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형 받은 가해자, 피해자가 자기 몸도 만졌다며 고소해 1심 유죄…“피해자 방어 행위 어려워져”
지난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에서 성추행 유죄가 선고된 여성 김 아무개 씨의 말이다. 김 씨는 한 술집에서 남성의 중요 부위를 만졌다는 이유로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김 씨 주장과 사건 기록을 보면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다. 김 씨가 성추행했다는 남성 A 씨는 같은 시간 김 씨를 성추행했다는 이유로 유죄가 선고돼 구속됐기 때문이다.
사건은 2020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강남구 한 술집에서 김 씨와 A 씨를 포함한 5명이 술을 마시게 됐다. 김 씨와 A 씨는 10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였다. 이들이 앉은 술집 테이블은 오픈된 장소로 홀에는 다수의 다른 손님들도 있었다.
A 씨 성추행 유죄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새벽 1시쯤 술에 취하기 시작했는지 갑자기 손가락으로 김 씨 가슴을 수회 찌르기 시작했다. 1차 강제 추행의 시작이었다. 김 씨는 “당시 가슴 수술을 했고, 이에 가슴이 아프다는 얘기가 발단이 됐다”고 말했다. A 씨의 손가락으로 가슴 찌르기는 계속됐다. 당시 술자리에 있던 B 씨 말에 따르면 “자꾸 옆에서 가슴 만지고, 팔짱 끼는 척하면서 자꾸 만졌다”고 말했다.
CC(폐쇄회로)TV를 통해서도 A 씨 범행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법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해당 술집 내에 설치된 CCTV를 통해 A 씨가 김 씨 오른쪽 자리에 앉아 있고, A 씨가 김 씨 가슴 부위로 5~6회에 걸쳐 손이 가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CCTV에는 김 씨가 A 씨 손을 뿌리치는 장면도 찍혀 있었다고 한다.
가슴을 만지는 A 씨에게 화가 난 김 씨는 자리를 뜨기로 했다. 새벽 1시 30분쯤 김 씨는 음식점을 나와 앞에 주차된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A 씨의 성추행은 끝나지 않았다. A 씨는 열려 있던 운전석 창문을 통해 손을 김 씨 카디건 안으로 집어넣어 유두를 꼬집었다. 결국 김 씨는 폭발했고 그 자리에서 욕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같은 술자리에 있던 지인이 화장실에 있다가 뛰쳐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이 장면은 차량 쪽을 비추는 CCTV가 없어 확인되지 않는다. 이때 김 씨는 2차 강제 추행을 당한 즉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김 씨가 A 씨를 신고한 사건은 2022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유죄로 판결 났다. 1심 법원은 A 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2023년 1월 항소심에서는 A 씨가 공탁금 1500만 원을 공탁한 사실이 양형에 유리한 사실로 적용돼 징역 8월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은 2023년 4월 대법원이 A 씨 상고기각을 하면서 확정됐다.
그런데 이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A 씨가 김 씨를 성추행으로 고소했고, 1심 법원에서 유죄로 판단돼 김 씨는 벌금 4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A 씨는 김 씨를 사건 발생 약 한 달 보름이 지난 9월 중순 강제추행으로 고소했다. 김 씨가 성추행 유죄 선고받은 장면은 1차 강제 추행과 2차 강제 추행 사이인 술집에서 나타난다.
이 장면에 대해서는 김 씨와 A 씨 사이 말이 엇갈린다. 김 씨 진술은 다음과 같다. 술집에서 A 씨가 김 씨 가슴을 계속 찌르자, 김 씨가 거부 의사를 표하면서 A 씨 허벅지 상단을 쳤다. 김 씨는 “오빠도 이렇게 만지면 좋아? 왜 자꾸 만지냐”면서 거부 표시를 했다. 김 씨는 “가슴 수술로 가슴이 아픈데 계속 찌르길래 A 씨도 아프면 좋냐는 뜻으로 때렸다”고 말했다.
반면 피해자 진술에서 A 씨는 김 씨가 대화 도중 자신의 성기를 만졌다고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가 “오빠 만진 건 미안한데, 나도 오빠가 내 거를 만지니깐 만졌다”고 말했다는 것. 결국 허벅지 상단을 쳤다는 김 씨 주장과 성기를 만졌다는 A 씨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A 씨가 김 씨가 성추행을 인정했다고 한 발언은 사건 다음날 낮에 이뤄진 김 씨와 A 씨 전화 통화에서 발생했다. A 씨는 당시 전화 통화에서 김 씨가 “오빠 만진 건 미안한데, 나도 오빠가 내 거를 만지니깐 만졌다”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김 씨는 전화 통화 당시 “오빠, 미안한데 오빠가 했던 행동 생각 안 나?”라고 말했다고 주장하며 통화 녹취록을 증거로 제시했다.
법원 증거 기록에 따르면 김 씨가 A 씨 중요 부위를 만지는 장면은 CCTV상으로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앞서 대화 과정에서 김 씨가 A 씨에게 만진 걸 인정했다는 주장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김 씨는 “전화에서 미안하다고 한 말은, 만진 게 미안하다는 게 아니라 허벅지를 때린 부분이나 10년을 안 사이지만 고소까지 하게 된 게 인간적으로 미안하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때 같은 술자리에 있던 B 씨는 김 씨와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B 씨는 “CCTV 보면 알겠지만 A 씨가 자꾸 옆에서 가슴 만지고, 팔짱 끼우는 척하면서 자꾸 만져서 김 씨가 하지 말라고 얘기를 했다. (그래도) 계속 그러기에 김 씨가 ‘너도 이렇게 하면 기분 좋아?’ 이랬고, A 씨가 ‘어, 기분 좋아’라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법조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건으로 김 씨가 유죄까지 받게 된 경우가 전례가 없다는 애기가 나온다. 강서경 서울고등법원 조정 전담 변호사는 “이제껏 모든 형사사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성범죄를 당하는 사람이 저항을 하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위를 한 것을 두고 처벌한 사례가 없다고 알고 있다”면서 그 이유는 성추행은 상대방의 그 의사에 반하거나 성적수치심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처벌하는 것인데,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 의사에 반하거나 수치심을 주는 성추행을 하기 어렵다는 게 대부분의 판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 변호사는 “성범죄자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하던 피해자가 저항하는 행위를 강제추행으로 처벌한다면 피해자들은 적극적인 방어행위를 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반대로 성범죄자들은 이런 선례를 악용해 피해자를 무고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 씨는 1월 유죄를 선고 받은 직후 항소한 상태다. 김 씨 변호를 맡은 이준헌 법무법인 세림 변호사는 “1심 재판부가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며 납득하지 못한다”는 입장으로 2심에서 무죄를 주장 중이다. 이준헌 변호사는 “무죄를 받은 이후 무고 고소까지 예정 중에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성추행 유죄로 구속된 상태로 이 사건 관련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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