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박 진영이 딜레마에 빠졌다. 안철수 원장 지지층이 무서운 결집력을 보이며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하고 있지만, 친박 진영에서는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
안철수 열풍이 다시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치인이 책 한 권 내고 예능프로그램 한번 출연해 단박에 유력한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것이 안철수 원장이 그토록 주장하는 ‘상식’에 부합하는지 의문이 간다는 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과연 상식적인 정치를 보여주었는지를 되짚어 보면 안철수의 ‘비상식적’ 부상은 그 적절성 여부를 떠나 국민들의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음이 전부 현찰이 될 수 없듯이 현재의 안철수 바람이 곧 대권을 보장받는 절대반지가 아니다. 안 원장의 폭풍 지지율에 당황하고 있는 친박진영도 바로 이 지점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안철수 바람은 과연 무엇인가. 잠깐 지나가는 바람인가, 대선에서 박근혜 대세론을 찍어 누를 초 A급 태풍인가. 현재 친박계 내부에서는 안풍의 대응방안을 놓고 대조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안풍에 대한 개념 정리가 곧 대응전략으로 연결되는 만큼 이에 대한 면밀한 분석 또한 이뤄지고 있다.
사실 지난해 9월 안철수 현상이 처음 일어났을 때만 해도 친박진영의 분위기는 그를 ‘애송이’로 보는 정도였다. 수십년 동안 ‘정치적으로’ 단련된 박근혜 전 위원장과 비교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워했다. 더구나 안 원장이 일정한 지지세력이나 소속정당도 없는데 어떻게 현실정치에서 박 전 위원장을 이길 수 있겠느냐는 반응들이 많았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캠프 내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정치경력이 많을수록 안 원장의 바람을 거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선거는 결국 조직과 지지세력의 충성도로 판가름 난다는 확신 때문이다.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최근 “출마 선언도 안 한 사람을 공격해 봤자 좋을 것이 없다. 시간이 가면 지지율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다소 한가한 반응을 내놨다. 과연 그럴까.
일단 안풍이 말 그대로 공중에서 불다가 사라지는 바람이라는 진단부터 살펴보자.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이에 대해 “현재 안철수 원장에 대한 지지율은 고정 지지층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에서 흘러나온 떠돌이(중도층)들이 받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안 원장이 본격 대선국면으로 들어가 진영논리로 결판이 날 때 그를 이탈할 새누리당-민주당 성향 지지층이 20%까지 나온다고 본다. 이에 반해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막판에 등을 돌릴 지지층은 10%에 그칠 것이고 문재인 고문의 경우 6~8% 정도일 것이다. 안 원장이 본격 검증 국면으로 가서 깨지는 상황이 오면 지지층의 충성도가 다른 주자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 때문에 지지율이 빠르게 빠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안풍이 지금 불고는 있지만 본격 대선국면이 오면 곧 꺼질 거라는 얘기다.
현재 친박진영의 관계자들도 대체로 이런 분석에 공감하고 있다. 또한 “일단 참으면서 더 지켜보자”는 다수 의견의 기저에는 괜히 작은 바람을 큰 태풍으로 만들어주는 빌미를 줄 필요가 없다는 뜻과 함께 안풍은 적정시점에 가서 관리를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느긋함이 동시에 깔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친박계 내부에서도 안풍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게 나오고 있다. 친박계 소장그룹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안풍은 지금 시작단계에 불과하고 앞으로 바람을 넘어 거대태풍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안풍에 대해 우려하는 배경은 기존 여론조사 상 나타나는 지표에 의지해 대선 전략을 짜기보다 안풍이 2012 대선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 지지율이 급격히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안 원장을 공격하는 것은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한 “대중의 열망이 안철수 원장으로 쏠리는 시점에서 공격을 하면 동정심과 현 정권에 대한 반발심 등이 얽혀 오히려 안 원장을 박근혜급으로 키워주는 꼴밖에 안 된다. 박 전 위원장은 지금보다 더욱 더 자신의 스토리 만들기에 집중해야 한다. 언젠가는 국민들도 그 진정성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전계완 MBN정치아카데미 대표도 이에 대해 “현 시점에서 친박진영이 안 원장을 공격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 야권의 단일화 때 박 전 위원장에게 편안한 상대를 고르는 과정이 있을 것이고 그때 안 원장을 집중공격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박 전 위원장에게 필요한 것은 안철수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이 아니라 자신의 득표 확장성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안풍에 대한 친박진영 내부의 대체적 반응은 다소 느긋하다고 할 수 있다. 일부러 키워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최대한 공세적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하지만 지난 2007년 대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친이계의 한 소장 전략가는 친박계의 이런 미지근한 대응을 두고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현재 친박계 내부에서 안철수 공격 여부를 두고 일정 시점이 되면 치자며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 같은데 상당히 어리석은 대응이라고 본다. 대선을 뛸 마음은 있는지 모르겠다. 현재의 안풍은 두 가지 관점에서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최악의 상황이다. 대세론 둑이 터질 수 있고, 안철수 지지층이 강하게 결집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가 지금이다. 지금 안 원장을 치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다. 왜냐하면 책 출간 등으로 한번 분위기를 탄 안풍이 강하게 결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친박계는 안철수 지지표를 지금부터 흩어지게 해야 한다. 그 표가 구름 위에 모여 있다가 안풍이 거세져 갑자기 한곳으로 결집하면 대선에서 100% 진다”라고 진단했다.
