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 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의 금메달은 기보배에게 돌아갔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끊긴 여자 양궁의 올림픽 단체전 개인전 동시 석권의 전통을 기보배가 다시 이었다. 2010년부터 한국 양궁의 기대주로 급부상한 기보배는 2010년 대표팀에 발탁되자마자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탔다. 그리고 생애 첫 올림픽에선 단체전과 개인전을 석권하며 올림픽 2관왕에 올랐다. 더 이상 기대주가 아닌 한국 양궁의 기둥으로 거듭난 셈이다.
금메달을 딴 뒤 인터뷰에서 기보배는 “함께 고생해온 팀원들 생각하면 나 혼자만 메달을 따서 아쉽고 미안한 감정이 북받친다”며 울먹였다. 얼마큼 기보배가 이성진 최현주 등과 동고동락하며 좋은 팀워크를 만들어 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돌아온 한국 양궁의 기둥’ 이성진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박성현 윤미진 등과 함께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고 개인전에서도 은메달을 딴 이성진은 당시 최고의 기대주였다. 이런 흐름은 다음 해인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단체전 동시 석권으로 절정에 다다랐다. 그렇지만 이후 오랜 침체기를 겪어야 했다.
2007년 어깨 부상까지 겹쳤다. 부진에 더해진 부상으로 인해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선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이후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 양궁의 기둥이 될 것이라 기대됐던 이성진은 그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이면으로 사라졌다.
반면 아테네에서 이성진을 누르고 단체전 금메달을 딴 박성현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결국 박성현은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며 전성기를 이어갔지만 개인전에선 은메달에 그치며 올림픽 여자 양궁의 개인전 단체전 동시 석권이 무산되고 말았다.
다시 도전한 2012런던 올림픽 대표 선발전. 이성진은 선발전을 앞두고 부상이 재발하는 아찔한 순간을 겪었지만 강인한 의지로 부상을 극복하며 대표팀의 일원이 됐다.
이성진은 첫 올림픽에 출전하는 기보배 최현주에게 국제대회 경험을 전수하며 단체전 금메달 획득에 일조했다. 이번에도 아쉽게 개인전에선 금메달을 걸지 못했다. 그렇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신 그 순간에도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홀로 4강에 진출한 기보배를 격려했다.
최현주는 84년생으로 양구 여자 대표팀 맏언니로 늦깎이 국가대표다. 20대 후반이 돼 비로소 국가대표가 된 그는 런던 올림픽 선발전을 통과해 태극마크를 달기 전까진 단 한 번의 국제대회 경력도 없었을 정도다.
한 살 어린 이성진이 2004 아테네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이며 개인전 은메달리스트라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이력이다. 게다가 올림픽 2연패를 이룬 뒤 은퇴해 양궁감독으로 활동하는 박성현과는 한 살 차이가 날 뿐이다.
한국 양궁의 진정한 힘은 공정한 대표선발전이다. 그 어떤 유명세와 스타성, 과거 경력 따위는 전혀 감안하지 않고 철저한 성적 위주로 국가대표를 선발한다. 2004년 아테네에서 맹활약을 펼친 이성진이 2008 베이징 올릭픽 대표가 되지 못한 것도 이런 공정성 때문이고 늦깎이 최현주가 런던 올림픽 대표가 된 것 역시 같은 이유다.
그렇지만 철저한 무명 선수의 대표팀 선발에는 뒷말도 많았다. 개막 한 달여를 앞둔 시점까지 최현주가 극심한 부진에 빠져 있었기 때문. 10점을 쐈다가 다시 5~6점을 쏘는 등 기복이 심했다. 심지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다.
이로 인해 최현주를 퇴출하고 다른 선수를 대표로 선발하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국제경험이 전혀 없는 무명의 선수였던 터라 이런 얘기가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의 화려한 이력을 가진 선수였다면 대책이 퇴출보다는 빠른 컨디션 회복에 맞춰졌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최현주의 컨디션 타이머는 정확히 올림픽 단체전에 맞춰져 있었다. 양궁 코칭스태프에 따르면 런던에 도착해 연습을 하는 과정까지도 최현주의 컨디션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예선 라운드가 시작되면서 최현주는 언제 그랬냐는 듯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최현주는 중국와의 양궁 단체 결승전에서 절정의 컨디션을 선보였다. 거센 바람에 비까지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이성진과 기보배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최현주만 흔들림 없이 거듭 10점 과녁에 화살을 보냈다. 최현주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비교적 무거운 화살을 사용한다. 무거운 화살의 힘이 거센 비바람을 뚫고 정확히 10점 과녁을 파고 든 것. 영화 <활>에서 박해일의 대사처럼 어쩌면 그는 바람을 계산하지 않고 극복했는지도 모른다. 단체전 결승전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최현주였다. 행여 그를 대표에서 퇴출했더라면 한국 여자 양궁은 7회 연속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수상의 영예를 이어가지 못했을 지로 모른다. 또한 한국 양궁 최고의 힘인 공정한 대표 선발이라는 전통까지 흔들렸을 지도 모른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