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실무적 기능인’으로서 훌륭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개별 의원들이 ‘본질적 방향설계자’로서의 역할은 거의 못하고 있다. 당 지도부가 개별 의원들을 방향설계자가 아니라 기능인으로 인식하고 그런 역할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 자체의 방향 설정력 역시 의심스럽다. 그 단적인 증거가 모든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이 새누리당보다 10~15%포인트씩 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 지도부가 대선후보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이 되고 있다는 우려감이 팽배하다.”
황 의원은 △대선후보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당 지도부가 호양(互讓ㆍ서로 사양하거나 양보함) 정신을 발휘할 것 △당내에 정치쇄신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 △대선후보 경선 캠프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60여 명의 의원이 대선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할 것 등을 당 지도부에 요구했다.
황 의원의 발언 내용처럼 현재의 민주당은 제1 야당, 그것도 이번 대선에서 정권을 탈환하겠다는 제1 야당의 면모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국민들에게 민주당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는 정당 지지율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국갤럽의 ‘데일리 정치지표’ 조사에서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지난 3월 둘째주(5∼9일ㆍ새누리당 29%, 민주당 27%) 이후 단 한 주도 새누리당을 앞선 적이 없다. 여권이 ‘총ㆍ대선 참패’ 위기감 속에 2012년을 맞았음을 감안하면 허탈하기 짝이 없는 결과다.
실제로 지난해 말 구 한나라당 의원 보좌진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를 상대로 디도스(DDoSㆍ분산서비스거부) 테러를 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권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기 시작한 것도 모자라 여당마저 부도덕을 넘어 국기 문란 세력으로까지 몰리게 된 것이다. 결국 당 지도부는 총사퇴했고 지난해 12월 박근혜 현 대선후보를 위원장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긴급 소방수’로 투입됐다. 상징색이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었고, 당명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여 만에 민주당이 당 지지율 1위 자리를 새누리당에게 다시 내주고 다시는 빼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정표만 놓고 보면 보수가 진보보다 많지 않으냐”고 항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너무 안일한 진단이다.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정당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준 3월 민주당은 총선 공천을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에 빠져 있었다. ‘노ㆍ이ㆍ사(친노그룹, 이화여대 출신, 486세대) 공천’이라는 비판에 통합진보당(진보당)과의 야권연대에 대한 불만까지 겹치면서 민주당이 내건 ‘정권 심판론’은 표류하고 있었다. 새누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스스로 무너진 게 정당 지지율 1위 자리를 빼앗긴 이유였던 것이다.
특히 총선 이후 진보당이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의 거센 후폭풍에 휩싸이면서 지지율 추락을 거듭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민주당이 저조한 지지율을 이어가고 있는 현 상황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3∼4월 5∼7%선을 유지했던 진보당 지지율은 4월 하순을 기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8월 현재는 2%선까지 무너졌다. 하지만 같은 기간 민주당은 진보당 이탈층을 흡수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6ㆍ9 전당대회’를 통해 탄생한 이해찬 대표 체제 하의 민주당 지지율도 6월 셋째주(11∼15일) 23%에서 8월 셋째주(13∼17일) 22%로 거의 변화가 없다. 35∼36% 선을 유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에 비해 12∼14%포인트 정도 낮은 수치다. 당내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은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이다.
