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25일 민주통합당 예비경선에 참여한 후보들이 광주합동연설회를 가졌다. |
최근 쏟아지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에선 문재인 후보가 손학규ㆍ김두관 후보를 멀찍이 따돌리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안철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바람’의 충격이 컸지만 민주당 주자들만 놓고 보면 문 후보는 ‘대세론’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타 후보를 압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문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 과정에서 당내 화합을 강조하며 타 후보와의 갈등을 회피하려 했던 것은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다. 문 후보 스스로 자신의 경쟁상대를 손학규, 김두관이 아닌 안철수와 박근혜(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호남이 전략적 선택을 하고 말고가 중요하지 않은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후보의 ‘3자 정립’ 양상이 호남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
결선투표를 전제로 문 후보와 손ㆍ김 후보의 양자대결 조사 결과에서도 ‘문재인 대세론’은 찾아볼 수 없다. 문 후보와 손 후보가 대결할 경우 전국적으로는 문 후보 42.9%, 손 후보 40.5%의 지지를 얻었고, 광주ㆍ전북ㆍ전남ㆍ제주에서는 문 후보 41.2%, 손 후보 40.8%의 지지를 얻었다. 문 후보와 김 후보가 대결할 경우 전국적으로는 문 후보 41.5%, 김 후보 28.9%, 광주ㆍ전북ㆍ전남ㆍ제주에서는 문 후보 39.9%, 김 후보 29.9%로 나타났다. 문 후보가 양자 대결 시 40%대 초반의 지지율에 갇혀 있고, 손 후보의 경우 문 후보와 초박빙 승부를 벌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사를 의뢰한 주체가 손 후보 측이라는 점에서 이 조사결과를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최소한 민주당의 중심이랄 수 있는 권리당원들, 특히 호남 당원들 사이에서 ‘문재인 대세론’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조사 결과는 광주ㆍ전남기자협회가 리서치뷰에 의뢰해 협회 소속 기자 2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다. 지난 7월 31일 실시된 이 조사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적합도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40.1%가 김두관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문재인 후보로 25.0%를 얻었고, 손학규 후보는 19.4%의 지지율로 3위에 그쳤다. 범야권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안철수 원장이 36.1%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김두관 후보는 27.0%의 지지를 얻었고, 문재인 후보는 14.3%, 손학규 후보는 13.9%를 얻었다. 수치상으로 보면 ‘문재인 대세론’은 없고, 오히려 ‘김두관 대세론’이 나올 법하다. 물론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인 만큼 그 결과를 광주ㆍ전남 주민들의 민심으로 과잉 해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역 여론 형성 과정에 언론매체가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만큼 이 같은 조사 결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들 2개의 조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호남 지역 민주당 권리당원, 기자 등 지역 여론 형성에 영향력이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는 문재인ㆍ손학규ㆍ김두관 후보가 여전히 팽팽한 지지율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들 세 후보 모두 아직까지는 호남 주민들에게 뭔가 부족한 후보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 결과 ‘호남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선 문재인 후보는 본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친노(친노무현) 비토’기류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 과정에서 참여정부의 대북송금특검 수용이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친노 필패론’이 일었던 것은 이 같은 지역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광주 지역에서 한 대선주자를 돕고 있는 인사는 “문재인 후보가 ‘특전사 사진’을 홍보용으로 활용하고, 심지어 특전사 군복을 입고 특전사 마라톤대회에 참석한 것조차 지역에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며 “문 후보가 1980년 5ㆍ18 학살에 동원됐던 사람도 아닌 데도 지역에서는 ‘어떻게 특전사 출신이라고 자랑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친노그룹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증거”라고 전했다.
손학규 후보와 김두관 후보는 공통적으로 낮은 지지율에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전략적 선택의 기본 전제는 ‘우리가 밀어주면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믿음이다. 두 후보 모두 현재의 지지율로는 호남 주민들에게 이런 믿음을 줄 수 없는 수준이다. 손 후보의 경우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데 대한 반감이, 김 후보의 경우 준비가 덜 된 게 아니냐는 불신이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민주당이 발표한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 일정에 따르면 전북 경선은 전체에서 5번째로 9월 1일에, 광주ㆍ전남 경선은 전체에서 8번째로 9월 6일에 치러질 예정이다. 광주ㆍ전남 경선 이후에는 부산, 세종ㆍ대전ㆍ충남, 대구ㆍ경북, 경기, 서울 순으로 경선이 이어진다. 호남지역 경선이 전체 경선의 중간쯤에 치러지는 셈이다. 그만큼 호남의 선택이 이번 경선에서 큰 규정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호남 민심의 선택을 받기 위한 세 주자들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음을 예고한다.
박공헌 언론인
‘DJ도 책임 물을 수 있다…’ 문제의 발언이 문제
문 후보는 적극 해명해 왔지만 당시 대북송금특검법 수용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시작되는 양상이다. 특히 <신동아> 2003년 4월호에 실린 문 후보(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인터뷰 내용이 태풍의 핵으로 부상할 조짐이다. 지난 7월 26일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 OBS TV토론에서 김영환 후보가 처음으로 이 인터뷰를 문제 삼았다. 김 후보가 인터뷰 내용을 근거로 대북송금특검법 수용에 대해 문 후보의 사과를 거듭 요구하자 문 후보는 “같은 시기에 나온 <한겨레> 등 종합 일간지와 내용을 비교하지 않은 채 어떻게 <신동아>와 같은 매체의 기사 내용만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고 정색하고 받아쳤다. 답변 시간이 부족하자 문 후보는 “이렇게 하시면 안 되죠. 답해야 하니 시간을 더 달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신동아> 인터뷰에 어떤 내용이 담겼기에 ‘젠틀 재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문 후보가 이렇게까지 발끈했을까. 대북송금특검법안이 공포된 2003년 3월 15일 오후 민정수석실에서 이뤄졌다는 이 인터뷰에서 문 후보는 ‘대북송금 사건에 대한 DJ의 대국민 사과와 임동원ㆍ박지원 등 이전 정권 관련자들의 사과와 해명이 충분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충분하지 않다고 보니까 특검이 나온 것 아니냐. 이번 특검이 국익에 손상을 준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손상이 오는지 그 내용을 모르겠다”고 답했다. 문 후보는 또 ‘어느 선에서 마무리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책임 있는 인사들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DJ도 그 대상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는 “김 전 대통령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면 그 부분(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북한에 돈을 전달했는지)까지는 관여하지 않았으리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관여한 바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죠”라고 답했다.
김영환 후보는 “문 후보가 민정수석이던 시절 DJ라도 특검 결과 문제가 드러난다면 사법처리 하겠다는 말을 했다”며 “이런 분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돼서는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문 후보의 ‘문제의 발언’들은 민주당 대선후보 본경선에서도 다시 쟁점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