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빈 김우동 이준민 원영식 등 자본시장 ‘범털’ 연이어 수감…“교정당국 각별한 관리 필요”
서울 구로구 천왕동에 위치한 남부구치소를 놓고 최근 자본시장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대거 이곳에 수감되면서다. 자본시장과 교정당국 안팎에선 이들과 관련해 묘한 뒷말과 우려들이 새어 나온다. 거물급 수용자 2명이 같은 방에 배치됐다는 의혹도 그 중 하나다.
‘라임 사태’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2022년 11월 11일 불구속 상태에서 달아났다가 같은 해 12월 29일 붙잡혔다. 김 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30년과 추징금 769억 원을 선고받았고,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7월 4일 김 전 회장이 또 도주를 모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이 2심 재판을 받으러 출정할 때 탈옥하기 위해 같은 구치소 수용자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도움을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구치소 밖에서 이에 관여한 김 전 회장 누나가 체포됐다.
김 전 회장이 수감돼 있는 곳은 남부구치소다. ‘여의도 저승사자’로 통하는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이 2020년 1월 폐지됐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부활한 뒤 남부구치소엔 자본시장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수감됐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김봉현 정도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귀띔했다. 그는 “상장사 대표들도 여럿 있지만 그들은 범털(돈 많은 거물급 수용자를 지칭하는 은어) 축에 끼지 못한다. 그만큼 지금 남부구치소엔 자본시장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이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스타트는 김용빈 대우조선해양건설 회장이 끊었다. 김 회장은 허위공시로 수백억 원대 부당이득을 챙기고 회사에 거액의 손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4월 14일 구속 기소돼 남부구치소로 왔다. 당시 검찰 측은 김 회장에 대해 “기업 비리의 종합판”이라고 했다.
그 뒤를 김우동 조광아이엘아이 대표가 이었다. 그는 세간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본시장에선 스타급(?) 인물로 꼽힌다. 김 대표는 자기자본 없이 코스닥 상장 기업들을 인수 합병하고, 허위 공시로 주가를 띄운 혐의 등으로 4월 24일 구속됐다.
원영식 초록뱀그룹 회장도 남부구치소에 수감됐다. 원 회장은 6월 29일 자본시장법 위반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강남의 ‘큰손’으로 알려진 원 회장은 자본시장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꼽힌다.
원 회장과 함께 ‘1세대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는 이준민 카나리아바이오엠 고문도 남부구치소로 왔다. 이 고문은 과거 여러 회사들의 인수·합병에 관여하며 ‘설계자’로 이름을 떨쳤다. 이 밖에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실소유주로 알려진 강종현 씨도 남부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
남부구치소는 2011년 10월 5층 규모 1개동으로 새롭게 지어졌다. 구치소 중에서도 시설이 가장 좋은 편에 속해 ‘구치소계의 호텔’로 불린다. 3인실, 8인실 등이 있는데 방 배치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 15조에 따라 구치소장이 죄명, 형기, 죄질, 성격, 나이 경력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한때 범털이 독방에 수용되는 사례가 있었지만 이에 대한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자 지금은 원칙적으론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환자들이 수감되는 병동이 인기가 높다. 남부구치소에 수감됐던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다른 방보다) 병동이 훨씬 쾌적하다”고 했다. 이렇다보니 외부 병원의 진단서 등을 근거로 병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는 후문이다.
병동에 머무는 죄수들은 일반 수용자와는 달리 세로 줄무늬가 들어가 있는 옷을 입는다. 과거 주요 인사들이 외부 병원 치료 등을 위해 구치소 밖을 나올 때의 모습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몇몇 범털들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방에 들어가거나 또는 특정 수용자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오기 위해 은밀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수용자는 구치소 적응을 위해 신입들만 머무는 일명 ‘신입방’에서 1~2주 정도 머문 후 일반 방으로 배치돼 옮겨간다. 이때 범털들이 여러 방법을 동원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는 것이다.
자본시장 업계에선 남부구치소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자본시장 거물들 중 2명이 같은 방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기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자본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같은 방에 수감돼 있는 둘은 평소 호형호제하며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앞서의 자본시장 관계자는 “수많은 방 중에서 하필 그 2명이 같은 곳에 머무는 것이 과연 우연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낯설고 힘든 구치소 생활에서 이는 엄청난 혜택일 수 있다”면서 “둘은 다른 건으로 구속되긴 했지만 자본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다. 범죄수법도 유사하다. 재판 전략 등을 함께 세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자본시장 관계자도 “요즘 우스갯소리로 ‘남부구치소에서 야유회가 열렸다’는 말이 돌아다닌다. 보통 구치소 등에서 범죄가 모의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사냥 전문가들이 함께 있는 만큼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상하기 어렵다”면서 “교정당국이 그들에 대한 관리를 더욱 세심하고 각별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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