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주자로 꼽히는 정동영 의원 이 최근 지역구 이전설과 신당에 대한 애매한 태 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 ||
‘뛰어난 재능도 안으로 간직하고 자신의 도리를 지키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역경>에 나오는 말이다.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노무현 정권 초기 ‘함장가정’의 태도를 유지하지 못해 벌써부터 위기상황에 몰려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노 대통령 당선 1등 공신으로 ‘예우’를 받던 정 의원이 정치 및 정당 개혁을 앞세운 민주당 신당 논의가 내홍을 겪으면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 의원은 민주당 구주류와 일부 지역구 주민들로부터는 ‘지역구 이전문제’로 적지 않은 ‘공격’을 받고 있고, 민주당 신당 논의과정에서는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구주류와 중도파는 물론, 신주류 내부로부터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6인중진회의 참여 등 한동안 신당 논의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정 의원이 신당 논의가 주춤해지자 돌연 외교활동에 치중하며 한 걸음 발을 빼고 있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정 의원은 전북 전주 덕진구를 지역구로 두 차례나 전국 최다득표 당선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정 의원의 ‘지역구 이전문제’가 정치권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지역할거주의 청산과 지역구도 타파를 골자로 하는 정치 및 정당 개혁을 정 의원이 주창하고 나서면서 ‘탈호남’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지역구를 옮길 것이란 입소문이 나돌았던 것.
올해 초에는 유인태 정무수석이 임명된 직후, 공석이 된 종로지구당으로 이전할 것이란 관측이 대두됐다. 또 ‘탈호남, 탈DJ’가 신당 추진 배경으로 떠오르면서 정 의원의 지역구 문제는 ‘서울 종로 이전설’에서 ‘부산지역 출마설’로 옮겨가기도 했다. 지역구도 타파를 ‘입’으로만 주창하지 말고 몸소 실천해 보이라는 구주류측의 반격이 나오면서 ‘부산 출마설’이 한동안 민주당 안팎에서 오르내렸던 것.
그러나 이 같은 ‘지역구 이전설’에 대해 정 의원측 인사들은 한결같이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지역구 이전설은) 지역민들에게 누를 끼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정 의원측 해명으로 한동안 사그라들던 지역구 이전설은 17대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이제는 정 의원 지역구에서부터 다시금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17대 총선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인사들과 그 지지자들 사이에서 “큰 정치를 해야 할 정 의원이 호남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며 “호남을 뛰어넘어 중앙 무대로 지역구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지역구 이전문제’가 유력한 차기주자 정동영 의원이 현재 안고 있는 ‘내우’(內憂)라면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과 민주당 내 구주류 인사들로부터 배척받고 있는 현 상황은 ‘외환’(外患)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민주당 신당 논의과정에 정 의원이 취한 모호한 태도로 인해 신주류 내부 인사들조차 “정 의원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비판하고 있는 상황은 향후 정 의원의 정치행보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 지난 5월28일 신당창당 워크샵에 참석한 정 의원(가운데)과 정대철 대표(왼쪽), 김원기 고문(오른쪽). 이종현 기자 | ||
일단 정치권에서는 ‘조급증’에서 그 원인을 찾는 인사가 적지 않다.
정 의원은 지난해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여타 후보들이 중도 사퇴하는 바람에 국민경선이 좌초할 위기에 처하자, 패배가 분명한 상황에서도 국민경선을 끝까지 완주함으로써 ‘아름다운 2위’로 기록된 바 있다.
‘경선 지킴이’로 자리매김된 정 의원은 후보단일화와 이후 대선 선거운동 기간에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을 맡아 맹활약, ‘포스트 노무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대선을 하루 앞두고 ‘정몽준 몽니’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고, 정작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개표일 저녁에는 민주당사에서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하고, 개혁당 사무실에서 노무현 당선자와 조우해야 했다.
정 의원은 대선 이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특사자격으로 참가한 것을 계기로 외교활동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5월과 6월에는 중국과 일본을 잇달아 방문했고, 오는 11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영국에서 열리는 진보정치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대선 이후 몇 차례 외교활동을 통해 차분히 차기 주자 이미지 구축에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정 의원의 당내 입지는 오히려 좁아진 형국이다. 정 의원은 민주당 신당 논의과정에 ‘제4세대 신당론’ 등을 주장하고 나서 추미애 의원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정 의원이 민주당 신당 논의에 개입한 뒤로, 민주당에서는 ‘정신천’(정동영 신기남 천정배)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신천’은 주로 ‘천신정’으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민주당 신주류 3인방을 지칭하고 있는 ‘천신정’은 유력 차기주자 정동영 의원을 신기남 천정배 의원 등과 ‘동급’으로 끌어내리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올해 초 다보스 포럼 참가 등 외교행보를 통해 구축해 놓은 차기 주자 이미지가 상당부분 훼손된 셈이다.
특히 ‘천신정’으로 언급된 세 사람 모두 차기를 노리는 예비 주자군이라는 점에서 국민경선 참여를 통해 정동영 의원이 누렸던 대선후보 선점 이미지도 상당부분 절감된 상태다.
또 지난 4·24재·보선 당시 개혁당 유시민 후보의 선대본부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기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반감을 산 것도 정 의원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작게는 유 후보의 지역구였던 고양 덕양갑 민주당 지구당 관계자들로부터 배척받은 것이지만, 크게 보면 전국의 민주당 기존 지지층에게도 적지 않은 ‘배신감’을 심어줬다는 평가다.
정 의원이 ‘지역구 이전문제’와 ‘신당 6적’ 등으로 몰려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기는 하지만, 현재 정 의원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 1위로 여권의 유력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그러나 대선은 앞으로 4년 5개월 이상 남아 있다. 17대 총선이라는 변수도 남아 있다. ‘위기’에 처한 정동영 의원이 분당까지 예고된 민주당 신당 논의 과정에 어떠한 행보로 현 상황을 돌파해 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