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는 10년 전에, 생활지도법은 이제야…‘고소·고발 대비’ 교사 전용 법률비용보험 가입 급증
서울 소재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A 교사의 말이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소속 20대 초반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런데 교사들 사이에서는 ‘충격적인 일이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교권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를 개개인이 몸으로 버티고 있다’ 등의 말이 나왔다.
#죽거나 혹은 다치거나
수도권 소재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B 교사는 이번 서이초 사건에서 원인으로 지목되는 극심한 민원은 상수라고 지적했다. B 교사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로 일해봤거나, 교사로 근무하는 지인만 있어도 다 안다. 최근 학부모들의 민원이 극에 달했다. 교무실까지 와서 깽판을 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를 교장 등 중간 관리자가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사 개인에게 압박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시끄러워지는 게 싫은 교장은 교사를 사지로 내몬다. 교사를 교육 전문가로 보지 않고, 마치 서비스직처럼 대하면서 갑질이 심각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최근 교사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은 서이초 사건 이전에도 연속으로 터지고 있었다. 2021년 부산 지역에서 한 교사가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학생이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복도로 내보내 반성문을 쓰게 했다가 아동학대로 신고 당했다. 학부모가 관계기관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고, 교사는 담임에서 배제돼 교실을 떠났다. 결국 해당 교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사건을 두고 교사들 사이에선 ‘부산 지역 교사가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순직 처리가 안 됐기 때문에, 이번에 학교를 택했다’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지난 5월 경기 평택의 한 고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이 교사를 폭행했다. 학생이 친구와 다투는 모습을 본 해당 교사가 경위서를 쓰게 하고 훈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허리 등을 다친 교사는 전치 12주 진단을 받았다. 이 사건은 교권이 어디까지 추락했는지를 보여줘 교사 집단에 충격을 줬고, 이번 서이초 사건까지 겹쳐 '집단 멘붕' 상태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나
교사가 학부모와 학생 양쪽으로부터 갑질과 무시를 당하는 상황은 언제부터였을까. 교사들은 대체로 2010년대 초반을 지목한다. 스마트폰 도입 이후 급격하게 학부모 간섭이 늘어났다고 입을 모은다.
A 교사는 “2010년대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애들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주는 선생님들이 가끔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 당연한 게 됐고, 올려준 사진에서 자신의 아이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학부모가 ‘다시 찍어달라’, ‘내 아이를 더 신경 써 달라’는 등의 말이 나왔다”면서 “여기에 학부모와 단톡방으로 이어지거나 담임교사 카톡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게 일상이 됐다. 야근하고 있을 때나 퇴근 후 새벽에도 문자가 오는 건 예삿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A 교사는 “몇 년 전 담임을 맡았을 때 밤에 연락해 오는 게 너무 힘들어 학부모 편지로 학부모 상담은 근무 시간 내에만 가능하다고 안내했더니 학부모가 곧바로 ‘내가 퇴근하면 몇 시인데 상담은 언제 하냐’면서 교장에게 민원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면서 “저연차 교사의 경우 중간 관리자가 ‘시끄러운 소리 안 나게 좋게 해결해라’, ‘민원 안 들어오게 해라’ 등의 얘기를 하면 꼼짝없이 들어줘야 한다. 중간 관리자가 방패가 돼야 하는데 같이 공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문제는 2010년 초반부터 점층적으로 심각해져 왔다.
