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길 ‘울퉁불퉁’ 보도 높이 ‘제각각’ 운행 ‘뜨문뜨문’…“저상버스 보급만 치중하고 운영방식 관리 소홀”
지난 1월부터 노후화된 시내·마을버스와 농어촌버스를 새로운 차량으로 교체하는 경우 저상버스(차체 바닥을 낮춰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됐다. 도로의 구조·시설 한계 등으로 불가피하게 저상버스 운행이 곤란한 경우 버스 운송사업자는 노선별로 교통행정기관(지자체)에 저상버스 도입 예외 승인을 신청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예외가 승인되더라도 예외 사유를 해소해 추후 저상버스 도입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후관리 절차를 마련했다. 국토부는 저상버스 의무도입으로 전국 시내버스의 저상버스 도입률이 2021년 30.6%에서 2026년 62%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저상버스는 차체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경사판이 설치돼 있어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 교통약자가 좀 더 쉽게 승하차할 수 있다. 이에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 단체는 오랜 기간 저상버스 도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최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저상버스 보급 확대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보급에만 초점을 맞춘 채 운영방식에 대한 관리가 미흡하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버스 자체는 늘었지만 현장에서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앞서 2022년 10월 감사원은 ‘교통약자 등의 이동편의제도 운영실태’ 감사보고서를 통해 한 차례 국토부에 관리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기자는 지난 23일 서울시 강서구 일대를 지나는 버스를 이용해 실태를 확인했다. 서울시 장애인 현황을 살펴보면 강서구는 2만 8508명(2022년 기준)으로 25개 자치구 가운데 장애 인구가 가장 많다. 이 가운데 전동보조기기를 이용해야 하는 인구 역시 1800여 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강서구는 전동보조기기를 이용하는 구 거주 등록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인 전동보조기기 안심 보험 가입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강서구 일대를 돌아다녀 본 결과 지자체의 이러한 복지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전동보조기기를 운행해 저상버스를 탑승하기까지는 여전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은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곳은 강서구 가운데에서도 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가 밀집한 화곡동이다. 비아파트의 경우 아파트에 비해 엘리베이터나 휠체어 리프트 등의 설치가 미흡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화곡동 끝자락인 까치산역 1번 출구를 나서자 바로 버스 정류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침 저상 마을버스 한 대가 멈춰 섰으나 정류장 바로 옆에 있는 지하철 환풍구로 인해 버스 뒷문 앞에는 다가설 수 없었다. 버스 앞에도 차량이 줄지어 서 있어 버스가 위치를 조정해 경사판을 내리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다음으로 이동한 버스 정류장은 노후 사각형거 개량공사로 버스를 대기하는 길은 울퉁불퉁했고, 정류장 주변에는 장애물이 산재해 있었다. 버스 기사는 인도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버스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경사판 사용을 위해서는 버스가 인도 가까이 정차해야 한다. 경사판을 도로에 내릴 경우 경사가 가팔라져 휠체어가 뒤집히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통약자들은 앞서처럼 버스 정류장 인근에 세워진 장애물과 불법 주정차, 혹은 자전거도로 등으로 출입구 확보를 못 하거나, 확보를 하더라도 버스가 정류장에서 떨어져 세워지는 탓에 탑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제각각인 보도의 높이도 문제로 꼽힌다. 버스가 보도에 가까이 정차하더라도 보도의 높이가 많이 낮을 경우 저상버스 경사판과의 단차가 심해지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교통안전공단과 함께 보도 높이에 따른 저상버스 승하차 안전성과 편의성을 시험한 결과 연석 높이가 20㎝일 때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국 버스 정류장 연석의 67.8%가 높이 15㎝ 이하로 설치·관리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최근 연석의 높이가 표준 규격인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 설치가 확대되고 있지만 일반도로에 있는 정류장은 연석 높이 문제를 온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이 생겨나면서 교통약자의 버스 이용이 더 어려워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반 보도에 있는 정류장과 달리 한정된 폭 안에서 이동을 해야 하기에 사람이 빼곡히 서 있는 경우 움직이기에도 어렵고 버스 기사가 휠체어에 탑승한 교통약자를 발견하기도 어렵다는 것. 이날 화곡동의 한 복지센터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박은미 씨(39)는 “지하철역 인근 버스 정류장과 같이 사람이 몰리는 정류장의 경우 횡단보도를 건널 엄두조차 안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사람이 조금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탄다”며 “어쩔 수 없이 타기라도 하면 기사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죄송스러울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수동·전동식 휠체어, 특수 휠체어 등은 도로교통법상 자동차가 아닌 보행자에 해당해 보도(인도)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공사 구조물, 불법 주정차 차량이 있는 등 특수한 인도 상황으로 교통약자들은 저상버스에 탑승하는 경우를 포함해 다양한 상황에 불가피하게 차도로 내몰리며 사고 위험에도 노출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이 ‘장애인의 날’을 맞아 4월 13~18일 전동휠체어 및 휠체어 이용 장애인 42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6.3%(326명)가 차도를 이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장애물, 경사로, 불법 주정차 차량, 공사 구조물, 간판 등으로 보도 이용이 제한돼서’라는 응답이 61.2%(234명)로 가장 많았고, ‘보도를 이용했을 때, 대중들의 불편한 시선 때문에’라는 답변도 24.6%(94명)였다.
