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 및 시험관 시술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자궁이 약해 계속 실패했다. ‘인도’에 가서 대리모를 구하고 싶다.”
결혼 8년 동안 임신에 실패했다고 밝힌 한 36세 여성이 인도 관련 유명커뮤니티 ‘인도-웰컴투 인디아’ 의료관광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의료 게시판이지만 확인해보면 온통 ‘대리모’ 문의 글뿐이다. 지난 1년 동안 이곳에 올라온 대리모 문의 건수만 해도 140여 개, 한 달에 약 15건씩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국제대리모 전문 중개사이트 ‘IVF글로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곳을 통해 인도 대리모를 찾는 국내 불임부부들이 크게 늘었다. 그동안 미국 불임부부들이 주 수요자였으나 최근 들어 한국 불임부부들의 문의가 부쩍 늘면서 지난해부터는 한국어 서비스가 시작됐다.
이처럼 국내 불임부부들이 마냥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 ‘인도’로 눈을 돌리게 된 속사정은 무엇일까.
‘대리모’는 자궁을 임대해주는 여성을 뜻한다. 불임부부의 체외수정란을 시술을 통해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킨 후 아이를 대신 낳아주는 과정에서 대다수 대리모들은 대가성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대리모 시장이 언제부터 형성됐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통계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요신문>은 1006호(2011년 8월 28일자) ‘여대생 대리모 지원 실태’ 제하의 기사를 통해 ‘자궁임대’ 1건 당 적게는 3500만 원, 많게는 1억 원 상당의 검은 시장이 국내에 형성돼 있다는 것을 소개한 바 있다.
대리모 시장이 꾸준히 활기를 띠고 있는 이유를 두고 해당 업계에서는 최근 들어 불임부부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결혼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불임부부의 수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일례로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5년간 불임 환자가 연평균 5.8%의 증가율을 보였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렇듯 급증한 불임부부들 중 일부가 대리모를 찾다보니 어느덧 해외에까지 손을 뻗게 된 것이 아니냐는 게 업계의 추측이다.
국내 불임부부들이 해외 대리모 시장에까지 움직이게 된 배경에는 ‘안전성’의 문제가 한 축을 차지한다. 사회 통념상 아직까지 국내에선 대리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다소 높은 실정이다. 이런 사정을 반영해 음지에서 대리모 거래가 형성되다보니 그만큼 부작용도 많았다. 브로커가 사기를 치거나 대리모가 임신 중 도주하는 등의 변수가 발생할 경우 이를 통제할 법적 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 국내서 활동 중인 한 대리모 브로커 김 아무개 씨(여·41)는 “불임부부들은 이왕이면 안전한 구조에서 대리모와 거래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인도 대리모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증가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 태국 등 대리모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타 국가도 있는데 왜 하필 인도를 찾을까.
인도는 정부 차원에서 대리모를 일종의 의료사업으로 보고 대대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보증한 만큼 안전성이 확보됐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불임부부들이 인도로 몰리고 있다.
현재 인도 대리모 산업의 규모는 약 23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조 6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추세에 최근 국내 불임부부들도 적극적으로 합류하고 있다.
‘IVF 글로벌’의 한 대리모 중개인업자는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의 경우 한 달에 부부 2~3쌍 정도가 인도 대리모와 계약하고 있다. 대리모 계약 건으로 인도를 찾는 불임부부들의 국적을 세세하게 공개할 순 없지만 이 정도면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 대리모 계약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부분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브로커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신청서를 작성만 하면 브로커를 언제든지 직접 만날 수 있다.
불임주부를 가장해 25일 서울 강남 J 호텔에서 인도 대리모 브로커 A 씨를 실제로 만났다. A 씨는 “인도 대리모는 국내 대리모를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가격도 거의 절반이나 저렴해서 많이들 찾는다”고 설명했다. 인도 대리모를 구하기 위해선 최소 2만 5000달러(한화 2900만 원)가 필요하다. 계약금 2000달러, 의뢰인 시술 8000달러, 법률비용 4500달러 등이 모두 포함된 가격이다. 이는 미국(약 10만 달러)보다 약 75~80%나 저렴한 수준이다.
