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천 헌금’ 의혹 당사자인 새누리당 현영희 의원(왼쪽)과 현기환 전 의원이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화살은 결국 박근혜 후보를 향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번 사건을 현영희 의원의 개인 비리로 규정하며 박근혜 책임론을 불식시키고자 했던 박근혜 캠프는 비상이 걸렸다. 현기환 의원에 이어 이정현 최고위원과 현경대 전 의원 등의 이름마저 줄줄이 거론되자 캠프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현 의원과 부산지역 친박계 의원들이 심상찮은 관계와 관련된 루머들이 파다하다. 실제로 “‘친박계 스폰서’로 통했던 현 의원이 부산권 정치인들의 ‘돈줄’ 역할을 해왔다”는 소문과 함께 ‘현영희 리스트’에 연루된 중진의원들의 실명까지 떠돌고 있는 상황이다.
핵심은 이번 파문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들이 모두 친박계 인사라는 점이다. 당연히 정치권의 시선은 현 의원과 박근혜 후보와의 연결고리에 쏠리고 있다. 현 의원은 19대 국회의원 선거기간 중 사용된 공보물에 자신을 ‘박근혜가 선택한 여자’로 소개했을 정도로 박 후보와의 관계를 강조한 바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의 외곽조직격인 ‘포럼부산비전’의 공동대표인 현 의원이 이 조직을 공천로비 창구로 활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친박의 핵심인 서병수 사무총장이 발족시킨 이 조직은 친박계 중진들이 운영에 관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조직에 2007년 가입한 현 의원은 상당한 재력을 바탕으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재정 지원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조직에는 현 의원으로부터 3억 원 수수의혹을 받고 있는 현기환 전 의원을 비롯해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포진해 있으며 박 후보 역시 조직의 창립 기념식이 수차례 참석했다. 실제로 정가에서는 “포럼부산비전 관계자에게 공천로비를 시도한 이들이 꽤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리고 이러한 소문은 포럼부산비전의 김 아무개 사무총장이 서병수 사무총장의 오랜 측근인 데다가 각종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 의원의 전방위 로비의혹에 대한 소문은 이미 지역 정가에서 파다했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유치원 원장으로 변신했던 현 의원은 2010년 부산교육감 선거에도 출마했다가 낙선한 바 있다. 180억 원대 자산가인 그는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부산 정가의 마당발로 통할 만큼 활발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후원금 리스트가 떠돌자 소문에 휩싸인 지역 의원들은 펄쩍 뛰면서도 뒤늦게 후원회 계좌 명단확인에 나서는 등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주목할 것은 재력을 바탕으로 현 의원이 이곳저곳 줄을 대기 위해 동분서주한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누리당 부산지역 의원 사이에서는 부산지역 친박계 인사들의 물주 역할을 자청한 현 의원이 후보들 캠프를 일일이 돌아다녔다는 구체적인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열성적으로 움직이는 현 의원을 두고 “여의도 정치권으로의 진입을 위한 것”이라는 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4·11총선 당시 후원금이나 선거 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현 의원이 여러 인사들에게 상당한 자금을 제공한 정황도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현 의원이 300만~500만 원의 후원금을 상당수의 부산 친박 의원들에게 차명으로 전달했다는 소문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역 정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현 의원발 후원금이 부산 지역 초선의원들에게도 전달됐다는 얘기도 있다. 또 현 의원이 비례대표로 입성한 것을 놓고도 지역에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던 것도 사실이다. 당시 상황을 알고 있다는 한 지역구 관계자는 “두 차례 시의원을 지낸 데다가 교육감 선거까지 출마했던 현 의원이 전문직 비례대표로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가 있었다. 현 의원이 워낙 돈을 많이 쓰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 비례대표 공천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도 일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공천위로서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공천 당시 현 의원의 재산형성 과정의 불법성과 관련된 투서가 공천위에 전달됐다는 얘기도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현 의원이 2010년 부산교육감 선거에 출마할 때도 상당한 금품을 살포했다는 루머도 나오고 있다.
현기환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현영희 의원으로부터 3억 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현 전 의원은 이번 공천 헌금 파문을 둘러싼 갖가지 소문의 진원지로 거론되며 박 후보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여의도연구소 제2 부소장을 맡고 있는 현 전 의원은 박 후보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2008년 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박 후보를 보좌했던 현 전 의원은 4·11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공천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문대성 손수조 후보 등을 진두지휘하면서 사실상 부산 지역 선거를 총괄했다. 실제로 현 전 의원이 단순히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 중 한 명이 아니라 친박계를 사실상 대리하는 입장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아직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박 후보의 최측근인 현 전 의원이 이번 사건에 등장했다는 자체가 박 후보에게 타격을 입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과 함께 당 차원에서 현 전 의원과 미리 선을 긋지 않은 것에 대한 성토도 나오고 있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현 전 의원이 평소 ‘누구는 되고 누구는 이래서 안된다’는 식으로 민감한 공천 이야기를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누구누구는 아웃’이라는 말도 대놓고 했다. 공공연하게 ‘박근혜 대리인’이라는 닉네임이 붙어다니는데 언행에서 조심스럽지 못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를 둘러싸고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고 전했다.
그밖에도 “현 전 의원이 공천 초반 튀는 행동을 많이 하면서 내부에서도 염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현 전 의원의 평소 행실이 심심찮게 도마위에 올랐으며 수차례 자중하라는 부탁과 함께 경고를 받기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번 사건은 타 지역 친박 인사들에게까지 불똥이 튈 조짐도 있다는 점에서 박 후보 캠프를 긴장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부산뿐만 아니라 서울과 충청 등 타 지역에도 사실상 공천을 좌지우지한 또 다른 현기환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현 의원이 제공한 돈이 여러 루트를 통해 캠프 경선 자금 등으로 유입됐다면 더욱 큰 문제다. 결국 박 후보의 대선자금 스캔들로 확전되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