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와 비슷한 캐릭터, 너무 겹치진 않도록 신경…“이젠 얼굴에 연륜 보여, 더 다양한 역할 맡을 것”
“제가 하네스를…차고 있었나요? 아니 기억이 안 나는데(웃음). 아마 칼을 차는 멜빵을 보고 그러신 것 같아요. 참고로 저는 천박사의 외형에 대해 단 한마디도 보탠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아, 멜빵이 너무 짧은데?’ 정도만 했어요(웃음). 제일 처음에 그 착장을 했을 때는 멜빵 안에 칼을 넣어야 했거든요. 그런데 칼이 너무 무거워서 태가 제대로 잘 안 나는 거예요. 또 멜빵을 맨 채로 칼을 넣은 뒤에 재킷을 입으면 칼이 이렇게 목 위로 튀어나와요. ‘이게 뭐야’ 그랬죠(웃음).”
9월 27일, 추석 극장가를 노리고 개봉하는 강동원의 신작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귀신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지만 귀신같은 통찰력으로 온갖 사건을 해결하는 가짜 퇴마사 천박사가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강력한 빙의 사건을 의뢰받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능글능글한 말발과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능력 있는 퇴마사인 양 사기를 치는 천박사의 모습을 보면 강동원의 전작 ‘전우치’(2009) 속 도사 전우치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강동원이 연기한 캐릭터 가운데 특히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만큼 그의 향수가 느껴지는 천박사에도 개봉 전부터 기대가 모였었다. 한편으로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부담도 있을 법한데, 이에 대해 강동원은 “그런 부담은 없었던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전우치’가 제가 이 작품 직전에 찍은 작품이거나, 한 몇 년 전쯤 찍은 작품이었다면 그랬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찍은 지 너무 오래 됐잖아요(웃음). 저는 다시 한 번 전우치의 느낌이 나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천박사를 연기할 땐 그보다 좀 더 새롭게도 표현하려고 했죠. 특히 너무 (캐릭터 성이) 겹치는 걸 피하기 위해서 대사 톤을 신경 썼어요. 너무 전우치스럽지는 않은데 또 그런 느낌은 있게끔(웃음). 아무래도 ‘전우치’를 찍은 지 정말 오래됐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난다고 하더라도 굳이 제가 피할 이유는 없었던 것 같아요.”
능글거리고 가벼워 보이는 외양과 달리 천박사는 어두운 과거를 간직한 인물이다. 대대로 마을을 지키는 당주집 자손이었지만 신령이 되길 꿈꾸는 악한 무당 범천(허준호 분)에게 할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그는 남몰래 복수의 칼을 갈며 살아왔다. 그런 그가 드디어 원수인 범천을 맞닥뜨려 일 대 일 맞대결을 펼치는 신은 이 작품에서 카체이싱 신과 함께 가장 호평받은 액션 신이기도 했다. “이번에 제가 최대한 맞고 굴러다녀야 관객 분들이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다”는 그의 말처럼 이 신에서 강동원은 신나게 맞고 구른다. 그렇게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주는 쾌감과는 별개로, 웬만한 젊은 배우들보다 체격이 좋고 힘이 센 허준호와 맞붙어야 하는 강동원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그 신에선 허준호 선배님이 워낙 운동을 좋아하시기도 하고 액션 연기를 잘하시니까 특별히 걱정할 게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힘이 더 약하니까 ‘안 맞게 조심해야겠다’ 그런 걸 걱정했죠(웃음). 선배님은 힘이 진짜 좋으세요. 같이 스크린 골프 치러가면 드라이브가 저보다 더 많이 나가신다니까요. 그거 보고 ‘와 역시, 예전 액션 스타이셨던 면모가 아직도 있으시구나’ 감탄했죠. 그런데 성격은 또 아이 같은 면도 있으시고 굉장히 친구처럼 대해주세요. 저희가 지방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스케줄이 끝나면 할 일이 없거든요. 그러면 먼저 제게 ‘자장면 먹으면서 골프나 치자’며 다가와 주셨어요(웃음).”
그런가 하면 천박사의 유일무이한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이 영화의 모든 오디오를 담당하는 강 도령 역의 이동휘는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2022)에서 특별출연으로 만났던 이동휘가 이번 작품에선 그간 참았던 애드리브를 전부 터뜨리며 강동원을 놀라게 했다고. 더불어 우정출연으로 작품을 더욱 빛낸(?) 배우 박정민 역시 강동원과 박찬욱 감독이 각본을 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전,란’에서 또 한 번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그의 신들린 듯한 ‘신들린’ 연기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는 게 강동원의 이야기다.
“(이)동휘 씨는 ‘브로커’ 때도 준비를 엄청 많이 해왔는데 이번에도 그랬어요. 저는 애드리브를 잘 안 하는 스타일이라 저랑 반대인 점에서 호흡도 잘 맞았고요. 촬영할 때 제가 그랬어요. ‘넌 진짜 별 거 별 거 다 준비해 온다’(웃음). 또 (박)정민 씨는 저희 작품에 우정출연해서 너무 재미있게 해주고, 지금도 저와 ‘전,란’을 촬영 중이에요. 저는 정말 정민 씨의 팬으로서 개인적으로 ‘오늘은 또 어떤 연기를 할까’ 지켜보고 있죠. 또 ‘전,란’에서는 제가 몸종이고 정민 씨가 도련님인데요, 몸종으로서 도련님 잘 모시고 있습니다, 티격태격하면서(웃음).”
이번 작품처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내가 재미있는 것’을 선택의 1순위로 삼는다는 강동원이지만 그가 출연하는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강동원이 잘생기게 나오는 것’을 우선순위로 꼽곤 한다. 어쩌면 잘생긴 배우들의 공통된 딜레마일 수 있는, 외모가 자꾸만 앞서서 실력이 가려진다는 안타까움이 강동원에게도 적용되는 셈이다. 다만 본인은 그런 우려나 반대로 ‘잘생겨서 얻을 수 있는 이점’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제는 그런 것에 일희일비할 나이가 아닌, 그저 무조건 ‘열일’만 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게 40대에 들어선 강동원의 이야기다.
“잘생긴 배우로서의 장점은 잘생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죠(웃음). 그런데 저는 (외모 관련) 그런 걸 별로 신경 안 써요. 늘 옛날부터 다양한 캐릭터, 어떤 것이든지 다 할 수 있는 배우가 목표였거든요. 이제 40대를 넘어섰으니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캐릭터를 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20대 역할은 물론 힘들겠지만, CG의 도움을 받으면 아주 잠깐은 할 수 있을지도(웃음). 제가 30대 중후반쯤에 대학생 역할 같은 아주 말도 안 되는 역할을 한 적이 있는데 이제 그런 건 진짜 안 될 것 같고요(웃음). 지금은 이제 얼굴에서 연륜이 묻어나는 느낌이 드니까요. 조금 더 성숙한 역할을 많이 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서 좋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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