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재력과 인성을 기준으로 입학생을 선발한다는 대학입학사정관제가 비리 온상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드높다. 사진은 목동 학원가. 최준철 기자 choijp85@ilyo.co.kr |
8월중순부터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비롯한 각 대학의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됐다. 그 중 입학사정관제의 인기는 단연 최고다. 잠재력과 인성을 평가한다는 기준 아래 내신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적과 관계없이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교가 늘어나 수험생들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본래 입학사정관제는 시험 성적이 아닌 창의성과 전공에 대한 적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발한다는 취지로 지난 2008년 처음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시행 직후부터 허위 추천서부터 대필로 작성한 자기소개서들이 판치고 이를 전문으로 하는 브로커까지 등장해 온갖 비리의 산실로 전락했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지원조차 불가능한 현실에 이제는 ‘엄마사정관제’ ‘부자사정관제’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돈만 있으면 원하는 스펙을 ‘골라’ 쌓을 수 있다는 말도 거짓이 아니었다. 없던 대회가 한 사람을 위해 개최되기도 하고 직접 참가하지 않아도 수상 명단에 오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지난 21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이 아무개 군(18)은 입학사정관제에 ‘올인’하고 있는 수험생이었다. 이 군은 고등학교 3년 동안 받은 상장만 해도 십수 개가 넘었고 입시학원으로부터 “당장이라도 대기업 입사지원서를 넣어도 될 만하다”고 평가받은 자기소개서도 여러 장 소지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스펙 쌓는 법’은 놀라웠다. 우선 목표한 전공과 관련이 있는 경시대회나 캠프가 있으면 무조건 참석하는 것은 수험생들의 불문율이다. 이 군은 “큰 대회는 수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정 스펙이 쌓이기 전까지는 지방에서 열리는 이름 없는 경시대회에도 참석했다. 몇 번 이런 대회들을 다니다보니 부모님끼리 정보를 주고받고 브로커도 소개받았다. 이 사람들을 통하니 유명 대회 입상도 쉬웠다”고 말했다.
이 군이 말한 브로커들이란 수험생이 어떤 학교를 지원해도 합격할 수 있도록 스펙 쌓기부터 개입해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이다. 대회 유명세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입상을 위해서는 100만 원 이상을 요구한다고 한다. 돈을 내면 그 학생은 브로커들이 만든 학원이나 단체 소속으로 대회에 출전하게 되는데 이미 대회 주최자와 돈거래가 이뤄진 상황이라 손쉽게 수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수험생의 수준이 극히 떨어지면 전문가 섭외를 통해 학습지도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자녀를 지방의 한 대학에 입학시킨 이 아무개 씨(여·49)는 “이도저도 안 되면 브로커가 직접 대회를 개최하기까지 한다고 들었다. 이때 자신들이 관리하는 학생들까지 총동원해 참가자수를 늘리는 방법도 동원한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상위권 수상은 피하고 입상기록만 남을 수 있게 하는 치밀함도 잊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거래했던 학부모들의 추천을 통해서만 활동범위를 넓히는 등 보안유지에 꽤나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스펙 쌓기가 끝나면 다음 차례는 추천서 만들기다. 입학사정관제 지원을 위해서는 담임교사의 추천서가 필수인데 여기서도 치열한 경쟁이 이뤄진다. 30명이 넘는 학생에게 일일이 추천서를 작성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촌지’가 부활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 수험생들은 교사의 작문 실력을 믿지 못해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친절히’ 초안을 작성해오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고3 담임을 맡았던 박 아무개 씨(43)는 “지방이다 보니 아무래도 학생들의 입시 불안감이 더 높은 편이다.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 서울 유명입시학원에서 교사추천서 작성 요령을 받아오기도 하고 학부모들이 찾아와 서로 자기네 아이들만 챙겨달라며 돈을 쥐어주고 갈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입학사정관제의 비리가 날로 진화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 입시전문가는 “각 대학에 배치된 입학사정관은 적게는 1명에서 많아야 20명 남짓이다. 이마저도 2~3년마다 교체돼 전문성도 떨어진다. 이러한 사정관이 수천 명에 이르는 지원서를 일일이 검토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이다. 제도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우린 사정관제 스타일”
그러던 어느 순간 대화 주제가 ‘입학방법’으로 흘렀고 이때부터 편이 갈라졌다. 입학사정관제와 수시, 정시로 나뉘어 은근한 기 싸움이 시작된 것. 박 씨는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한 친구들이 대체로 집안이 부유했다. 정시로 들어온 친구들은 나름 성적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수시로 입학한 친구들 역시 그들끼리 통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들 자신들이 잘났다며 상대방을 무시했고 지금까지도 서로 눈치를 보며 지낸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술에 취할 대로 취한 학생들이 자신들의 ‘입학 비리’를 스스로 공개한 것. 박 씨는 “다른 지방에서 온 동기는 아버지 인맥을 통해 군수 추천서까지 받아 쉽게 입학했다며 떠벌리고 다녔다. 자기소개서 대필은 애교 수준에 불과했다. 처음엔 우리 학교만 이런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해보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