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서울 용산역 대교문고에는 안철수 원장의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된 지 하루 만에 매진돼 일시품절 안내문이 비치되어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안 원장은 최근 대통령 후보로 자신이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안 원장은 “국민들의 갑갑함을 풀어주지 못하는 정치 현실에 대한 실망이 저에 대한 기대로 모아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제가 정치에 참여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제 욕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라며 입장을 밝혔다.
2. 경험부족 극복 방법
안 원장에 대한 우려의 시선 중에 하나는 정치경험 부족이다. 하지만 안 원장은 자신의 정치경험 부족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민주화운동 경험이 없는 이들은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고도 하던데요. 모든 사람이 같은 길을 걸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위해 애쓴 분들로부터 혜택을 입었다고 생각하고, 고 김근태 의원 등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대해서도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다만 저는 같은 시기 전문가로서 열심히 살면서 제 몫을 했고, 그 가치 역시 낮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며 나름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왔다고 자부했다.
3. ‘국정운영과 참여’ 경험담
“많지는 않지만 경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30대 후반에 김대중 정부의 정책기획위원을 맡았는데요. 당시 한상진 서울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아 국가의 미래와 인권 개선 등에 대해 토론하고 정책을 건의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정보통신부 장관직을 제안 받고 사양했습니다만 청와대 회의에서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상대로 기업의 투명경영 등 경제개혁에 대한 의견을 적극 개진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미래기획위원회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거래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를 비롯해 창업 활성화를 위한 대안, 정보기술(IT)산업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는 등 경제 전반에 대해 비판적 의견과 대안을 많이 제시했죠. 그런데 이야기를 해도 실행이 되지 않아 참 갑갑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상생’ 얘기를 했을 때, ‘이슈를 꺼냈으니 꼭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별 소용이 없더군요.”
4.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나
안 원장은 역대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며 현 정부의 북한 정책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안 원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 정책은 교류협력으로 남북 긴장완화의 성과를 거둔 반면 ‘퍼주기’ 논란을 유발했죠. 반면 이명박 정부는 채찍만 써서 남북갈등이 심화됐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채찍 위주의 강경책, 기계적 상호주의를 고수한 것은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붕괴 시나리오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시나리오는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며 비판했다.
안 원장은 통일을 하나의 ‘사건’이 아닌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자신의 대북정책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통일을 사건으로 보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시각인데요. 통일세 문제를 꺼내는 것을 보면 어느날 갑자기 통일이 닥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대북정책, 국방정책, 외교정책이 각각 따로 가는 게 아니라 일관된 전략을 가지고 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북한 핵에 대해서 안 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우리에게 양보할 수 없는 목표”라며 “6자회담을 통해 국제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되 남북 간의 경제협력을 통해 접촉 창구를 넓힐 수 있어야 합니다. 차근차근 대화를 해나가야죠”고 의견을 나타냈다.
▲ 안철수 원장이 지난 5월 30일 부산대학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
“선한 것은 약한 것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선한 것의 반대는 악한 것이며, 약한 것의 반대는 강한 것이지요. (저는) 약자에게는 따뜻하게 대하는 편이지만, 강한 사람이 부당하게 공격하면 더 세게 맞받아치는 ‘괴팍한’ 성격이 있습니다(웃음). 사업을 하는 동안 척박한 환경 속에서 경쟁자들과 겨루고 결국 살아남았던 것도 이런 성격 덕이었다고 생각해요.”
6. 통합의 리더십에 적합한 인물인가
지난해 6월 서울대생들이 뽑은 ‘차기 대통령이 가져야 할 덕목’ 중에 첫 번째는 ‘사회통합과 포용능력’으로 뽑혔다. 안 원장은 자신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적합한 인물로 불리는 것에 대해 ‘과분한 말씀’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자신의 강점을 설명했다.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영자, 교수로 일하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많이 만난 편이다. 정보기술(IT) 노동자 등 아주 젊은 사람들과도 많이 교류했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정부의 각종 위원회와 기업 사외이사 등을 지내면서 연배가 높은 분들과도 넓은 네트워크를 갖게 됐습니다. 특히 세계 최상위권의 철강회사인 포스코에서 40대로는 처음으로 이사회 의장을 맡아 대부분 60~70대인 다른 이사들과 함께 토론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값진 경험을 했습니다. 만일 제가 정치를 한다면 과거 어느 진영에서 싸우던 사람이 아니니 어느 쪽과도 소통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지 않을까요.”
7. 과연 천재인가
안 원장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이뤄냈다. 혹자는 그를 천재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안 원장은 어렸을 때는 오히려 공부를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초등학교를 한 살 빨리 입학한 안 원장은 키가 제일 작았다. 유치원 다닐 나이에 초등학교에 가다보니 공부도 영 잘 못 따라갔다. 한글도 초등학교 들어가서 익혔다. 대신 안 원장은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면서 책 읽는 것에 재미를 붙여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성적표에 ‘수’ ‘우’가 별로 없었고, 중학교 때도 전교는 둘째 치고 반에서 1등 한 번 못해봤다. 고등학교 때 조금씩 나아지더니 고3 때 반에서 1등하고 이과 전체 1등을 처음 해봤다. 그때만 해도 부산고등학교 이과 1등하면 서울의대를 갔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8. 육아전쟁
안 원장은 딸이 어릴 때 양가 부모님 손을 많이 빌렸다고 했다. 아내가 레지던트 1년차 때 딸을 낳아 출산휴가도 한 달밖에 못 쉬고 선배들 눈치도 보여서 마음고생 했는데, 키우는 일도 막막했다. 처음엔 서울 사는 장모님이 와서 돌봐주시거나 제가 출근할 때 장모님 댁에 맡겼다 퇴근할 때 데려오곤 했다. 군의관 시절에는 출근 시간이 빨라 사당동에서 새벽 6시에 아이를 차에 태워 동부이촌동 장모님 댁에 맡기러 갔다. 그러다 1년에 3분의 1 정도는 부산 어머니께 맡겨 이산가족이 되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둘째 아이는 생각도 못했다. 의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조교를 했는데 월급이 30만 원 정도였다. 둘이 벌어도 대학원 등록금 내기가 빠듯했고, 생활비도 부족해 일하는 분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
딸에게 수학을 잘 가르칠 것 같다는 질문에 안 원장은 “제 딸을 가르치는 건 정말 어렵던데요. 산수를 가르쳐봤는데, 당연한 걸 이해를 못하면 화가 나서 차근차근 설명을 못하겠더라고요(웃음). 엄마가 훨씬 잘하는 것 같아요”라며 보통 아버지의 모습을 드러냈다.
정리=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이거 한 권이면, 나도 대선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