이어 A 씨는 “비단 불임부부가 아니더라도 ‘몸매관리, 커리어 유지’를 이유로 대리모를 구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는 다소 놀라운 얘기도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여성들한테 큰 인기를 모은 유명 미국드라마 <섹스앤더시티> 여주인공이 실제로 대리모를 고용해 자녀를 출산했다는 뉴스를 예로 들었다. 그는 “지난해 이 뉴스를 접한 여성들 사이에서 대리모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며 “최근에 만난 한 전문직 여성은 대리모를 신청하면서 ‘할리우드 배우처럼 일도 아이도 놓칠 수 없어 대리모를 신청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A 씨에 따르면 이 여성은 내년 6월 경 출산휴가를 내고 인도에 아이를 찾으러 방문할 예정이다. 본인이 임신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의료 문서를 조작해 회사에 제출할 수 있도록 A 씨가 조치를 취해줬다는 내용도 귀띔해줬다. 이런 ‘서류 꾸밈’도 애초에 대리모 패키지 가격에 포함된 사항이다. 어떤 법률회사와 의료기관이 서류를 꾸며줬는지에 대해선 절대 비밀이라고 함구했다.
인도를 방문해 시험관 시술을 하고 9~10개월 후에 재방문해서 출산된 아이를 찾아오면 되는 간편한 과정을 두고 일각에선 ‘자녀 쇼핑’이란 눈총어린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인도 대리모 시장을 찾는 불임부부들의 발걸음은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게 해당 업계의 전반적인 의견이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10년 치 임금 한목에…로또 수준
구체적으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병원 간의 대리모 유치 전쟁은 기본이고, 대리모를 지원하는 여성도 많아 치열한 선발전이 치러질 정도라고 한다.
뭄바이에 위치한 히라난다니 병원 등 인도 유명 대형병원들은 대리모 센터를 앞 다퉈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불임부부들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이유인즉 돈이 되기 때문이다. 대리모를 직접 선발, 출산 때까지 관리하며 병원 측이 받게 되는 돈이 적잖다. 계약 1건당 4000만 원선에서 해결이 되는 것을 감안할 때 이중 85%를 병원과 중개업자가 가져간다고 한다. 이때 대리모에겐 약 840만 원의 수고비가 지불된다.
엄격한 대리모 선발절차도 눈여겨볼만 하다. 대리모는 주로 해당 병원이 직접 선발하는데 출산 경험이 1~2회 정도 있는 20대 여성지원자들을 상대로 임신성공률, 질병기록, 정신적인 안전성(교육수준), 생활스타일(음주 및 흡연), 대리모에 대한 이해도, 지원이유 등을 낱낱이 검사한다.
이렇게 검증된 대리모들을 ‘군대’식으로 관리하는 것도 인도 대리모 시장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매력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유명잡지 <마더존스>(Mother Jones)에 따르면 철저한 대리모 관리로 유명한 인도 서부 구자라트 일대 병원들은 아예 대리모들을 입소시킬 자체 숙소를 만들었다. 임신이 확정된 대리모들은 이곳에서 출산 때까지 머물며 24시간 간호사의 보호를 받는다. 담당 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운동, 식사들을 점검받고 때때로 태교를 위한 종교행사에도 참여하기도 한다.
특이한 사실은 이곳에 입소한 대리모의 경우 출산 때까지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고 정기적으로 면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태교에만 ‘올인’하라는 병원 측의 지시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리모가 쌍둥이를 출산할 경우 추가 보너스를 받게 된다. 반면 중도에 유산했을 땐 임신 기간 동안만의 수고비가 따로 계산돼 지급된다. 철저한 환불 시스템이 대리모 사업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자녀 쇼핑’이라며 이 사업의 비인간적인 부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대리모 2명에게 각각 수정란을 2개씩 이식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비난을 사고 있다. 이는 불임부부 측이 빠른 시일 내에 임신 성공률을 높일 것을 주문할 경우에 쓰는 방법이다. 만약 한 명이 임신하게 되면 뒤늦게 임신한 나머지 한 명에게 얼마의 돈을 쥐어주고 낙태를 시키는 것인데 이 과정이 비인간적인 처사라며 크게 비난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인도 대리모사업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우선 경제적으로 빈곤한 인도여성들에게 대리모 알바는 10년 치 임금을 한꺼번에 벌 수 있는 ‘행운의 로또’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