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상범죄 지원 조례 첫발 뗐지만 예산·인력 과제 산적…서울시 비롯 타 지역 조례 개정도 난항
#"뺑소니 당하셨냐" 두 번 우는 유족
"국가가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컨트롤타워 부재란 게 이런 거구나…."
서현역 일대에서 최원종(22)이 몰던 차에 치여 숨진 고 김혜빈 씨(20)의 어머니는 딸이 곁을 떠난 후 여전히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다. 특히 일요신문 인터뷰에서는 국가의 역할에 의문이 든다고 거듭 강조했다. 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이 존재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지고, 그마저 받고자 하니 복잡한 절차 탓에 병원에 누운 딸을 온전히 돌보는 데 집중하기 쉽지 않았던 탓이다.
검찰청, 경찰청, 경기도, 성남시, 건강보험공단 등의 지원기관은 있지만 없는 듯했다. 각종 지원금의 종류가 워낙 많고 신청 절차도 까다로운 데다 중복 수령도 불가능했다. 대검찰청의 경우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1년 치료비 1500만 원을 지원하지만, 혜빈 씨 가족이 입원한 지 보름도 채 안 돼 청구 받은 중간비용만 약 2300만 원에 달했던 사연은 잘 알려져 있다.
피해자 가족들은 매일을 눈물로 보내야 했다. 턱없이 부족한 지원금은 차치하더라도 수령이 가능한지 여부조차 불확실한 상황 속 수십 장의 신청서류를 만들고 이곳저곳에 전달하며 자녀 병간호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일련의 과정에서 상처가 더해지는 일도 반복된다. 예컨대 혜빈 씨가 서현역 피해자인 줄 모르는 각 기관들은 늘 부모에 전화해 "교통사고가 뺑소니였나" 등을 묻곤 했다.
또 다른 희생자인 60대 고 이희남 씨 가족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유족들은 인터뷰는 사양했으나 "온 식구가 너무 힘들어 하고 있다"며 "아직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미리 가입해둔 자동차·운전자 보험에 따른 보상을 일부 받았다고 알려졌다. 이 역시 혜빈 씨와 같이 피해가 일반 교통사고로 처리되어서다. 당연히 두 유족 모두 서현역 테러가 단순 교통사고라는 데 대해 납득은 않고 있다.
#유족이 '알아서 잘해야' 보상
이처럼 적은 지원금은 물론 신청마저 피해자 가족들이 '알아서 잘해야' 하는 실태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는 꾸준했다. 이에 경기도가 최근 첫발을 뗐다. '경기도 이상동기 범죄 방지 및 피해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의결을 코앞에 두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이기인 경기도의원이 대표 발의한 조례안으로 피해자의 법률 및 금전 지원을 도맡아줄 창구를 단일화하고 경기도 재정에 한해 중복지원을 가능토록 한 게 뼈대다.
구체적으로 해당 조례안은 경기도 인권담당관이 중심이 돼 이상동기 범죄 지원에 관한 업무를 전담하기로 했다. 피해자 상담은 물론 법률과 각종 피해지원금 연계 및 후유증과 사후모니터링까지 하도록 했다. 경기도의회는 9월 11일 이 같은 조례안의 심의를 마무리 지었다. 도의회 대부분이 조례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9월 21일 열리는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
단 남은 과제도 산적해 있다. 지원 대상을 2023년 1월 1일 이후 발생한 사건의 피해자로 적용했기에 고 이희남 씨와 김혜빈 씨 가족도 보상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원 규모 등은 더 지켜봐야 한다. 오는 10∼11월쯤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거쳐야 추산이 가능할 전망이다. 조례안 심의 과정에서도 예산 문제가 쟁점이 돼 왔으므로 당분간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상동기 범죄 예방도 중요하지만 경기도 자치경찰위원회(자경위)의 역할이 불분명하다는 숙제도 존재한다. 경기도 자경위는 경찰법에 따라 국가 경찰과 합의 없이 독자적인 활동에 나서기 조심스럽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재 가정폭력 및 학대, 성폭력 피해자 보호, 일반 범죄 예방 등에 인력 및 예산을 집중하는 상황에서 이상동기 범죄까지 맡기는 역부족이라는 이유다.
