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레슬링 정지현 선수는 런던올림픽 8강전에서 편파판정으로 메달의 꿈을 접어야 했다. 아테네올림픽 합동기자단 |
# 정지현 “메달은 하늘이 주는 것”
“올림픽 메달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 같다.” 런던올림픽 8강전에서 아쉬운 판정으로 메달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정지현(29·삼성생명)의 첫 마디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정지현은 런던올림픽 메달 기대주였다. 깜짝 금메달을 딴 김현우(24·삼성생명)가 마치 8년 전 자신을 보는 것 같다며 웃어 보인 정지현은 메달은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번 올림픽은 정말 분위기가 좋았다. 시합 당일 컨디션도 좋았고 그만큼 훈련도 열심히 했기에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비디오 판정으로 흐름을 빼앗겼고 어이없게 실패하고 말았다. 많은 분들이 비디오 판독이 석연치 않았다고 하는데 난 핑계대고 싶지 않다. 원인 제공은 내가 한 것이고 그날의 운이 따라 주지 않아서 상대에게 흐름을 내 준 것도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올림픽 메달은 모든 것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 같다.”
정지현의 얼굴에는 아직도 8강전이 열린 그 날의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봤고 경험도 많기에 유리한 면이 있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지현은 “금메달 딴 기억은 잊어버린 지 오래”라며 아테네올림픽을 회상했다.
“아테네올림픽은 눈에 뵈는 것 없이 들이댔었다. 그만큼 어렸었고 주위의 기대도 없는 상황이라 부담감도 덜 했다. 16강전 때나 4강전 때는 반칙을 해가면서까지 위기 상황을 모면했다. 그때 반칙을 지적받지 않았던 것을 보면 ‘정말 될 놈은 된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앞으로 태어날 둘째아이의 태명을 ‘올금’이라고 지었을 만큼 메달의 절실함이 남달랐다고 말한 정지현은 다시 실패를 맛봤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또 다른 인생의 도전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패배의 아픔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18개월 된 첫째 딸아이를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앞으로 소속팀 선수 생활에 집중할 생각이고 올림픽에서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해 봤기에 기회가 생긴다면 지도자로서도 후배들을 이끌어 주고 보듬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 이현일 “단식에도 관심을”
▲ 배드민턴 남자 단식에 출전해 4위를 한 이현일 선수. 복식만 조명받는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 |
“한국은 전통적으로 복식과 혼합복식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선수들조차도 단식을 기피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외국은 단식 선수들이 기량도 뛰어나고 주목도 많이 받는다. 한국도 단식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많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장기간 준비해야 성공할 수 있다. 주위의 시선 또한 복식이나 혼합복식에 쏠려 있기 때문에 단식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기 쉽고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비록 단식 선수들이 뛰어난 성적을 내지 못한다 해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묵묵히 지켜봐 준다면 올림픽 단식에서도 메달을 따는 날이 올 것이다.”
런던올림픽 복식 경기에서 세계랭킹 1위 정재성(30·삼성전기)-이용대조가 4강에서 탈락하자 3-4위전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뜬 ‘배드민턴 노골드 수모’라는 제목의 인터넷 기사를 봤다는 이현일은 그들 또한 잊혀가는 선수가 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어떤 종목이든 간에 100퍼센트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경기는 없다. 성공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는 있지만 금메달을 확실시하는 언론의 행태는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한다. 힘들게 노력해서 이룬 동메달을 칭찬하기보다 쓴소리로 일관하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할 것이다.”
두 번의 은퇴 번복 끝에 돌아와 올림픽에 계속 도전했던 것은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는 이현일은 올림픽을 ‘아름다운 마지막 추억’으로 간직하겠다고 정리했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 위해 끝까지 열심히 뛰었다. 비록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후회는 없다. 런던올림픽은 준비할 때부터 아쉬움은 남기지 말자고 다짐했었고 4위라는 성적이 아쉽지만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 설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올림픽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루하루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앞으로 남은 목표다.”
▲ 올림픽 5회 출전에 빛나는 남자핸드볼 윤경신 플레잉 코치. 마지막 출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고. 일요신문DB |
올림픽 5회 출전에 빛나는 ‘핸드볼 레전드’ 윤경신(40·핸드볼협회)은 런던올림픽 개막식 기수로 선정돼 가장 선두에 서서 한국 선수단을 이끌었다. 불혹의 나이에 대표팀 플레잉코치로 선발돼 마지막 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런던올림픽이 주는 의미에 대해 물어보았다.
“은퇴 번복이라는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와서 시원섭섭하다. 무거운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홀가분하지만 한편으로는 후배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 아쉽고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 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윤경신은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탈락해 못내 아쉽다고 한탄했다. 이번 대회에서 실력이 월등히 향상된 유럽의 벽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는 윤경신은 최근 들어 더욱더 강해지는 유럽 팀의 높은 경기력을 경계했다.