▲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
한 정치평론가도 “야당의 전유물이었던 경제 민주화 이슈까지 여당에 선점당해 버렸다”며 “그동안 민주당이 한 일은 ‘박근혜 욕하기’, ‘안철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구애하기’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당이 스스로 쇄신하지 않으면서 국민이 지지해 주기만 바랐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이와 관련, 박지원 원내대표가 저축은행 비리 의혹에 연루된 것도 민주당의 발목을 잡은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여투쟁에서 막강한 화력을 보여줘 온 박 원내대표의 입지가 축소된 데다 당 차원에서 정치 개혁 등의 아젠다를 이슈화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 못지않게 현역 의원들의 책임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많다. 특히 소속 의원의 절반에 가까운 60여 명의 의원들이 당내 대선후보들을 돕지 않고 있는 것을 두고 ‘한가한 보신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근태계로 분류되는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 의원, 486세대 의원들 대부분이 대선 경선캠프에 참여하지 않은 채 팔짱만 끼고 있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각 캠프에서는 “선거 경험이 풍부한 ‘선수’가 없다”는 푸념이 쏟아진다. 민주당 당직자 출신으로 정치컨설팅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 인사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한다면 이는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사망선고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민주당 의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혀를 찼다. 이 인사는 “‘안철수가 나가더라도 박근혜만 이기면 된다’, ‘야권후보 단일화만 되면 이긴다’는 게 민주당 의원들 생각 아니냐”며 “그런 보신주의적, 패배주의적 사고로 어떻게 박근혜 중심으로 똘똘 뭉친 새누리당을 이기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
‘다리’는 놔줘도 ‘연대’는 장담 못해
지난 4월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야권 통합과 후보 단일화 논의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원탁회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등 진보 성향 원로들로 구성된 원탁회의는 지난 23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조속히 야권연대에 참여해 야권의 대선 승리에 공헌할 것을 촉구했다.
원탁회의는 “우리는 안 원장에게 공식 출마 선언을 서두르라고 다그칠 생각은 없다”면서도 “다만 이제는 그가 돌아설 수 있는 시점이 지났으므로 설혹 야권 단일 후보가 안 되더라도 ‘안철수 현상’의 역동성을 최대한으로 살려 민주 세력의 공동 승리를 위해 확실히 공헌할 책임이 그에게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 원장을 향해 “자기가 단일후보가 되든 민주당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든 일단 나와서 판을 키우고 돕는 것이 맞다”고 주문했다.
안 원장 측도 이날 오후 즉각 화답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안 원장 측은 안 원장이 백 교수와 만났던 사실을 공개하면서 “사회 원로들의 말씀도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안 원장 측이 대선 출마를 전제로 한 어떠한 질문에도 답변하지 않아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날의 반응은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도 원탁회의가 큰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민주당 안팎에서 표출됐다.
하지만 원탁회의의 향후 역할에 대해서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민주당과 안 원장, 진보당 이탈세력 등이 단일 대오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원탁회의가 가교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원탁회의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존 정치권보다는 시민적 입장을 대변하는 원탁회의에 대해 민주당 내에 경계하는 기류가 있는 데다 원탁회의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총선 과정에서 원탁회의 기자회견에까지 참석했던 노수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부의장이 불법 방북과 친북 행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도 원탁회의의 공신력에 적잖은 상처를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
민주당 ‘제주 경선’ 파행 까닭말 많던 ‘모바일 투표’ 또 탈 났다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첫날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 제주에서 문재인 후보가 1만 2023표(59.81%)를 얻어 1위를 차지했지만 다른 세 명의 주자들이 “모바일투표 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경선 자체를 보이콧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흥행이 되지 않아 고심을 하던 지도부는 이번 혼란의 후유증이 대선에까지 이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선관위 차원에서 각 캠프 대리인 회의를 소집, 요구사항을 청취하는 한편 로그파일을 확인해 추가 대응책을 논의하는 동시에 울산 경선은 예정대로 진행키로 했으나 비문 후보 측은 “이 정도로는 불충분하다”고 맞서고 있다.
‘비문 후보’들은 “모바일투표 시 기호 1-3번 가운데 하나를 누르더라도 4번 기호인 문재인 후보의 이름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리면 투표 집계가 되지 않았다”며 투표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자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재투표까지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애초 문제가 많았던 모바일투표를 무리하게 계속 밀고 간 것 자체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며 지도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비문주자’들도 막상 뚜껑을 열어본 뒤 예상외의 큰 표차에 실망해 ‘이판사판 심정’으로 꼬투리잡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난도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