세계일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공동으로 7월 5~8일 고교 교사 8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교육활동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2개 선택)으로 응답 교사의 83.9%는 ‘교권 약화로 학생 지도 한계’를 꼽았다. 교권 약화가 본격화된 것도 2010년대 초반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교권 약화로 흔히들 2010년 경기도의회를 통과한 ‘학생인권조례’를 문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교사들은 대체로 학생인권조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도권 소재의 한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일하는 C 교사는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게 2010년이다. 당시 체벌 등 좋지 않은 문화가 있었고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는 건 동의한다. 다만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면서 동시에 그러면 어떻게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지 매뉴얼을 제시했어야 했다”면서 “학생인권조례 이후 교사가 지도할 방법이 사실상 사라졌다. 2010년대 중반에는 ‘학생을 교실 뒤에 세우기’가 정서적 학대라든지 수업 받을 권리 침해 등으로 금지됐다. 반성문 쓰기, 나머지 공부하기 등도 마찬가지로 사실상 금지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학생을 훈육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생활지도법' 통과됐지만…
지난 6월 28일부터 교원이 학교 현장에서 학생 생활지도를 할 수 있는 소위 ‘생활지도법’이 통과됐다. 이 법 통과에 대해 대체로 교사들은 이미 교실이 무너진 상황에서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도권 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D 교사는 “생활지도 관련 법률 제정 자체가 이미 현장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오죽하면 법이 생기겠나. 훈계하면 학생이 ‘선생님 규정에 있어요?’라고 묻는 세상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D 교사는 “생활지도법이 시행된다 해도 이미 늦었다. 이 법과 시행령은 학생인권조례하고 같이 나왔어야 했다. 수업 방해 학생, 문제 학생을 분리하는 것조차 못하게 한 상황이 10년을 이어오면서 교사들은 대부분 ‘법 제정됐다고 미쳤다고 생활지도 하냐. 생활지도 했다고 고소하고 합의금 달라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교사는 과한 열정은 가지지 않는 게 속 편하게 사는 거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D 교사 말과 비슷한 실제 사례는 넘쳐난다. 일례로 2018년 4월 한 교사는 자신이 담임을 맡은 한 학생이 수업 중 흥얼거려 수업 분위기를 해쳤다며 급우들에게 사과하라고 시켰다. 이에 학생이 작은 목소리로 사과하자 교사는 화를 내며 “큰 소리로 말하라”고 다시 요구했다. 교사의 요구에도 해당 학생이 큰 소리로 말하지 않자, 교사는 “제대로 사과하지 않을 거면 집에 가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두고 학부모는 교사가 학생을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며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재판부는 “피해 어린이가 정서적으로 상당한 상처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피해 어린이와 그 부모에게서 용서받지 못했지만, 훈육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하게 된 점 등을 종합했다”며 교사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이처럼 이미 소송은 교사의 걱정 중 한 부분이 된 지 오래다. 앞서 C 교사는 “2017년쯤부터 학부모 고소, 고발 대비 목적으로 교사 전용 법률비용보험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나도 2017년에 보험을 들어뒀다”고 말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A 교사는 “현재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학생을 때려서 고소당하는 경우는 상상이 아예 불가능하다. 오히려 교사가 맞아도 고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면서 “내가 학교 다닐 때 생각하면 정말 별거 아닌, 예를 들어 ‘나하고 얘기를 잘 안 해준다’면서 따돌림으로 고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D 교사도 “2022년 잠을 깨웠다는 이유로 교사를 흉기로 찌른 고등학생이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이 정도는 돼야 기사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B 교사는 “엄청난 문제를 행한 학생에게 학교 규정이나, 학교폭력예방법 등으로 타당하게 나온 약한 조치 사항도 학부모가 행정소송으로 뒤집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폭 담당자로 근무할 때 고민해 봤는데 차라리 112 전화로 공무집행방해 신고하는 게 그나마 효력이 있는데, 학교에 112로 경찰을 부를 교사가 있을까 싶다. 부른다 해도 뒷일이 더 피곤해질 게 뻔하다”고 말했다.
완전히 무너진 학교 현장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대체로는 ‘이미 늦었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극단적인 상황인 만큼 극단적인 방법이라도 모색해야 할 때라는 말도 나온다.
C 교사는 “외국 사례를 참고해 담임교사를 여러 역할로 분리해 정하는 방법이나 담임 자체를 없애는 식의 방법도 고려해 봐야 한다. 현재는 담임이 정해져 있어서 학부모 민원이 집중되고, 학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꼬리 자르기처럼 담임에게만 책임을 지운다”고 설명했다.
A 교사는 “현재는 팔, 다리를 자르고 몸은 묶어둔 상태에서 애들을 훈육하라고 얘기한다. 거기에 민원은 폭주하는 상태다”라면서 “학교전담경찰관이 학생뿐 아니라 교사도 보호해 줘야 한다. 또한 최소한 문제 학생을 즉각 분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미국처럼 교장이나 교감이 문제 학생을 데리고 가서 지도하고 학부모 민원도 교장 등이 막아주는 방식이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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