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프로야구 선수 17년 전 학교폭력…당시 담임 2차 가해” 주장…돌아온 건 역고소, 귀기울이지 않는 경찰뿐
#구단에 막히고, 교육청에 막히고…전화 한 통 어렵다
동영상 제작업체 '무엇이든 표현하는 남자'(무표남) 대표 박한울 씨(30)는 올해 4월부터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현역 프로야구 선수 A 씨로부터 초등학생 시절 수차례 학폭을 당했다고 주장해 왔다. A 씨가 '문화상품권을 왜 안 주냐' '거짓말을 한다' '축구를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본인을 괴롭힌 집단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주장이다.
박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A 씨와 같은 반이었다. 그는 "하교한 뒤에도 도망가는 저를 붙잡겠다며 추적을 하고 끝내 집 앞까지 쫓아와 폭력을 일삼기도 했다"며 "이처럼 고통스러운 시절을 겪은 후 폭력 상황에만 노출되면 한쪽 다리를 덜덜 떠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학업 성적도 나날이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당시 담임교사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었다. 피해를 토로하자 가해 학생을 처벌하는 대신 폭행 피해를 입증해보라며 박 씨에 바지와 속옷을 내리도록 했다. 박 씨는 "아무 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 결국 반 친구들 앞에서 바지를 내렸다"며 "수치심과 모욕감 등 여전히 고통스러운 기억"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박 씨는 최근 아동학대와 성추행 등 혐의로 담임을 경찰에 고소했다.
물론 이는 박 씨의 주장으로 사실관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단 그가 학폭으로 아픈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것 자체는 사실로 보인다. 그는 담임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옆 반 담임교사와 먼저 연락이 닿았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녹취록 등에 따르면 해당 교사는 박 씨와 통화에서 "한울이가 많이 힘들어 했지"라며 A 씨 등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박 씨를 유독 괴롭힌 무리 4명 가운데 2명은 장문의 사과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박 씨가 이같이 나선 배경은 최근 불거진 '표예림 사건' 영향이 컸다. 고등학생 시절 표예림 씨를 괴롭힌 학폭 무리가 특정돼 세상에 알려졌으나, 반성 없는 태도와 2차 가해 등으로 피해자인 표 씨의 고통만 더해진 일이다. 박 씨는 자신도 '학폭 미투'에 동참함으로써 더는 유사 사례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박 씨도 고통을 다 떨치긴 힘들었다. 그는 이렇게까지 일을 키울 생각은 없었다고 강조한다. 사과만 받으면 끝날 일이었다. 다만 대화를 나누기조차 불가능했다는 게 문제였다. 자신의 학폭 피해 사실을 알리며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현역 선수 A 씨와의 연결 등을 문의했으나 닿지 않았다. 교육청은 '타 기관 파견 중'이라며 담임의 소재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알려왔다.
#가해자의 역고소…'피의자 인권' 때문에 피해자만 부른 경찰
오히려 '역고소'로 그의 상황만 난처해졌다. A 씨 측은 최근 '허위사실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박 씨를 고소했다. 고소장에는 "A 씨는 방과 후에도 운동을 했고 수업 중간에도 운동 때문에 나가야 할 일이 잦았다"며 "학폭 문제 등으로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간 적도 없는데 박 씨가 SNS(소셜미디어) 등에서 악의적인 명예훼손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학폭 피해로 우울과 불안 및 불면 등을 겪는 정서불안성 인격장애 진단까지 받아 대단히 고통스러웠다"며 "그럼에도 제게 사과한 2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 씨에 대해서도 징계나 보상 등이 아닌 성의 있는 사과를 요구했을 뿐"이라며 "연락마저 거부당한 상황에 몹시 황당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담임에 대한 경찰의 미흡한 수사와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 울분을 토로한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5월 17일 담임을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범죄는 인정되지 않으나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4조에 따라 송치한다"는 의견을 달았다. 검찰 송치가 의무인 아동 범죄에서 이 같은 의견을 첨부한 것은 사실상 '혐의 없음'에 따른 사건 종결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경찰이 박 씨만 소환해 조사했을 뿐 담임은 한 차례도 부르지 않았다. 경찰이 반드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으나, 아동학대 사건에서 양쪽 진술을 다 듣지 않은 부분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검도 이틀 만인 5월 19일 '보완수사'를 요구하며 사건을 경찰에 돌려보냈다. 혐의의 성립 가능성이 없지 않은데도 피의자를 소환하지 않는 등 절차 미흡이 이유라고 전해졌다.
박 씨는 "오래 전 일이라 명확한 증거가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저 역시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경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기 위해 조사를 받으며 과거 상황을 세세하게 그림으로까지 그리는 등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고 토로했다. 이어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가 전달됐다지만 현재 분위기로 봐선 과연 진전된 결과가 나올지도 의문"이라고 불안감을 내비쳤다.
그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경찰의 납득하기 힘든 대응 때문이다. 박 씨는 피의자 조사가 없었던 데 대해 경찰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가 일요신문에 공개한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방배경찰서 담당 수사관은 보완수사 요구를 받고도 "(담임이) 자신의 성적 만족도를 위해 바지를 벗으라 한 것 같으시냐"며 "피의자 조사는 경찰이 판단할 영역이며 수사에 미진한 부분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보완수사에선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방배경찰서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증거가 남지 않은 옛날 일로 교사를 경찰에 부른다는 건 인권 차원에서 고려할 요소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또 한 달 뒤면 공소시효가 끝나는 사건이므로, 오히려 신속히 송치해 조치한 측면도 있다"며 "우선 규정에 따라 보완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10여 년 전 사건으로 물적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 만큼 혐의 입증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 목격자 확보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관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법무법인 YK의 배연관 변호사는 "학폭이든 아동학대든 옛날 일이고 증거 없으니 덮고 가자고는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목격자를 한 명이라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변호사는 특히 "목격자가 설령 '바지를 벗기는 행위는 봤으나 성폭력으로 비치진 않았다'는 식으로 증언해도 다툼의 여지는 충분하다"며 "사건을 바라본 관점보다는 행위 자체가 있었는지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목격자가 없다면 그림을 그리거나 상황의 전후 관계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A 선수가 속한 구단 측은 우선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방침이다. 구단 관계자는 “학폭 등 선수들 신상에 관한 모든 이슈 대응 때와 마찬가지로 수사나 재판에서 사실관계가 드러나면 상벌위원회를 열어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며 “선수 개인이 역고소 등에 나선 상태기 때문에 구단으로선 이 밖에 공식적으로 정리된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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