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데뷔를 앞둔 미모의 텐프로 여성과 건실한 중소기업 대표이사가 결혼까지 염두에 둔 연인사이에서 철천지 원수가 된 속사정은 무엇일까.
A씨는 2008년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기업체 대표이사직을 맡아 해당 업계에선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 이사직에 오른 후부터 거래처 접대 등으로 강남 일대 텐프로 주점들을 자주 들락거렸다는 A 씨는 훤칠한 외모와 큰 키로 당시 텐프로 여성들한테도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A 씨는 텐프로 주점에 일주일 평균 2번 이상 방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스폰’(마음에 드는 텐프로 여성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주기적으로 성접대를 받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랬던 A 씨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한 후배가 ‘특별한 여자가 있다’며 만나볼 것을 권유하면서 ‘일’이 시작됐다.
A 씨는 “여자 한번 만나봐라. 그런데 다니는 애 같지 않다. 가정환경이 어려운 불쌍한 애다”라는 후배의 청에 2008년 2월 강남에 있는 한 카페에서 B 씨를 정식으로 만났다. 만나고 보니 그녀는 압구정 소재 텐프로 ㅁ 주점에서 이미 몇 번 조우했던 사람이었다.
술집에서 볼 땐 눈길도 두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밖에서 그것도 대낮에 만난 그녀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당시 B 씨는 A 씨에게 자신을 명문 Y 대 작곡과 출신이라 소개하며 ‘독일 유학 중 학비가 부족해 중퇴하고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텐프로가 됐다’는 사연을 털어놨다고 한다. A 씨는 “평소 믿고 지내던 후배가 소개 시켜준 사람이었기 때문에 B 씨의 말이 거짓으로 들리지 않았고 딱한 사정을 들으니 마음이 흔들렸다”고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B 씨는 모델 체형에 나이보다 다소 성숙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부잣집 딸일 것 같은 외모 뒤에 감춰진 실상은 동정심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아버지는 도박 빚에 쫓겨 부산에서 실종됐고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다’며 B 씨가 어렵사리 털어놓은 불우한 가정사는 A 씨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그런 B 씨가 마음에 걸린 A 씨는 2008년 4~5월경부터 B 씨가 일하는 ㅁ 텐프로 주점에만 방문하며 일주일 평균 3회 정도 ‘묶어주기’를 시작했다. 텐프로 주점에는 보통 15~20개의 룸이 있는데 텐프로 여성들은 각 룸에 들어가서 접대할 때마다 10만 원 정도를 지급받는다. 때문에 아가씨 입장에선 최대한 많은 룸을 옮겨 다녀야 돈을 벌 수 있다.
여기서 ‘묶어주기’란 일종의 1일 스폰서를 의미한다. 마음에 드는 텐프로 여성이 각 룸을 떠돌며 고생하지 않게 사전에 200만~300만 원가량을 주인마담에게 선지불하고 해당 텐프로 여성을 자신의 룸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묶어두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A 씨는 약 1년 반 동안 일주일 평균 3회씩 B 씨를 ‘묶어’줬다고 한다. A 씨의 주장대로라면 약 5억 원에 달하는 큰돈이 1일 스폰서 방식으로 B 씨에게로 흘러간 셈이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검찰 관계자는 ‘A 씨가 당시 2년간 텐프로 마담에게 적어준 영수증이 제출됐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A 씨는 “그때 썼던 돈을 받아내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장기간 큰돈을 써가며 B 씨를 묶어준 건 동정심 때문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당시 B 씨는 지병이 심장병이라면서 걸핏하면 룸에서 실신을 했다”고 강조했다.
A 씨가 ‘B 씨의 심장병’에 관련된 내용을 안 이후부터는 B 씨로부터 자주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왔다고 한다. 이를테면 새벽에 B 씨로부터 전화가 와서 받아보면 대부분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지금 심장 때문에 병원응급실에 와 있다. 수술비가 없으니 500만 원을 보내달라”는 요청했다고 한다. 룸에서 만날 때마다 B 씨가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져 들것에 실려 나갈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던 A 씨는 그때마다 별 의심없이 계좌이체로 돈을 보내줬다고 주장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A 씨가 주장하는 이 시기에 실제로 300만~700만 원 정도의 돈이 주기적으로 A 씨의 계좌에서 B 씨에게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A 씨가 ‘병문안을 가겠다’고 하면 그 때마다 B 씨가 ‘오빠에게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며 울먹이는 통에 마음에 약해져 찾아가보지도 못했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더군다나 ‘병원이 어디냐’는 A 씨의 질문에 B 씨가 곧바로 자세한 스토리를 풀어놓아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B 씨는 “어릴 적 부산에서 내 심장을 수술해준 주치의가 지금 압구정에서 새로 병원을 차렸다. 그곳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A 씨는 검찰조사과정에서 “훗날 알고 봤더니 심장 관련 병원이 아니라 피부과, 성형외과였다. 완벽하게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B 씨는 검찰조사에서 “심장병이 있다고 말한 적은 없다. 가끔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한 적은 있다. A 씨가 병원비 명목으로 나한테 보내줬다는 돈은 텐프로 외상대금이다”라고 진술했다.
