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갈등 빚는 기업이 다른 유통업체와 손잡는 모양새…“이해 당사자 많아 물러설 수 없는 싸움”
제조업체와 쿠팡 간 갈등이 불거지자 다른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잇달아 이들 제조업체들과 손을 잡고 있다. 이에 유통업계에서는 제조업체와 쿠팡 외 유통업체들이 ‘반(反) 쿠팡연대’를 형성한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CJ제일제당과 쿠팡의 갈등은 지난 11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쿠팡과 CJ제일제당은 당시 로켓배송 직매입을 위한 2023년 상품 마진율 협상을 진행하다 갈등을 벌였다. CJ제일제당은 쿠팡이 요구한 마진율을 받아들이지 않자 일방적으로 쿠팡이 발주 중단을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반대로 CJ제일제당 측이 기존에 제품 공급 과정에서 계약상 약속한 공급량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연초부터 수차례 가격 인상을 요구했다고 맞섰다. 이후 쿠팡에서 CJ제일제당 상품은 로켓배송 구매가 불가능해졌다. 업계에서는 쿠팡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익일 배송이 가능한 ‘로켓배송’ 서비스 때문에 쿠팡을 이용하고 있으므로 로켓배송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없게 한 것은 그만큼 해당 업체의 매출에 큰 타격을 준다고 얘기한다. 2022년 기준 로켓와우 멤버십 가입자 수는 1100만 명에 달한다.
CJ와 쿠팡의 갈등 사례는 또 있다. 지난 7월 25일 쿠팡은 CJ올리브영을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중소 납품업자를 대상으로 쿠팡 납품과 거래를 막는 위반 행위를 CJ올리브영이 지속했다는 것이 신고 이유였다. 쿠팡은 CJ올리브영이 뷰티 중소 협력사를 매장 축소 등으로 협박해 쿠팡 납품을 방해하고, 뷰티 중소 협력사에 쿠팡 납품 금지 제품군을 지정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 쿠팡에 납품할 경우 입점 수량 및 품목을 축소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CJ올리브영은 협력사의 쿠팡 입점을 제한한 사실이 없고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쿠팡 로켓배송 서비스가 중단된 이후 CJ제일제당은 지난 3월 네이버쇼핑의 지정일 보장 서비스인 ‘도착보장’ 전문관에 입점했다. ‘내일 도착’ 서비스의 경우 자정에 주문한 상품을 익일 배송해주기 때문에 쿠팡의 ‘로켓배송’에 견줄 수 있는 서비스다. 로켓배송을 직매입을 통해 운영하는 쿠팡과 달리 네이버쇼핑의 도착보장은 제조사가 브랜드관을 운영하며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5월에는 LG생활건강 등과 함께 11번가에서 ‘슈팅배송(오늘 주문하면 내일 도착하는 배송서비스)’ 연합 캠페인도 벌였다.
CJ제일제당은 타 유통업체들과 협업을 강화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6월에는 신세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신세계 유통 3사인 이마트·SSG닷컴·G마켓과 함께 비비고 납작교자, 햇반 컵반, 떡볶이, 붕어빵 등 신제품 13종을 선 출시해 판매하고 있다. 지난 18일부터는 ‘쌀의 날’을 맞아 네이버에서 햇반 기획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컬리와 ‘햇반 골든퀸쌀밥’을 출시해 초도 물량을 3주 만에 완판했다. 반대로 쿠팡도 ‘햇반’ 대신 하림의 ‘더미식 즉석밥’ 3종 세트를 100원 특가로 판매하는 기획전을 펼쳤다.
LG생활건강(LG생건)도 쿠팡을 공정위에 신고하는 등 4년간 갈등을 빚고 있는 이른바 ‘반 쿠팡연대’의 일원으로 거론된다. LG생건은 최근 신세계 유통 계열사에서 CJ제일제당 제품을 구매하면 LG생건 제품을 사은품으로 주고, LG생건 제품을 사면 CJ제일제당 제품을 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앞서 LG생건은 2019년 6월 쿠팡을 유통업법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쿠팡이 LG생건 등 납품회사에 11번가, 아마존 등에서 판매 가격을 인상하도록 강요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2021년 공정위는 쿠팡에 시정 명령과 과징금 32억 원을 부과했다. 이후 쿠팡은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초 지난 17일로 예고된 판결 일정이 미뤄져 31일 양측의 추가 변론이 예정돼 있다. 이 판결에 업계는 예의주시하고 있는 분위기다.
‘반 쿠팡연대’는 제조업계와 쿠팡에 밀린 유통업계의 이해가 맞물려 형성된 것이라는 게 유통업계 분석이다. 쿠팡은 올해 2분기 매출 7조 6749억 원, 194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업계 1위 자리를 공고히 했다. 쿠팡에 밀린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쿠팡과 갈등을 빚는 제조업체와 자연스레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제조들은 모두 타 유통업체와 협업이나 프로모션이 “쿠팡과 관계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쿠팡과 관계가 아니었더라도 타 유통업체와 프로모션은 진행했을 것”이라며 “쿠팡과도 발주 중단과 관련해 협상을 진행 중이며 양사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유통회사 대 제조회사의 완력 다툼은 계속 있어왔다”며 “아직 대체 불가 영역의 제조업체까진 이 전선이 덜 확대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모두 이 싸움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유통업계 다른 관계자는 “미국의 나이키-아마존 싸움처럼 어디에나 있는 문제”라면서도 “이 줄다리기에 걸려 있는 이해 당사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양쪽 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쿠팡이 로켓배송 정책을 도입하면서 제품 확보를 위해 다른 유통업체와 달리 직매입 방식을 선택했고,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긴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매입 방식으로 쿠팡이 사입하다 보니, 유통업체인 쿠팡이 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됐고 제조사 입장에서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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