최근 5년간 실제 교통사고 위험을 겪었다고 응답한 비율도 73.8%(315명)에 달했다. 유경험자 가운데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에 대한 질문에는 69.2%(218명)가 월 1회 이상 위험 상황을 겪는다고 답했다. 주 1회 이상 빈번하게 겪는다는 응답자는 10.2%(32명)였다. 위험 상황을 겪은 장소로는 차도가 22.5%(130명)로 가장 많았고, 횡단보도 21.8%(126명), 보도 17.3%(100명), 아파트 단지 내 13.8% (80명), 이면도로 9.9%(57명) 순으로 뒤를 이었다. 휠체어 이용자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교통사고 위험에 시달리고 있었던 셈이다.
특정 노선이나 시간에만 편중 운행되는 점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이날 기자는 화곡동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653번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렸다. 그러나 20분가량 지나 버스가 도착한 후에도 저상버스는 오지 않았다. 이미 일반차량을 2~3대 보낸 뒤였다. 결국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다른 버스를 탄 후 환승을 해야 했다.
감사원은 앞선 2022년 10월 ‘교통약자 등의 이동편의제도 운영실태’ 감사보고서를 통해 저상버스 배차가 일부 노선 및 시간에 몰려 있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저상버스 운행가능 노선(급경사 등으로 저상버스 운행이 어려운 노선 제외)을 2개 이상 운영하는 100개 운송사업자의 305개 노선을 들여다본 결과 운송사업자가 노선에 저상버스를 배차하지 않거나(55개) 편중 배차(53개)하는 등 총 97개 노선(중복 제외, 전체 305개의 32%)에서 저상버스를 균등 배차하지 않고 있었다.
4개의 특·광역시(서울, 부산, 인천, 대구)에서 운행 중인 290개 저상버스 노선에 대해 배차 간격을 분석한 결과, 115개(39.7%) 노선에서 저상버스를 균등 배차했을 때보다 배차간격이 2배 이상(최대 4.58배) 차이가 나고 있는 점도 확인됐다. 특히, 인천의 한 운송사업자는 보유한 저상버스 5대를 전부 특정 시간대에 배차해 저상버스 이용 승객의 최대 대기시간이 168분에 이르기도 했다.
버스에 탑승하더라도 교통약자에겐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었다. 승객이 많은 시간대의 경우 휠체어를 타고 있는 교통약자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출퇴근 시간에는 일반 시민들도 몸을 구겨 넣어 버스에 탑승한다. 기자도 이날 오후 7시 30분께 5712번 버스에 올랐으나 발을 디디고 있기 어려울 정도의 인파에 버스 기사 옆 단말기 부근에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었다. 휠체어가 상당한 공간을 차지하는 만큼 교통약자가 같은 상황에 처한 경우 이러한 부분을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휠체어 고정석에 승객이 모두 앉아 있었는데 이들에게 자리를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교통약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보였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정부와 지자체가 저상버스 보급량 관리에만 치중해 현장에서의 문제와 운영방식 등에 대한 관리가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내발산동에 거주하는 장애인 김정현 씨(56)는 “휠체어를 타고 집 밖을 나가는 것부터 체력 소모가 굉장히 많이 된다. 근데 도로 한 가운데에 전봇대 같은 장애물이 있으면 힘이 빠지곤 한다”며 “버스 정류장까지 가도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주로 장애인 콜택시를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부처 간 이기주의, 미흡한 정책 연구 등으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마이너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선진국의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며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와 지자체, 자동차를 생산하는 자동차 업계가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초영 인턴기자 cykim19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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