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일간 중국 공안당국에 구금당했던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 씨가 지난 7월 25일 기자회견을 갖고 구금 당시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김 씨의 폭로 이후 모든 쟁점이 중국 당국의 가혹행위와 인권유린 문제로 불붙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중국 내 수감시설 구금 경험이 있는 북한인권운동가 등의 추가적인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 <일요신문>은 김 씨의 충격증언 이후 불붙고 있는 중국 구치소 내 인권유린 문제에 대해 집중 추적했다.
지난 7월 25일 서울 광화문 사랑의 열매 본관에서는 114일간 중국 현지에 강제 구금됐다 풀려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의 공식기자회견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김 씨의 충격적인 증언이 쏟아졌다.
김 씨는 “안전부는 조사과정에서 나에게 혐의인정과 사과를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안전부는 조사기간 동안 내게 가혹행위를 가했다.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지만 정신적 육체적 모두 해당한다. 이 사실은 한국 영사와의 1차 접견 당시 전달했다”라며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기자와 통화한 김 씨의 한 측근은 “중국 당국은 김 씨의 조사를 마치고도 추후 2달간 구치소 구금을 명령했다. 이는 사실상 고문으로 인해 김 씨의 몸에 남은 상처와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시간을 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씨의 충격적인 폭로 이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김 씨가 중국에서 당한 가혹행위와 인권유린 문제는 극히 일부라는 주장과 함께 각종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는 이미 중국 내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한 가혹행위와 인권유린이 만연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기자와 통화한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대표는 “김 씨 이외에도 현재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인권운동가 등 한국인들이 많다. 이들 중에서는 억울하게 끌려가 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한 사례들이 꽤 있다”라며 실상에 대해 말했다. 거물급 북한인권운동가인 김 씨의 사건이 이슈화됐다뿐이지,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들에 대한 불합리한 구금과 가혹행위는 있어왔다는 것이었다.
지난 2003년 중국 연태에서 탈북자들을 돕다 체포된 유명 북한인권운동가 최영훈 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번은 감옥 안에 있는 병원으로 끌고 가서 주사를 놓은 적이 있다. 정신이 몽롱해졌는데 이후 다른 죄수들이 나를 집단 폭행했다. 내가 계속 감옥 안에서 중국 인권 문제를 비판했는데 이를 두고 교도관이 시킨 것이다. 이후 나는 자해까지 시도했다”라고 설명했다. 2006년 11월 석방된 최 씨는 이후 정신분열과 단기 기억상실증 등 후유증으로 큰 고생을 했다.
영화 <크로싱>의 실존 인물로 알려진 유상준 씨 역시 지난해 5월 북-중 접경지역에서 탈북자 지원활동을 벌이다 공안에 체포돼 25일간 강제 구금됐다 풀려났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숙소로 들어가 던 중 사복 공안들에게 끌려갔다. 파출소 조사실에서 결박한 상태에서 온몸을 구타했다. 조를 짜서 교대로 돌아가며 24시간 나를 폭행했다. 탈북자 지원활동에 대해 모든 것을 실토하라고 강요했지만 혐의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추방시켰다”라며 당시 끔찍한 기억에 대해 떠올렸다.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중국 사법당국의 주요 타깃은 탈북자 지원활동과 북한 인권 운동을 꾀하는 활동가들이었다. 북한과 오랜 기간 특수 관계에 있는 중국으로서는 그 만큼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북한 등과 관련한 활동과 연결고리가 없는 일반인들에 대해서는 가혹행위와 같은 인권유린 현상이 벌어지지 않은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최근 기자는 중국에서 사업경험이 있는 한 한국인으로부터 충격적인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기자와 접촉한 사업가 송 아무개 씨는 북한과 관련한 활동과는 전혀 무관한 순수 사업가로 90년대 후반부터 중국현지에서 IT 분야와 관련한 사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지난 2000년, 중국 현지에서 끔찍한 일을 당했다고 한다. 송 씨는 “당시 난 중국 현지 일을 마치고 베이징 공항을 통해 출국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공안이 들이닥쳤다. 공안은 내가 어떤 혐의인지 말도 해주지 않고 날 끌고 갔다. 처음에는 여권 분실과 같은 사소한 일인 줄 알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일은 커졌다. 그가 중국에서 알고 지내던 한 한국인이 마약사범이었던 것이다. 송 씨는 그 한국인의 범죄와 아무 상관도 없었고 더군다나 그가 마약사범인 줄도 조사과정에서 처음 알았다고 한다. 송 씨는 베이징에서 체포된 지 하루 뒤 악명 높은 중국의 특수 공안에게 넘겨져 하얼빈으로 이송됐다고 한다. 그리고 3일간 감옥에서 각종 가혹행위를 당했다.
그는 “3일 동안 감방에 집어넣어진 채 끔찍한 일을 당했다. 각종 구타는 물론 팔을 꺾어 놓고 볼펜으로 찍는 상상 밖의 일까지 벌어졌다. 그들은 계속해서 혐의를 시인하라고 강요했지만 난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아무런 혐의가 드러나지 않자 곧 석방됐다. 정당한 절차 없이 자행된 그들의 행동에 무척 화가 났다. 마치 70~80년대 국내 실정과 비슷했다”라고 증언했다. 송 씨는 이후에도 1년 동안 정신적 충격으로 큰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중국 현지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불합리한 사법조치와 각종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국 정부의 역할은 매우 불충분하다. 김영환 씨의 사례에서 나타났듯, 한국은 중국 현지에 영사관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김 씨의 경우에도 검거 초기 한 차례 영사 접견이 실시됐지만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문제가 장기화됐다는 지적이 많다.
앞서 송 씨의 경우도 이에 대해 “중국에서 수감된 한국인들 대다수가 현지 영사 접견과 같은 조치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중국 현지 북한정보 브로커 A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 중국 내 북한인권지원 및 정보활동은 김영환 사태로 심각한 영향을 받은 건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어찌됐건 자국민의 안전과 활동을 보장해주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