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
8월 10일, 런던 웸블리아레나에선 리듬체조 둘째 날 경기가 펼쳐졌다. 전날 후프와 곤봉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던 손연재는 가장 자신 없어하는 곤봉과 나름 선전을 기대하게 만든 리본 부문의 경기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그런데 곤봉 연기를 펼치던 중 슈즈가 벗겨지는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손연재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연기를 마무리했지만 일명 ‘맨발 투혼’이라고 불리는 곤봉을 마치고 그는 잠시 패닉 상태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손연재의 소속사 IB스포츠의 한 관계자는 “이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리본이 끊어져 당황했던 경험이 있는데 올림픽 무대에서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선수가 갖는 실망과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면서 “그래도 옐레나 러시아 코치 덕분에 마음을 잘 추스르고 리본 경기를 멋지게 소화해내 결국 결선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 손연재 모친 윤현숙 씨. 이주연 사진작가 |
윤 씨의 얼굴은 흙빛이 됐다. 가뜩이나 극도의 긴장으로 물 한 모금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있던 그는 슈즈 사건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던 것.
“연재는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다. 한 번도 쉽게 가는 적이 없다. 체조하면서 있을 수 없는 일로 꼽히는 리본과 슈즈가 끊어지고 벗겨지는 일들이 계속 발생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남은 리본 경기에서 또 다시 실수를 하게 된다면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손연재는 강심장이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포디움에 등장, 화려한 리본 연기를 선보이며 심사위원들로부터 28.050점을 받아 후프(28.075점)와 볼(27.825점) 곤봉(26.350점)의 점수를 합하니 110.300점으로 결선 진출 10명 중 6위에 오르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손연재의 올림픽 성적이 한국 리듬체조 사상 역대 최고의 기록이라고 하니 그는 메달 획득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올림픽 목표를 달성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손연재는 대한체조협회로부터 한 달에 60만 원씩 9개월 동안 지원받는다. 즉 1년에 1000만 원도 아닌 540만 원을 받고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손연재가 CF 촬영을 통해 부수입을 챙기지 못했더라면 그는 러시아 훈련은 물론 올림픽 무대를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손연재 어머니 윤 씨는 “러시아 훈련비가 한 달에 2000만 원씩 들어간다. 일반인 가정에선 도저히 뒷바라지할 수 없는 거액이다. 1년에 2억~3억 원 정도 지출된다고 보면 맞다”면서 “그런데도 체조협회에선 선수가 알아서 하는 걸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은 연재가 외부 활동을 통해 훈련비를 충당하지만 CF를 찍지 못하는 연재 후배들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그 많은 돈을 지원받고 훈련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손연재는 런던 입성 후 올림픽 경기 직전까지 셰필드에서 훈련했었다. 그때 그의 옆에는 옐레나 니표도바 개인코치밖에 없었다. 즉 대한체조협회에서 단 한 명의 직원도 보내주지 않았다. 대회 참가부터 서류 관련 일 등 모든 걸 손연재 혼자서 처리했다. 워낙 그런 일들에 익숙할 만도 했지만 올림픽을 앞두고선 손연재도 예민해진 상태라 행정 처리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는 게 IB스포츠 관계자의 귀띔이다.
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하면 손연재의 휴식은 잠시뿐일 것 같다. 또 다른 대회를 위해 러시아로 돌아가 훈련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 그런데 한국에 있는 동안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바로 대학 진학 문제다. 현재 세종고 3학년인 손연재를 두고 벌써부터 유명 대학에서 손연재를 입학시키기 위해 물밑 경쟁이 한창이라고 한다.
어머니 윤 씨는 “세종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세종대에 체조 관련 학과가 있지만, 대학 진학은 체조 전공보다는 은퇴 이후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과를 선택하고 싶다는 게 손연재와 어머니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고려대는 김연아가 재학 중이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김연아와 미묘한 관계에 놓여 있는 손연재로선 고려대를 선택할 확률이 극히 적다.
어머니 윤 씨는 9월 중에 손연재의 대학과 관련해서 진로 문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국 런던=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