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호(왼쪽)가 김일성 주석 100세 생일 기념행사인 지난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 단상에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용해(가운데), 김정은(오른쪽)과 함께 군사 퍼레이드를 지켜봤다. AP/연합뉴스 |
북한의 파워엘리트들은 현재 숨죽이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3대 세습을 통해 하루아침에 등극한 절대 권력자에게 대들 세력은 없어 보인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에게서 전수받은 반대세력 제거와 숙청을 통한 권력 장악 노하우는 빈틈을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하지만 ‘평양판 토사구팽’은 더 큰 격랑을 예고하는 신호탄일 것이란 관측도 쏟아지고 있다.
▲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
이영호를 비롯한 신진세력의 퇴장은 전격적으로 발표됐지만 치밀한 각본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봐야한다.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부부, 그리고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한 최용해 총정치국장이 자신들의 후계권력 구축 구도에 방해세력으로 점찍은 이영호에 대한 치밀한 비리조사를 벌인 뒤 축출했다는 얘기다.
우리 정보 당국이 이영호와 그 측근들에게 이상기류가 돌고 있는 것으로 처음 파악한 것은 7개월 전 김정일 사망 국면에서였다. 지난해 12월 25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놀라운 장면을 공개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옛 금수산의사당)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대장 군복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장성택의 군복 차림은 정보 당국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처남인 김정일의 그늘에 늘 2인자 자리를 맴돌던 장성택이 김정은 시대의 출범을 앞두고 군복차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부각시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한국과 미국의 대북 휴민트(Humint, 인적정보)망을 통해 특급첩보가 날아들었다. 권력 실세 중 하나인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 장성택의 군복차림에 대해 반발했다는 요지의 보고서였다. 당시 우동측은 자신의 측근들에게 “쟤는 뭔데 대장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거냐”며 장성택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우동측은 부장이 공석인 국가안전보위부를 사실상 이끌어 가는 인물이었다. 장례식 운구행렬 때 김정일의 관을 실은 영구차를 호위한 김정은 등 8명의 노동당과 군부 핵심 인사 중 한 명이다.
그런데 그의 비판 발언이 장성택의 정보망에도 걸려든 정황이 드러났다. 결국 지난 4월 노동당 대표자회를 계기로 우동측은 권력 전면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보위부 직책은 물론 국방위원회의 멤버에서도 빠졌다. 우동측의 몰락은 결과적으로 이영호의 해임을 위한 전주곡이었다.
하지만 이런 평양 핵심 권력층의 분위기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이영호는 이후에도 김정은을 수행하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일의 영구차를 맨 앞에서 이끈 이영호가 거세당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영호의 전격 해임 소식이 북한 관영매체를 통해 알려진 지난 16일 아침까지는 누구도 그런 관측을 내놓지 못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김정은의 공식 일정에 수행했고 건강상으로도 아무런 이상이 없던 것으로 드러나 ‘개인 신병’ 문제로 해임됐다는 북한의 발표를 믿는 대북 전문가는 없었다.
사실 김정은은 김정일 사후 파격에 가까운 통치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북한 관영TV가 방영한 공개활동 모습에서 이를 생생히 접할 수 있다. 설날이던 지난 1월 24일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은 김정은은 환호하는 교원들과 원생들을 부둥켜안거나 손을 잡아주는 등 스킨십을 보여줬다. 그리고는 식당에 들러 테이블 위에 놓인 간장병을 들어 손가락에 찍어 맛을 보는 뜻밖의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학원 간부들이 미리 준비한 원생들의 공연을 관람할 것을 권하자 “명절인데 아이들이 쉬지 못하니 그냥 두라”고 해 관계자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학습용 대형 한반도 지형판을 이용해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보고를 올리자 그는 “이건 안 되겠으니 인민군대에 말해 제대로 된 걸 만들어 보내주겠다”고 말했고 원생들의 책상에 직접 앉더니 높이가 맞니 안 맞니 하는 식으로 질책하듯 큰 제스처를 내보이는 장면도 방영됐다. 이후 이어진 이른바 현지지도 과정에서도 농구장에서 직접 공을 바닥에 튀겨보는 등 체험형 활동을 보였다. 기념식수장에 가서는 “미리 준비한 대로 나무에 삽질 몇 번 하는 건 형식주의”라며 직접 흙을 채운 뒤 구둣발로 다지고 물을 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 때문에 김정은이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7월 초에는 짧은 스커트에 가슴 위 어깨선을 다 드러낸 차림을 한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성과 함께 관람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또 공연 무대에 미키마우스와 영화 록키의 장면이 나타나기도 했다. 앞서 평양의 유희공원을 찾아서는 자이로드롭과 같은 오락기구에 관심을 보이고 햄버거 보급실태를 살펴보기도 했다. 김정은이 어렸을 때부터 서방국가에서 유학을 해 자본주의나 서구문물에 대한 거부감이 적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정황을 고려할 때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나서기는 시기상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본인의 성향이나 의지만으로 폐쇄체제의 문을 열어젖히기는 부담이고 자칫 체제붕괴를 재촉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문제는 김정은이 대남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히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2월 연평도 포격도발 부대인 북한군 4군단을 방문해 남한을 ‘적’으로 수차례 적시하면서 “원수의 머리 위에 강력한 보복타격을 안기라”고 지시했다. 이런 대남인식은 1월 8일 공개된 첫 기록영화에서 김정은이 북한 군가를 거론한 뒤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남진(南進)의 길을 가자”고 강조한 데서도 드러난다.
