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페 애틱에서 윤성현 9단(오른쪽)이 재능 나눔의 일환으로 이화여대 바둑동아리 회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
시작한 사람은 양종호 씨(50)와 여자 프로기사 김혜림 2단(20). 양 씨는 젊었을 때 다른 일을 하다가 바둑이 좋아 마흔 넘은 나이에 명지대 바둑학과에 들어갔고, 대학원에서 석사를 했고 지금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바둑학과에 출강하고 있으며 석사를 하면서부터 자신의 사무실을 젊은 바둑 친구들에게 개방해 ‘공부하는 클럽’을 만들었던 ‘독특한 인물’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청년 바둑인들의 멘토로 등장했던 인물인데, 그가 지난해 10월 공부하는 클럽을 진일보시킨 것이 바세바이고, 거기에 깃발을 든 사람이 김혜림 2단이었다.
바세바는 확장 속도가 놀라웠다. 회원이 100명, 200명씩 퍽퍽 늘어 현재 회원 숫자는 540명에 이르고 있다. 남녀노소의 제한은 없지만, 대부분은 청년들이다. 젊은 남녀 프로기사, 연구생 출신의 아마고수, 대학바둑연맹의 회원들 거의 전부가 들어와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카페 애틱을 연 사람은 유승엽 씨(45). 성균관대 바둑대표선수인 바둑인이다. 한국기원의 <월간바둑> 기자를 거쳐 서울신문 패왕전의 관전기를 담당했고 한게임의 바둑팀장을 역임했다. 한게임 전에는 타이젬에도 있었고, 바둑출판업체인 ‘바둑서당’에서도 근무했었으니 ‘바둑계의 요직을 섭렵’한 경력이다. 그런가 하면 삼성SDS, SK 전산실 등에서도 일한 적이 있고, PC통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하이텔 천리안 유니텔 등의 바둑에도 관여한 바 있어, 당연히 바둑계 사람 중에서는 자타공인, 전산이나 IT 쪽에도 가장 밝은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한게임 바둑이 중국에 진출하려고 할 때, 유 씨는 책임자로 베이징에 건너가 일하다가, 2년 반쯤 전에 한게임이 사업을 접자 돌아왔고, “그때 바둑이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바둑 동네를 떠나고 싶어 바둑 아닌 다른 일을 모색하고, 벌써 몇 번 실패도 하다가 몇 달 전에, 바둑과는 관련 없이 카페를 차린” 것인데, 개점과 동시에 바세바가 카페 애틱을 본부로 삼으면서 카페 애틱은 결국 ‘바둑 카페’가 되었다.
사전조사를 위해 전국에 유명하다는 카페는 다 가보았다. 서울 시내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남 미사리를 비롯한 경기도 일원에 강화도까지, 그리고 강릉을 위시한 강원도 이곳저곳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강릉은 특히 커피 축제가 열릴 정도로, 커피로 유명한 곳. 답사 비용만 족히 기백만 원이 들었다.
카페를 해볼까 하던 생각도 물론 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김지명 씨(47)의 권유였다. 김지명 씨는 바둑TV 진행자, 바둑행사 사회자, 프로기사 김원 7단의 형인데, 바리스타뿐만 아니라 와인에도 조예가 있고 그림도 잘 그린다. 카페의 실내 장식 그림은 그의 솜씨다. 그가 요즘은 바둑TV보다 카페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를 볶고 내리며, “세계 각국의 커피, 그 중에서도 좋은 것들만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볶은 신선한 커피를 오늘 드립니다. 보세요. 부풀어 오르지요? 예쁘지요? 신선할수록 더 크게 부풀어 오릅니다… 베트남 커피요? 그게 이상해요. 베트남 커피는 베트남에서 마시면 아주 맛이 있는데, 그래서 사 갖고 와 한국에서 마시면 맛이 없어요. 고급 커피는 아닙니다…이거 한번 드셔보세요…”라고 열심히, 즐거워 죽겠다는 듯 설명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카페 애틱은 전철 2호선 홍대입구역, 지금은 없어지고 대신 무슨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청기와주유소 네거리에서 성산동 방향으로 150미터쯤 직진 → 왼편에 청기와예식장을 보면서 예식장 맞은편 골목으로 30미터 → 세븐일레븐 뒤편에 있다. 대로변이 아니어서 얼른 눈에 띄지는 않지만, 찾기는 어렵지 않다. 홍대 앞 부근은 단독주택을 사무실로 개조해 쓰는 곳이 많은데, 애틱도 그런 집 1층이다. 정원을 주차장으로 만들어 차를 여러 대 댈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바오밥나무 탁자들의 실내는 홍대앞의 예쁜 카페들처럼, 넓지도 않지만, 좁지도 않고 구분이 아늑하며 방이 몇 개 있어 소모임에 좋아 보인다. 예전에 인기가 있었던 대학로의 ‘민들레영토’나 포천의 ‘민들레울’ 같은 곳이 생각난다. 다만 천장이 좀 낮고, 그래서 마치 다락방 같은 분위기가 나기에 이름을 애틱이라고 했단다.
▲ ‘바세바’를 창립한 양종호 씨(왼쪽)와 회원들. |
최 초단은 12세 때 입단하고, 프로가 된 후에는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 캐나다에 유학 갔다가 얼마 전에 귀국한 재원. 1990년대 프로지망생을 위한 바둑도장의 바람직한 본보기를 제시했던, 유명한 ‘강동명인’ 최화길 원장의 딸이다.
이화여대 바둑동아리 멤버 중에 영어 잘하는 홍다나 양도 영어 선생이다. 여행은 양종호 씨, 바리스타는 김지명 씨… 이런 식이다.
협동조합이 이채롭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협동조합은 ‘불허’의 대상이었고 농협 축협 등 특별법으로 허락한 것 몇 개가 있었을 뿐이었는데, 작년 말에 여야 합의로 협동조합법이 통과되었다. “간단한 예만 하나 들자면, 여럿이 공동으로 투자해 카페를 운영하는데, 수익이 생기면 그걸 챙기는 게 아니라 일을 늘리고 알바를 더 고용해 일자리를 창출해 나간다… 그런 겁니다 … 아무튼 세상을 바꾸고 싶지요. 거창하다면 거창하지만, 나부터, 내 주변부터라고 생각하면 어려운 것만도 아니지요. 세상을 바꾸려면 우리가 놀고 있는 바둑계부터 바꾸자, 바둑계를 바꾸기 위해 바둑인들부터 바뀌어 보자는 겁니다. 바둑계의 현안, 바둑의 위기, 그런 것들에 대해 여기서는 아주 제한 없이 무수한 얘기와 주장, 논의가 오고갑니다. 이런 것들이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집단지성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바세바 양종호 방장의 말이다.
한번 가보시기를 강추한다. 일단 커피가 맛있다. 값도 싼 편이다. 저녁때는 실내 조도를 좀 낮추고 와인 한 잔을 곁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바둑을 정말 잘 두거나 진짜 좋아하는 540명의 선남선녀들을 아무 때나 만날 수 있고, 거저 배울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7과목을 공부하면서 ‘소통과 공감’의 능력을 키우고 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니까.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