이기인 의원은 "상임위원회에서 표결도 없이 통과돼서 본회의 문턱을 넘는 것 역시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면서도 "물론 아쉬움도 크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지원금 중복 수령은 상위 법령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다 보니, 부득이 경기도 재정에 한해서만 일부 가능토록 하게 됐다"며 "자경위의 입장을 보면서는 권한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의 문제라는 인식이 들어 대단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걸핏하면 특별법 안 된다"는 서울시의회
경기도 조례안이 마련되기까지는 난관이 많았다. 무엇보다 모범으로 삼을 만한 조례나 법령이 없어 사실상 백지 상태에서 안을 짜야만 했다. 이에 따라 다른 지역에서도 경기도 조례안을 모델로 한 대책들이 나오게 될지도 이목이 쏠리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서울시의회도 조선(33)이 일으킨 신림역 흉기난동 등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유사한 조례를 심의했으나 결국 보류됐다.
서울시의회에서는 국민의힘 소속 김동욱 시의원(32)이 '서울특별시 무차별범죄 예방 및 피해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공공장소에서 불특정한 개인 또는 2인 이상의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무차별적으로 신체적 피해를 일으킨 범죄의 피해 지원'에 관한 내용을 담았는데 용어 정의부터 가로막혔다. '공공장소'의 의미부터 '2인 이상'으로 규정한 근거 등까지 전부 수정해야 할 상황이다.
당장 서울시의회도 9월에 본회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수정 작업과 검토 등을 다시 거치면 시간이 오래 소요될 것이란 관측이 크다. 뒤늦게라도 통과될 수 있을지 역시 두고 봐야 한다. 9월 6일 조례안 심의에서 부정적인 의견도 다수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자경위의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고, 일부 시의원들은 굳이 새 조례를 만들 필요가 있냐고도 되물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수빈 시의원은 "어떤 범죄나 사태가 크게 벌어졌을 때 정치권이 걸핏하면 특별법 등을 만들어 특정 범죄를 타깃으로 한 제도를 만드는데 저는 반대한다"며 "국회에서도 이상동기 범죄에 관한 특별법은 추진 중인 바가 없고, 현재 제도만으로도 무차별 범죄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에 무리가 없으며 그에 따른 피해자들이 보호를 못 받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동욱 시의원은 "법의 사각지대는 언제든 발생하는데 이를 보완하고 고쳐가는 게 정치인의 입법 의무"라며 "현재 상위 법령에 부재한 내용들이 있으니 하위법령인 조례를 보완함으로써 무차별 범죄 시도나 모방범죄 동기를 무력화·예방하는 동시에 피해자 지원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이 제대로 갖춰졌더라면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졌겠나"라고도 항변했다.
경기도 조례안을 이끈 이기인 의원도 이상동기 범죄에 관한 제도 재정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피력한다. 무엇보다도 법률 개정 필요성이 크다. 그는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뵙고 도우려 할 때마다 정부나 지자체 등이 '도울 수 있는 게 없다'고 대답하는 장면들을 직접 겪어 봐야 진정성 있는 고민을 할 수 있다"며 서울시의회 상황에 아쉬움을 먼저 토로했다.
이기인 의원은 이어 "부실한 피해자 지원 개선을 위해 급한 과제는 법 개정으로 지원책의 한도를 대폭 상향하고, 피해자가 스스로 지원책을 찾아다니는 번거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지원 전담 부서의 설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면서 "범죄피해자보호법 시행령의 중복지원 금지 규정을 손질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범죄 피해자들이 기댈 곳으로서 마땅히 국가와 지자체를 떠올리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신림역 사건 가해자인 조선과 서현역 가해자 최원종의 재판이 최근 본격화하며 관심이 쏠린다. 조선 측은 9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두 번째 재판을 마치고 나와 "살인 고의가 없었으며, 누군가 저를 죽이려는 등의 피해망상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첫 공판에 돌입한 최원종은 한 언론에 "대인기피증을 겪어 왔으며 구치소 생활이 고문 같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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