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메이저리그에 도전”
6월 중순 일본 도쿄를 찾았을 때다. 임창용은 밝은 표정으로 “내년 시즌 더 큰 목표를 위해 도전하겠다”며 “몸값에 구애받지 않고, 나를 원하는 팀만 있다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임창용의 메이저리그 진출 시도는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모두 좌절됐다. 2007시즌이 끝나고서 임의탈퇴 신분으로 일본행을 선택한 것도 미국 진출이 좌절된 후였다.
사실 임창용의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은 여러 면에서 의구심을 자아낼 만했다. 먼저 그의 나이다. 내년이면 그는 38세가 된다. 적지 않은 나이다. 일본 프로야구 역대 사이드암 투수 가운데 38세 이후 시속 150㎞ 강속구를 뿌린 이는 거의 없다. 35세를 기준으로 구속이 뚝 떨어진다. 지난해까지 시속 150㎞를 뿌린 임창용은 극히 예외였다.
하지만 임창용도 나이를 속일 순 없었다. 도쿄에서 만난 임창용은 “확실히 지난해와는 몸이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지난해까진 아무리 자주 등판해도 몸이 쌩쌩했다. 피로회복도 빨랐다. 예년 같으면 푹 쉬다가 스프링캠프부터 컨디션을 끌어 올려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 스프링캠프에선 아니었다. 몸 만드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피로회복도 이전 같지 않았다. 속으로 ‘아, 이게 나이 먹는 증거구나’ 싶었다.”
일본 프로야구의 이점을 포기한다는 것도 의문이었다. 올 시즌 임창용의 연봉은 3억 6000만 엔이다. 우리 돈으로 54억 원이다.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를 통틀어 연봉 순위 6위다. 투수 중에선 이와세 히토키(주니치), 후지카와 규지(한신)에 이어 3위다.
외국인 선수 가운덴 최고 몸값이다. 내년에도 연봉은 기본 3억 엔 이상이 보장된다. 야쿠르트가 싫으면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 그만이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비롯해 여러 팀에서 임창용을 원하고 있었다. 확실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미국보단 그래도 5년째 뛴 일본이 남은 선수생활을 이어가기엔 유리했다.
하지만, 임창용은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냈고, 그의 뜻을 야쿠르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야쿠르트가 눈치채지 못한 게 있었다. 바로 임창용이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주변 상황이다.
# 감독과의 불화설?
2012시즌 개막전이 시작하고 두 달이 넘도록 임창용은 2군에 있었다. ‘오른팔 통증’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훈련부족이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푹 쉬었던 임창용은 스프링캠프에서 자신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꼈다.
당장 몸을 만들어 투구할 순 있었다. 하지만 무리하다간 큰 부상을 당할 수 있었다. 임창용은 아예 공을 던지지 않는 대신 차근차근 몸을 만들기로 했다. 야쿠르트도 임창용의 사정을 봐줬다.
임창용은 내심 6월을 넘기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팀 사정이 급했다. 5월 하순 9연패를 기록했다. 임창용의 대역으로 마무리를 맡던 토니 바넷도 갑자기 흔들렸다. 야쿠르트 코칭스태프는 임창용을 전격 호출했다.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임창용은 1군의 부름에 따랐다. 고연봉자로서 더는 2군에 있는 게 미안했다. 하지만, 우려대로 구위는 좋지 않았다.
5월 30일 메이지 진구구장에서 열린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홈경기에 임창용은 시즌 첫 등판했다. 팀이 0 대 1로 뒤진 9회 초 등판한 임창용은 1이닝 동안 5명의 타자를 상대로 2안타를 허용했다. 그러나 후속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오가와 준지 감독은 임창용에게 신뢰를 나타내지 않았다. 반대였다. 오가와 감독 눈에 임창용은 더는 마무리감이 아니었다. 오가와 감독은 이후 경기에서도 임창용을 셋업맨, 추격조 요원으로 활용했다. 심지어는 9점 차로 이기는 경기에도 등판시켰다.
이번엔 임창용이 서운해했다. 야쿠르트에서만 4년 동안 128세이브를 기록한 임창용이었다. 감독의 납득하기 어려운 등판 지시가 이어지자 “감독의 마운드 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완곡한 어투로 불만을 나타냈다. 그즈음 야쿠르트 프런트는 오가와 감독과 임창용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임창용이 팔꿈치를 다친 6월 22일 요미우리전에서도 그는 팀이 5대 2로 앞서던 8회 셋업맨으로 등판했다. 임창용의 지인은 “한일 통산 300세이브를 단 4세이브만 남겨둔 상황에서 임창용은 시즌 내내 평범한 불펜요원으로 뛰었다”며 “1년 새 확 바뀐 팀 내 입지를 수긍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 팔꿈치 부상 왜 당했나
임창용의 팔꿈치 부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가을에도 팔꿈치가 고장 나 수술대에 올랐다. 당시 그는 끊어진 팔꿈치 인대를 잇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2년을 쉬었다. 이번에도 팔꿈치 인대가 끊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부위를 두 번이나 다친 셈이다.
부상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무리다. 임창용의 지인은 “임창용이 몸을 채 만들지 못한 채 1군으로 올라갔다. 신체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에서 무리하게 공을 던지다 팔꿈치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며 “마무리를 되찾기 위해 코칭스태프에게 뭔가 보여주려는 의식이 강했던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4년 동안 잦았던 등판도 팔꿈치엔 좋지 않은 영향을 줬다. 임창용은 야쿠르트에서 뛰기 시작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53경기 이상에 등판했다. 지난해는 최다인 65경기에 등판했다. 그 많은 경기에 등판할 때마다 시속 150㎞의 강속구를 뿌렸으니 몸이 남아날 리 없었다는 게 일본야구계의 중평이다.
임창용이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휴식을 선택했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임창용과 가까운 한 야구인은 “임창용이 코칭스태프와 보이지 않는 갈등을 빚으며 이미 야쿠르트에서 마음이 떠난 상태”라며 “어차피 내년 야쿠트르와의 재계약이 어렵다면 올 시즌 푹 쉬었다가 2013년을 대비하자는 게 그의 생각인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임창용의 팔꿈치 인대 손상은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