 경험이 있는 이는 많지 않다. 패하면 진다고 욕을 먹을 거다. 결국 벤치는 이겨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동조 표를 던졌다.
▲ 경남FC(맨 왼쪽) 대 울산 현대 경기. 사진제공=경남FC |
‘적은 실점’을 지향하는 축구가 꼭 재미없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선입견일 뿐, 충분히 매력적이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와 K리그를 오가며 어느 팀보다 바쁜 행보를 이어가는 울산은 탄탄한 수비를 구축했으면서도 짜임새 있는 공격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까지도 울산의 닉네임은 변함이 없다. ‘철퇴 축구’는 표현 그대로 한 방이 강하다는 의미다. 더욱이 울산의 디펜스 라인을 진두지휘하는 곽태휘, 이재성 등 베테랑 수비수들은 본업 외에도 중요한 순간마다 득점을 올리며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제주 유나이티드의 ‘방울뱀 축구’ 역시 울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수비에 기본을 두고 강한 역습으로 득점을 노린다는 의미.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도 찬스가 포착되면 튀어나가는 제주의 독특한 공격 전략에 다른 팀들은 애를 먹는다. 그리고 그 효과가 분명하다는 걸 성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이들 구단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안정을 중시하면서 득점 루트의 다양화도 함께 꾀했다는 사실이다. 특정 스트라이커에 편중된 축구는 득점 경쟁이라는 점에서 재미를 주지만, 당사자가 묶여있을 경우 화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이에 반해 울산과 제주처럼 주력원들이 고루 공격 포인트를 올리면 상대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는 두 배의 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 전 포지션이 전부 득점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는 것이다.
울산과 제주 모두 충분한 득점력에, 적은 실점까지 모두 갖춰 진정한 안정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꼭 수비가 강하다고 해서 공격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닌 만큼 어느 정도는 열린 시선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형국이다.
여전히 막강 수비로 명성을 떨치는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 2000년대 초반 유럽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리스의 질식 수비 등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재미없다’고 손가락질은 받을지언정,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다. 결국 해당 팀의 선택이고, 팀 컬러인 만큼 존중해주는 분위기다.
축구가 존재하는 한, 공격도 수비도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극명히 다른 시선이지만 분명한 것은 축구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는 점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