친박진영이 안풍이 막 불붙을 때 진화에 나서지 않으면 향후 그것을 흩어놓을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지금 지지층을 분산해 박 전 위원장이나 문재인 김두관 등 다른 여야 대권주자들이 나눠 가져야 안풍 견제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전략 관계자가 특히 지적하는 부분은 안풍으로 박근혜 대세론이 허물어지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는 이에 대해 “지난 2007년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을 쉽게 깰 수 있었던 게 대세론의 고착화였다. 당시 정 후보측이 BBK 등 온갖 네거티브 전술을 총동원했지만 실패한 것이 ‘그래도 게임은 끝났다’는 대세론의 힘 때문이었다. 박 전 위원장의 대세론도 안철수가 없었다면 어게인 2007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 원장이 ‘예쁘게’ 나타났고 이번 대선은 야권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마당에 친박계의 소위 전략 전문가들이란 사람들이 타이밍 운운하며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보고 참 어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의 안풍 지지층은 일종의 팬카페 수준이다. 하지만 이 지지층들이 꿈을 깨는 순간 큰일 난다. 예능프로그램 등으로 노출된 안철수의 가치를 공개적으로 공유할 기회가 생기면서 ‘안빠’(안철수 핵심 지지층)들이 자기 동질화 과정을 거치면서 정당원들보다 더 강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결집된 지지층은 기존 정당세력보다 오히려 더 공고하다. 안 원장이 이 지지층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가 자신이 출마하거나 야권 주자 지지선언을 할 경우 박 전 위원장은 돌이킬 수 없는 패배의 나락으로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친박 진영에서는 안철수 공격 시점을 새누리당의 대선후보가 확정되는 8월 중순 이후로 잡고 있다. 검증팀에서는 안 원장 X파일을 쟁여놓고 터뜨릴 기회만 노리고 있다. 친박계는 지금 완벽한 부비트랩을 설치해놓고 안철수가 건드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안철수 바람은 이미 그것을 넘어 저만치 가고 있는 것 같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 안철수 원장. |
정치권이 안철수 바람에 맥없이 휘청거리고 있다. 50년 정통 야당의 자부심으로 끝까지 ‘민주’라는 이름을 유지하던 민주통합당은 대권주자도 못 낼 위기상황에 처했다. 박근혜 전 위원장도 1974년 퍼스트레이디에 올랐을 때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안철수 원장에게 밀리는 치욕을 겪고 있다. 가히 안풍이 거세긴 거센 모양이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철수 원장이 야권 정권교체 실패의 ‘X맨’이 될 수도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실 안 원장의 급부상 타이밍은 기가 막혔다. 야권 주자들이 본격적으로 붐업이 되는 경선 일정에 딱 맞춰 안 원장이 초를 치게 되자 경선 주자들이 단번에 안 원장 들러리로 전락한 셈이 됐다. 국민들의 눈길은 현재 열리고 있는 경선보다 몇 달 뒤 있을 단일화 이벤트에 쏠려 있다. 하지만 이런 ‘건너뛰기’가 정권교체를 바라는 야권에게는 커다란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안 원장이 야권 후보마저 누르고 단일화 후보가 됐다가 패배라도 하게 된다면 그 역사적 책임은 두고두고 그의 어깨를 누를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음모론적인 시각도 나오고 있다. 안 원장의 급부상 시점과 그 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층의 장기집권을 바라는 ‘작전세력’들이 안 원장을 의도적으로 밀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야권주자들보다 안 원장이 박 전 위원장의 본선 상대로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분석틀에 기인한다. 즉, 그동안 한번도 검증대상에 오르지 않아 청정무결점 상태인 안 원장이 본선에서 결정적 한방을 맞을 경우 힘 한번 못 써보고 단번에 나가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의 기존 야권주자들은 대부분 선거 과정을 거치면서 직·간접적인 검증을 받아 본선에서 오히려 더 빡빡한 상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단 예선에서 안 원장이 거품이 낀 바람으로 막강한 야권 주자들을 손쉽게 제압한 뒤 대선으로 직행하는 것까진 좋은 시나리오이지만 큰 거 한방에 맥없이 나가떨어지게 되면 그것만큼 허무한 선거도 없을 것이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안철수는 야권 패배의 X맨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써야 할지도 모른다. 민주당 관계자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그리 우습게 들리지도 않는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