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전 의원이 1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중앙지법에 들어서던 중 항의하는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에게 계란 세례를 받고 넥타이를 잡히는 등 수난을 당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 이상득 전 의원이 1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중앙지법에 들어서던 중 항의하는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에게 계란 세례를 받고 넥타이를 잡히는 등 수난을 당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이 전 의원의 경우 청와대와 검찰이 소환 시기 및 사법처리 수위를 사전에 조율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때문인지 정치권 일각에선 청와대와 사정당국이 이 대통령의 친인척·측근비리 수사와 관련해 ‘핫라인’을 가동하고 있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상왕’이 구속되면서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친인척·측근비리 수사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는 청와대와 사정당국의 핫라인 구축 의혹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현 정권 출범 이후 검찰은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비리 수사를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일궈냈다. ‘방통대군’으로 통했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왕차관’으로 군림했던 박영준 전 기획재정부차관 등 최측근 실세들을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의혹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시킨 데 이어 이 전 의원마저 구속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특히 현직 대통령의 친형을 구속한 사례는 헌정 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검찰은 또 2007년 대선 당시 조직된 ‘안국포럼’과 원로자문그룹인 ‘6인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이 대통령의 측근들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메스를 들이댔다. 6인회 멤버였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때 고승덕 의원에게 돈봉투를 건넨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안국포럼 멤버였던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박 전 의장과 같은 혐의로 기소돼 원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안국포럼 멤버이자 현 정권 실세로 군림했던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은 SLS 이국철 회장으로부터 수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또한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은 부산저축은행 로비 대가로 1억 7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2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부산저축은행 로비대가로 1억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1심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았고,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도 ‘함바 비리’ 사건과 관련해 수천만 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이 대통령 친인척 비리 수사에서도 적잖은 성과물을 냈다.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 언니인 김옥희 씨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자리를 주겠다며 김종원 서울시버스운송조합 이사장으로부터 3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3년 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이 대통령의 사촌처남인 김재홍 전 KT&G 복지재단 이사장은 세방학원 이사 재직시절에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4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검찰은 현 정권 출범 이후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에 대해 거침없는 사정 드라이브를 구사했다. 하지만 내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해 말 ‘내곡동 사저 불법 매입’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대통령의 장남 시형 씨를 조사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대통령의 친구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은 워크아웃 대가 등으로 46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32억 원을 선고받았지만 검찰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각종 비리 건으로 구속기소되거나 기소를 준비하고 있는 친인척·측근들 또한 드러난 혐의보다 사법처리 수위가 낮은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현 정권 출범 이후 각종 대형 게이트 사건에 이름을 올렸던 박영준 전 차관은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사업 시행사인 파이시티로부터 1억 6000여만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이 자신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이동조 씨에게 2억 원가량의 돈을 맡겨놓은 정황을 잡고 추가 기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을 재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도 지난 6월 13일 불법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박 전 차관을 추가 기소한 상태다. 하지만 민간인 사찰 건은 차치하더라도 박 전 차관이 각종 대형 비리 사건에 연루된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는 점에서 파이시티건(1억 6000여 만원 수수)만으로 그를 기소하는 것은 사법처리 수위가 너무 낮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검찰이 구속된 이 전 의원에게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이 전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이 전 의원을 구속한 결정적인 계기는 저축은행 비리 사건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17대 대선 직전인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50·구속기소)과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56·구속기소)으로부터 총 6억 원 안팎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잡고 있다. 이 전 의원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돈을 받은 사실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은 없었다고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이 전 의원이 과거 사장으로 재직했던 코오롱그룹으로부터 자문료 형식으로 1억 500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 및 이 전 의원실 직원 계좌에서 발견된 뭉칫돈 7억 원의 출처와 성격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의원은 드러난 혐의 외에도 김학인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구속기소)으로부터 공천헌금 2억 원 수수 의혹, 포스코 계열인 학교법인 포스텍이 2010년 6월 부산저축은행에 500억 원을 투자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의혹 등 각종 비리사건에 개입된 의혹도 받고 있다.
따라서 검찰이 이 전 의원을 기소할때 저축은행 비리 혐의만 적용할지 기타 의혹 사건을 병합해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형국이다.
야권 주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청와대와 사정당국 간에 핫라인이 구축된 만큼 이 전 의원의 사법처리 수위 또한 사전에 조율이 됐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전 의원을 비롯해 각종 비리 혐의가 드러난 정권 실세들에 대한 처리를 현 정권 임기 내에서 마무리 짓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하에 단계적으로 사법처리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 ‘좌상대 우재진’ 지난해 8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상진 검찰총장(왼쪽)과 권재진 법무부 장관(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대구 출신인 권 장관은 경북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정통 TK맨이고, 한 총장은 검찰 내 ‘고려대 인맥’을 대표하는 맏형 격이다. 이 대통령은 나흘 뒤인 19일에는 정진영 전 인천지검장을 청와대로 불러 1시간가량 면담한 뒤 민정수석으로 최종 낙점했다. 정 수석은 권 장관의 고교(경북고) 및 대학(서울대 법대) 후배인 데다 동향인 TK 출신이다.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권 장관을 정점으로 친위 황금 사정라인이 구축된 셈이다. 야권과 여당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친위 사정라인을 구축한 배경에는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 친인척·측근비리 사건을 대비하고 정권 말 레임덕을 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이 대통령의 우려대로 지난해 9월 불거진 ‘이국철 게이트’ 사건을 비롯해 민간인 불법사찰, 저축은행 비리 사건, BBK 사건 등이 점화되면서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하나둘씩 사법처리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검찰은 내곡동 사저 문제를 비롯해 BBK 가짜편지 논란,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등 이 대통령과 일가족,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사법처리된 친인척과 측근의 수는 적지 않지만 이 대통령 일가 및 정권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대형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의 사정 칼날을 피한 결과물이다. 이는 이 대통령이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친위 사정라인을 구축한 배경과도 맞물려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