이영호 전격 해임에서 드러난 김정은의 권력구축 행보에 대해서는 관측이 엇갈린다. 후계권력 구축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장애세력을 쳐나가는 과정에 돌입한 것이란 진단도 나오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북한은 한국과 국제사회의 여론이 북한 권력 내부의 동요나 변란 가능성에 쏠리자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이영호 해임은 정상적 당권 행사”라고 해명성 보도를 내놓았다. 북한도 김정은 정권이 흔들리는 것으로 외부에 비치는 건 부담으로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김정은이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다는 지적은 과거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때와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 김정일은 아버지에 대해 3년상을 치르고 1997년께 가서야 각종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이듬해 자신의 정권을 출범시켰다. 특히 군부에 대해서는 승진잔치와 벤츠 승용차 선물 등을 통해 환심을 사려 노력했다. 오진우와 최광, 이을설 등 김일성과 항일빨치산 활동을 함께했다는 군부 원로들까지도 챙겼다. 불과 7개월 만에 ‘군부 과외교사’로까지 불린 이영호와 그 추종세력을 주저앉혀버린 건 권력 내부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물론 김정은도 군부의 지지를 얻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지난 2월 김정일의 생일에 맞춰 김정각 군총정치국 제1부국장에게 차수 칭호를 부여했다. 다른 장성급 23명에 대한 승진잔치도 벌였다. 김영철 정찰총국장과 박도춘 당 비서가 대장으로 올랐고, 주규창 당 기계공업부장과 백세봉 제2경제위원장 등이 상장 계급을 달았다.
하지만 이들도 언젠가 이영호나 우동측 등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김정은은 자신의 후계자 지명이 이뤄진 2009년께부터 20여 명의 군과 노동당 고위간부를 숙청했다. 김정은이 자신의 경제업적으로 삼기 위해 주도한 화폐개혁이 주민들의 반발과 공급물량 부족으로 실패로 돌아가자 2010년 3월 실무책임자인 노동당 계획재정부장 박남기를 간첩 협의를 씌워 공개 총살했다. 김정은의 후계권력 구축 과정에서 반대세력 색출 등에 공을 세운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도 지난해 1월 간첩 혐의로 처형했다. 당시 박격포를 이용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고위간부들에게 참관케 했다는 전언도 평양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군부와 노동당의 고위간부들이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낄 것이란 점이다. 살기 위해 김정은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하는 분위기가 보편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영호 해임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이 냉각기를 보낸 뒤 장성택과 최용해에게 본격적인 반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주목된다. 이영호 기용을 위해 일찌감치 권력 전면에서 물을 먹고 물러난 김영춘 전 총참모장이나 군원로인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 등이 의기투합할 경우 사태는 심상치 않게 돌아갈 수도 있다. 권력투쟁의 조짐으로 번지면 군부를 뒤흔들어 위축시켜온 장성택·최용해 세력에 대해 반격을 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여기에 민심마저 동요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짧은 후계수업 경력과 부족한 카리스마는 김정은에게 아킬레스건이다. 김정은은 요즘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 김일성의 모습과 리더십을 벤치마킹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밑머리를 짧게 쳐올린 헤어스타일과 인민복, 한겨울 검은색 롱코트에 이어 여름철에는 밀짚모자 형태의 중절모를 쓴 스타일은 김일성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위대한 영도자’로 등극한 그에 대해 주민들과 군부 원로들은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승승장구하던 권력 실세의 급작스런 숙청은 평양 권력에 대한 외부세계의 관심을 한껏 고조시켰다. 당국은 ‘설’ 수준에 불과하다지만 이영호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최용해 총정치국장 측과 무력충돌이 발생해 인명피해가 나는 총격전까지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김정은과 그 후견세력이 주도한 이번 사태의 구체적인 내막은 베일에 싸여있다. 군부에 대한 숙청이 김정은 후계체제의 안착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으로 번질지 주목된다.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 yjlee@joongang.co.kr
군부 내 ‘달러벌이’ 갈등
김정은은 권력을 거머쥔 직후부터 군부의 돈줄 죄기에 나섰다. 자체적인 외화벌이 기관까지 두고 미사일 등 무기밀매는 물론 송이와 조개 등 수산물, 골재용 모래까지 손을 대며 세력을 키워온 군부에 대한 견제였다. 물론 군부의 달러벌이는 김정은에게도 통치자금 확보란 측면에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군부가 비대해지면 체제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영호의 전격 해임 배경의 하나로 군부의 달러벌이 싸움이 지목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무기 판매 자금을 둘러싼 북한 군부의 알력은 군부의 간판급 무역기관인 청송연합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청송연합은 중국과 이탈리아 이란 등에 지사를 두고 유엔 등 국제기구의 대북 제재망을 피해 무기거래를 해 온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북한이 한 해 무기밀매로 벌어들이는 돈은 1억~5억 달러로 추산된다. 청송연합은 북한의 해외 무기판매의 절반을 담당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기관이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 군부 원로로 분류되는 오극렬이 차지하고 있던 청송을 2009년 초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대들다시피 해 빼앗았다. 김영철은 이영호 전 총참모장과 함께 신군부 인사로 분류된다. 2009년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낙점돼 권력 장악을 서두르던 시기였다. 노른자위 무역기관을 이영호·김영철 등 신군부가 강탈하다시피 장악했다는 얘기다.
청송연합 등은 직원 대부분이 고위간부 자제들로, 평양의 고급 외화식당이나 비밀 룸살롱 등에서 유흥을 즐기는 정황도 드러났다. 해외 주재원의 경우 호화주택에 고급 외제 승용차를 몰며 골프장을 드나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정은에게 이런 내용이 보고돼 이영호를 제거하는 명분으로 활용됐을 수 있다는 게 우리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