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
펜싱 김지연, 정진선, 사격 김장미와 함께 메달리스트들의 기자회견을 마치고 <일요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 응한 송대남은 금메달을 획득한 그 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처음에는 엄청난 결과를 품에 안게 된 데 대한 감격 때문에 눈을 붙이지 못한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원래 오른쪽 무릎은 수술한 상태였는데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왼쪽 무릎까지 부상을 당했다. 인대가 거의 끊어진 상태나 다름없다. 그래도 마지막 결승전에서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현재 무릎 상태가 근육이 인대를 잡아주고 있는 꼴이다. 한국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무릎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 무명의 설움을 날리고 올림픽 스타로 거듭 태어난 송대남이 <일요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
“8강에서 만났던 세계 1위 니시야마 마사시(일본)와 준결승전에서 붙은 브라질의 티아고 카밀로(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선수들 말고도 쉬운 상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유도 90㎏급에서는 어느 누구도 만만치가 않았다. 마치 잡고 잡히고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관계 같은 게 형성돼 있다. 어느 누구도 메달을 예상할 수 없는 체급이다. 랭킹도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세계랭킹 15위인 내가 1위를 물리치고 준결승전에 올라 금메달까지 획득했듯이 이 체급은 어느 누가 더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고 기도했는지에 따라 메달의 향방이 갈라지는 것 같다.”
송대남은 일본의 니시야마 마사시와 브라질의 티아고 카밀로와의 경기에 대해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즉 두 선수의 힘과 기술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고 유도 강국으로 꼽히는 일본의 세계 랭킹 1위 선수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8강 이후부터는 매 경기가 결승전이라는 각오로 덤벼들었다고 한다.
“내가 올림픽을 앞두고 16개월 전에 81㎏에서 90㎏으로 체급을 변경했기 때문에 포인트를 쌓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상대 선수가 나를 많이 접해 보지 않았던 게, 그래서 내 실력이 노출되지 않았던 게 경기 내내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
▲ 런던올림픽 유도 90kg급 결승전에서 송대남(왼쪽)이 쿠바의 곤잘레스와 겨루고 있다. 연합뉴스 |
“별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은근히 신경 쓰였던 것도 사실이다. (기자를 가리키며) 지난 번 일본 전지훈련하는 데 취재 오셨을 때도 기춘이와 재범이만 인터뷰하고 돌아가시지 않았나. 그게 현실이었고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기자분들은 날 믿지 않았어도 태릉선수촌 촌장님과 선수단장님은 날 보실 때마다 금메달 후보라고 인정해주셨다. 한국이 이번 올림픽에서 내세운 목표가 ‘10-10’이었는데 그 10개의 금메달 중 하나가 내 몫이었다는 건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믿음이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에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 그 믿음에 보답하는 길은 10개의 금메달 중 하나를 내 걸로 만드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걸 이뤄내려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송대남은 인터뷰를 하다가 갑자기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서 기자에게 보여줬다. 휴대폰 메인 사진이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해질 때마다 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한테 올림픽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다. 그렇기 때문에 더 절박했고 절실했다.”
송대남은 금메달을 확정 지은 후 정훈 감독과 맞절 세리머니를 펼친 데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나 때문에 가장 많이 수고하신 분이 감독님이시다. 나를 이 자리까지 끌고 오신 분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런 인사를 하게 됐다. 감독님이 경기 종료 1분을 남겨두고 심판으로부터 소란스럽다며 강제 퇴장을 당하셨는데, 순간 감독님이 안 계신다는 생각을 하기 보단 띠를 고쳐 메며 나름 여유를 찾으려 애썼다.”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훈 감독이 갑자기 퇴장당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송대남은 마음을 다잡고 시합만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 펜싱 동메달리스트 정진선(오른쪽)은 전우이기도 하다. |
“이 금메달 하나로 감독님께 가장 뜻 깊은 선물을 해드렸다고 생각한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해주신 데 대해 평생 잊지 못할 고마움을 갖게 됐다.”
지난 7월 초, 기자가 유도대표팀의 일본 전지훈련을 찾아갔을 때 정훈 감독은 송대남을 가리켜 “반드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선수”라면서 그 이유로 “얼마 전에 아들이 태어났다. 이제 분유값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메달이 꼭 필요하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송대남도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올림픽에서 더욱 선전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라고 대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아이가 태어났는데, 제대로 안아보지도, 같이 생활해보지도 못하고 선수촌에서 지냈다. 지금은 갓난아기라 아빠가 뭘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아이가 성장했을 때 아빠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빠가 그렇게 형편없는 선수가 아니었다는, 오히려 자랑할 만한 아빠였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는데, 이런 인터뷰를 포함해서 모든 자료들이 내 아들에게 큰 의미를 전달해줄 것 같다.”
송대남은 이번 올림픽이 은퇴 무대라는 시각에 대해서도 조심스런 입장을 나타냈다.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소속팀 감독님과 상의해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말은 꼭 써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남양주시청 소속이다. 월급도 거기서 받는다(웃음). 이석우 남양주시장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팀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결국엔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내 거취 문제는 팀에서 결정할 것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신없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송대남은 ‘할 말은 하는’ 남자였다.
한편 펜싱 남자 개인 에페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정진선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했다.
“(송)대남 형과 국군체육부대에서 함께 생활하며 굉장히 친하게 지냈었다. 경기가 있는 날, 대남 형이 먼저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합장에 들어갔다. 뭔가 큰 힘이 되는 듯했다. 대남 형은 두 차례의 올림픽을 앞두고 선발전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말로 표현 못할 방황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얻어내다니, 정말 놀랍고 감동적이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군대 있을 때도 혼자 야간 운동을 빠트리지 않고 소화했었다. 사우나 갔을 때 대남 형의 몸을 봤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고 어마어마하게 만들어놨더라. 무서웠다(웃음). 대남 형은 ‘인간 승리’의 표본이나 다름 없다.”
영국 런던=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