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사진. 왼쪽부터 엄마, 유민, 시연, 아빠. |
추자도는 제주도와 완도 중간에 있다. 완도에서는 배를 타고 3시간, 제주도에서는 2시간이 걸린다. 42개의 섬이 추자군도를 이루는데, 그 중 사람이 사는 곳은 2개. 유경이네는 3000명 정도가 살고 있는 하추자에 있다.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 기가 막혔다. 제주도도 아니고 추자도, 딸만 셋 있는 집의 딸 셋이 다 바둑을 둔다는 것은 전설의 그림 같았다.
그림의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8월 8일,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했지만, 그날은 태풍이 쉬었고 배는 떴다. 아빠가 바둑을 잘 두는 걸까. 아빠가 아니라면 엄마라도 바둑을 두는 걸까. 아빠 이태협 씨(53)가 봉고차를 갖고 마중 나와 있었다. 유경이네는 바로 바닷가. 발밑에서 파도가 부서지고 작은 언덕이 뒤를 받쳐 주고 있는 2층 외딴집이다. 고개 들면 일망무제의 바다. 선착장에서 걸어도 5분이 안 걸릴 거리, 선착장도 바닷가, 집도 바닷가.
“차가 고물이지요…^^? 바닷바람 때문에 좋은 차도 소용없어요.”
봉고의 뒤편은 화물칸, 아니 침대칸이다, 세 자매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서울 유학을 시작했다. 딸들이 피곤할까봐 아빠는 침대칸을 만들었고, 딸들은 특급침대에 누워 깔깔대다가 잠도 자고 꿈도 꾸면서 서울을 오르내렸다.
“피아노도 다니고 그랬는데, 크게 흥미를 느끼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뭔가 다른 취미를 하나 가르쳐 주고 싶어 생각하다가 바둑을 시켜 본 건데, 이것 봐라 굉장히 재미있어 하는 겁니다…^^ 집안 내력인지도 모르겠어요.”
아빠는 자칭 넷마블 8급. 그러나 아빠의 선친, 유경이 할아버지가 열렬한 바둑인이었다. 전남의대 1회 입학, 수석 졸업으로 의술과 선행, 애향과 헌신으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이동일 박사가 유경이 할아버지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한라산 1100고지의 백록상은 유경이 할아버지가 세운 것. 할아버지의 명을 받고 아빠가 트랙터에 싣고 가 설치했다.
“올해 돌아가셨는데, 평소에도 그러셨지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바둑책을 놓지 않으셨어요. 거동이 불편하셨지만, 바둑책 보시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또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었지요. 실력도 상당하셨고… 아버님의 노년은 바둑으로 행복하셨던 셈이지요. 그걸 보면서 바둑이 참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아빠의 삼촌인 제주도바둑협회 김석범 고문은 제주도 최고의 바둑 명사. 실력이 제주도 제일이었고 오랫동안 제주도 바둑을 이끌었으며 팔순을 넘긴 지금도 제주도 바둑 대소사에 앞장서고 있다. 재작년에는 전국 시니어 바둑대회에서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유경이 자매는 상추자에 있는 청소년문화회관에서 바둑에 입문했다. 첫 스승은 박성균 7단. 박 7단은 대한민국 전국 각지에 바둑 제자가 있다. 그런 열정도 드물다. 생각이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박 사범님이 떠나신 후에는, 얘들을 서울로 보내기 전까지는 넷마블 8급인 저와 넷마블 18급인 집사람이 기경중묘 사활묘기 현현기경 관자보 발양론 현람, 그런 책들을 복사해 숙제를 주고 체크하면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집사람이 바둑은 18급이지만 바둑 정보, 바둑 교육은 9단입니다…^^”
왜 곡절이 없었을까. 자매의 실력이 늘어가자 아마 5~6단을 넘어선 딸들에게 넷마블 8급의 말발이 잘 안 먹히는 것 같을 때도 있었고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아빠, 내가 왜 바둑을 해야 해?”라는 질문에 당황해질 때도 있었다. 진도가 여의치 않을 때 아빠는 분했다.
“다섯이 모여 앉아 끝없이 토론했습니다. 문제가 생겼다고 느낄 때도 그랬지만, 아~, 이런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느껴질 때, 앞당겨서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토론하고 논쟁하고 하다 보면 아이들의 마음이 저절로 풀어지더군요. 주변 분들이 우리 애들을 보면 참 밝다고 말씀하시는데, 참 고마운 말씀인데, 만일 정말 그렇다면 그건 아마도 마음에 맺힌 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문제가 마음속에서 굳어지기 전에 풀어버리곤 했으니까… 목표는 당연히 입단이지요. 그러나 원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막내 시연이는 아직 시간이 있지만, 좀 늦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유경이하고는 이번에 오래 얘기했습니다. 네가 배운 바둑을 사회봉사에 활용하는 건 어떠냐, 지금 우리 주변에는 몸이 불편하거나 생활이 어렵거나 사는 걸 우울해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네가 바둑으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도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 아니냐 그랬더니, 고맙게도 동의하더군요. 먹고 사는 건 아빠 사업(수산물 가공-유통업)을 네가 좀 도와주면서 같이 하자고 했지요.”
유민이는 바둑방송 쪽에 관심이 있고, 시연이는 어디까지나 승부다. 누가 봐도 착하고 예쁜 유민이는 아닌 게 아니라 방송이 어울릴 것 같고, 막내지만 당찬 시연이는 천상 승부사의 모습이다.
저녁 때 예의 토론이 벌어졌다. 아빠가 시연이에게 나무라는 투로 “복기를 해야 느는 거다. 네가 둔 바둑을 기록했다가 선생님에게 복기를 부탁하느냐? 선생님은 일일이 가르쳐 주시기 힘들 거다. 그러니 네가 알아서 졸라야 한다”고 추궁했다. 유민이는 동생이 코너에 몰리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슬며시 자리를 떴다. 시연이는 표정 없는, 냉정침착한 얼굴로 20분쯤 아빠의 연설을 들으며 한마디도 변명하거나 대꾸하지 않고 있다가 아빠의 훈시가 끝나는 듯하자 조용히 말했다.
“…어느 정도는 해…” 그 표정과 억양, 그 눈망울. 추자도 세 자매. 하긴 비금도 이세돌도 있지. 추자군도 42개 섬은 하늘에서 보면 바둑의 초반 포석을 연상케 한다고 한다. 추자도의 추(楸). 옛날에는 바둑을 ‘추평(楸枰)이라고도 했단다. 그래서 오늘도 전설과 현실은 파도처럼 뒤섞인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