이밖에도 A 씨는 2010년 2월 중순 B 씨가 ‘어머니가 치매에서 완치돼 요양병원에서 쫓겨났다. 내가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집이 단칸방이어서 힘들다’며 매일 징징대 강남 모처에 집을 한 채 마련해줬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B 씨의 사실상 스폰서 역할을 2년 반 동안 해왔지만 성관계는 거의 없었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억 대의 돈이 오가는 스폰서와 텐프로 아가씨 사이에서 성관계가 거의 없었다는 주장은 다소 믿기 힘든 부분이다. 이에 A 씨는 “B 씨가 ‘성관계를 하면 심장이 뛰어서 아프다’며 툭하면 쓰러지고 그러는데 남자가 되어서 어떻게 강제로 성관계를 하느냐. 2년 반 동안 성관계 횟수는 단 2회뿐이었다. 그 정도로 B 씨를 사랑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거액의 현금과 집을 비롯해 순정까지 바쳤던 A 씨가 돌연 검찰에 B 씨를 고발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A 씨는 B 씨가 자신의 순정을 배신한 게 너무 화가 났다고 했다. 자신과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 와중에도 다른 남성들을 만났다고 한다. A 씨는 “텐프로 출신임을 알면서도 예비며느리로 대했던 어머니의 가슴에 B 씨가 대못을 박았다. 그 점이 가장 용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A 씨는 B 씨가 지적인 얼굴을 갖춘 탁월한 연기자였다고 회상한다. 그는 B 씨가 심장병이 있는 연약한 여성이라는 점, 불우한 가정사 때문에 명문 음대생으로서의 삶을 포기했다는 점 등은 모두 거짓말로 자신 말고도 여러 명의 유력인사들을 스폰서로 삼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그들 중엔 이름을 대면 알만한 케이블TV 대표 아들과 히트곡 제조기로 유명한 거물급 작곡가도 포함돼 있다고 A 씨는 주장했다. 20대 중후반으로 연예계에 데뷔하기엔 다소 늦은 감이 있는 나이인 B 씨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 한류스타의 뮤직비디오에 여주인공으로 돌연 낙점된 것도 이런 거물급 스폰서들의 입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A 씨의 추측이다.
A 씨와 B 씨가 결혼을 전제로 교제한 지 2년 반이 지난 2011년 2월 무렵 B 씨는 A 씨에게 갑자기 결별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B 씨가 A 씨에게 “어마어마한 (거물급) 스폰서가 나타났다. 심장병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어 더 이상 폐를 끼치기도 싫다. 새로운 스폰서에게 의지하고 싶다”며 보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는 것이다.
A 씨는 처음엔 B 씨의 결별통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뒤늦게 B 씨의 동료들로부터 B 씨의 또 다른 사생활을 전해 듣고 결국 B 씨를 사기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A 씨는 “내가 B 씨를 만나면서 잠자리도 갖고 스폰서처럼 즐겼으면 고소 안한다.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나 몰래 영감탱이들과 뒹굴었던 것을 생각하니 꼭지가 도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A 씨 측 담당변호사는 “수많은 텐프로 사건을 겪어봤지만 A 씨처럼 동거 혹은 주기적인 성관계가 없이 스폰을 해준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마도 이 부분이 민사재판에선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A 씨의 주장에 대해 B 씨는 9일 통화에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이미 검찰조사에서 이와 관련해 여러 차례 반박했다”고 강조했다. “A 씨의 주장에 대해 반박할 생각이 없는가” 묻자 B 씨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B 씨는 검찰 조사에서는 ‘A 씨가 도박과 술에 빠지는 모습을 자주 보여 결혼 상대자로서 부적격으로 생각돼 결별하게 된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밖에도 B 씨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본에 따르면 고소가 이뤄졌던 당시 B 씨는 동료에게 “내가 유명 텐프로인데 고작 1억 5000만 원 못 벌어서 사기를 치겠느냐”며 A 씨의 고소를 황당해하는 내용의 통화를 자주 하기도 했다.
한편 A 씨가 B 씨를 상대로 한 형사고소에 대해 검찰은 최근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지만 A 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B 씨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