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식 신고로 훈육 어려워” vs “예외 허용하면 빠져나갈 구멍 생기는 것”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명의 초등학교 교사가 남긴 글이다. 이 교사는 ‘왜 아동학대 위험을 무릅쓰고 훈육해야 하냐’는 제목의 글에서 “애들한테 싫은 소리 안 한다. 애가 다른 애 괴롭히며 쌍욕을 하든, 책상을 뒤집으며 난동을 부리든, 온 학교를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든 그냥 웃는 얼굴로 ‘하지 말자’ 한마디 작게 하고 끝낸다”고 밝혔다. 생활지도를 했다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할 게 무섭기 때문이다.
현직 교사들은 교직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생활지도’를 꼽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2022년 실시한 제41회 스승의 날 기념 교원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원들은 교직 생활 중 가장 큰 어려움으로 ‘문제행동, 부적응 학생 등 생활지도’(24.6%)를 꼽았다. 지난 1월 전국 유‧초‧중등 교원 5520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7%가 “교육활동, 생활지도 중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당할까 불안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난 5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3년 교육활동 보호 국회포럼’에서 손덕제 한국교총 부회장은 “수업 방해, 학칙을 어기는 등 문제행동 학생은 증가하는 반면 즉각적인 제지 등 마땅한 방법이 없어 교사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문제행동 제지 과정에서 오히려 무분별한 아동학대로 신고돼 고통받는 교사가 점차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를 위해 교사의 정당한 학생 생활지도에 대해서는 아동학대로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법안 발의 이후 교원단체는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학부모단체는 “교사를 위한 아동학대 면책법은 위헌”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 및 10명이 지난 5월 11일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교원의 정당한 학생생활지도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아동학대 범죄로 보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여기서 얘기하는 아동학대는 아동복지법 제17조 제3호부터 제6호까지에 의한 금지행위를 말한다.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신체적 학대행위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지난 5월 15~24일 해당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 기간 동안 2만 359건의 의견이 달렸다. 대부분 찬성 입장이다. 특히 한국교총과 교사노동조합연맹 등의 교원단체가 나서서 개정안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원주현 교사노동조합연맹 정책1실장은 ‘교육활동 보호 국회포럼’에서 “전체 아동학대 신고 건에서 경찰 종결 및 불기소 처분을 받은 비율에 비해 교사를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 신고의 경찰 종결 및 불기소 처분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며 “그만큼 교사에 대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대받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동학대 처벌법’이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무너뜨리고 있는 현실”이라며 “손쉽게 신고하고 아니면 그만인 교사를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교총도 보도자료를 통해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방지와 많은 학생의 학습권 보호, 그리고 교원의 고통을 하루 빨리 해소하려면 즉시 법안을 심의‧통과시켜야 한다”며 “미국도 2001년 5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교사 법적 책임보호’ 조항을 마련, 범죄행위나 명백한 과실 외에는 교사의 생활지도에 면책특권을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학부모 단체들은 즉각 해당 개정안에 우려를 나타냈다. 학부모 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교사의 아동학대 면책 법안을 규탄하는 학부모·시민단체’는 5월 2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법안의 철회를 촉구했다. 학부모들은 아동학대 신고로 인한 교원들의 고충 해결이 아동복지법상 학대 예방을 위한 금지 조항에 예외를 인정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학대를 학대가 아니라고 하는 방식보다는 학교에서 제기되는 아동학대는 가정 내 아동학대와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고 조정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50만 명 교사들의 의견뿐 아니라 500만 명의 학생들과 보호자, 시민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혜연 장애영유아학부모회 고문은 “아동학대에 예외를 허용하는 방식으로는 교권이 회복될 수 없다. 오히려 양측이 첨예하게 다투고 증명하려 들 확률이 높다”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라는 표현으로 면책을 하면 방어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어 내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아동학대 예외를 허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교 내에서 아동학대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역할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형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은 “아동학대법으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사법적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학교 내에서 1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학교와 교육청의 역할을 먼저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시‧도교육청에 아동학대 전담기구 설치 및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배치 조항 신설을 제안한다. 해당 기구가 교사의 교육활동 관련 학생, 학부모와 교사 간 이견을 조정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앞의 이혜연 고문은 “교육 분쟁 조정위원회를 설치해서 학교와 교육청의 판단에 따라 문제 있는 교사에 대한 면직 등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며 “현장에서 일부 학생과 학부모로 인해 교원들이 힘들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며 학교와 교육청, 학부모 모두 공동체적 방향으로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 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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