“유럽 팀들이 4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예전에는 준 프로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훈련의 강도나 횟수도 늘어난 것이 사실이고 한국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스피드나 패스 워크도 우리를 능가하는 수준까지 향상됐더라.”
한층 더 높아진 유럽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운동 프로그램의 체계화를 통한 체력 보강이 필수라고 강조한 윤경신은 남자 핸드볼의 미래를 위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이 아시아 1인자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치고 올라오는 중동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올림픽을 제패하겠다는 먼 미래보다는 먼저 아시아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 나가야 한다.”
독일 굼머스바흐에서 12시즌 동안 리그 하위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었고 8번의 득점왕을 차지하며 ‘핸드볼계의 차붐’이라는 수식어까지 달고 다녔던 윤경신은 화려했던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자리가 태극마크를 달고 뛸 수 있는 올림픽이어서 감사했다고 한다. 자신의 모교인 경희대학교에서 박사논문을 마치고 지도자나 교수의 길을 걷고 싶다는 그는 올림픽에서의 많은 경험이 앞으로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 큰 자양분이 될 것 같다고 자부했다.
“올림픽이라는 무대는 엘리트 운동선수들이 꼭 한번 서보고 싶어 하는 무대인데 나는 운 좋게도 5번이나 이 무대를 밟는 영광을 누렸다. 운동선수로서 경기에 참가해 승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세계 어느 이벤트나 행사에서 이런 값진 경험을 할 수 있겠는가. 비록 5번의 올림픽 도전사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했던 올림픽의 기억들이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나에게 큰 힘을 줄 것 같다.”
▲ 큰 경기에 대한 부담감으로 예선 첫 경기에서 판정패를 당했던 복싱의 신종훈 선수는 “내 복싱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도전의지를 불태웠다. 연합뉴스 |
복싱 기대주 신종훈(23·인천시청)은 런던올림픽이 그의 인생 첫 올림픽이자 유일하게 실패한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올림픽 무대가 바다와 같이 크게 느껴졌다고 하는 신종훈은 그 어느 경기와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스케일에 압도당했다고 회상했다.
“첫 상대였던 알렉산드로프는 전지훈련 당시 상대해 봤었고 이길 자신도 있었다. 올림픽은 나만을 위한 무대가 될 것 같아서 당당하게 시합장에 들어갔는데 무대에 완전 압도당했다.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와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와 구름관중 앞에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위축됐었다.”
세계랭킹 1위 신종훈은 생애 첫 올림픽 경기에서 15-14의 스코어로 판정패 당한 후 꼬박 3일을 선수촌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두려웠다는 신종훈은 올림픽 기간 동안 쓰디쓴 패배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생명(?)의 은인이 있었다고 밝혔다.
“죽을 힘을 다해 준비했던 올림픽인데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니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무서웠고 인터넷 악성 댓글도 견뎌내기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박종길 선수촌장님을 만났다. 올림픽 준비 기간에도 나에게 큰 힘을 북돋아 주시고 용기를 주었던 분이라 너무 죄송스러웠다. 그저 웃으시며 나를 안아주셨는데 선수촌장님의 품이 너무 따뜻했다. 넌지시 ‘잘했다, 수고했다’라고 한마디 해준 것이 나에게 큰 힘이 됐다.”
런던올림픽 복싱 대표팀 선수는 오직 2명, 신종훈과 한순철(28·서울시청) 뿐이었다. 실업팀부터 동고동락했었고 오랜 시간 선수촌에서 룸메이트로 지내다보니 친형제나 다름 없다는 신종훈은 비록 자신은 실패했어도 한순철이 복싱 역사상 16년 만에 은메달을 따내 한국 복싱을 세계에 알려준 데 대해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한다.
“순철이 형이 메달을 따서 좋기도 했지만 솔직히 나도 땄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힘든 훈련 견뎌내 가며 함께 고생했기에 순철이 형도 보상받고 나도 보상받았으면 하는 속마음이었다.”
올림픽 패배의 아픔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밝기만 한 신종훈은 한 번의 올림픽이 끝난 것뿐이라며 그의 복싱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23세 혈기왕성한 어린 선수의 넘치는 패기와 뜨거운 열정이 이 얘기 속에 담겨져 있는 것 같다.
“나는 언젠가는 정상에 설 것이다. 정상에 서서 인터뷰하는 날이 오면 실패가 있었기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고 어려울 때 나를 찾아주고 관심 가져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과 4년 뒤에 열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때 꼭 지켜봐 달라.”
차인태 기자 cit02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