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빅4’ 관객 합쳐도 작년 ‘공조2’보다 적어…‘극장 문화’ 실종? 1000만 감독·배우 안일함 지적도
#팬데믹 때보다 더 고개 숙였다
대체 공휴일까지 포함된 올해 추석 연휴는 6일이었다. 유통가뿐만 아니라 여행 시장도 활기를 찾았다. 하지만 극장가는 예외였다.
9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박스오피스 집계 결과, 27일 개봉한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천박사)이 151만 2454명을 모아 1위를 차지했다. 같은 날 포문을 연 ‘1947 보스톤’이 73만 5556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배우 송강호가 주연을 맡은 ‘거미집’은 26만 5648명을 동원하며, 외국 공포 영화 ‘더 넌2’(26만 2489명)에도 밀린 4위에 그쳤다. 이들보다 약 일주일 먼저 개봉된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누적 관객 16만 4213명을 모으며 일찌감치 경쟁 대열에서 이탈했다.
소위 ‘빅4’라 불렸던 추석 극장가 한국 영화가 모은 관객 수(연휴 기간)는 도합 약 267만 7871명. 전성기 시절 영화 한 편이 동원하던 관객 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중이던 지난해 추석과 비교해보자. 당시 명절을 겨냥해 개봉된 한국 영화는 ‘공조2: 인터내셔날’이 유일하다. 불과 나흘 동안의 연휴였지만 이 영화가 모은 관객은 약 283만 명. 올해 추석 극장가에서 엿새 간 4편의 한국 영화가 모은 관객보다 많다. 지난해 추석 전 개봉했던 ‘육사오’(40만 3401명), ‘헌트’(10만 9336명) 등이 동원한 관객까지 고려하면 올해 극장가 관객 수와 격차가 더 벌어진다.
올해는 눈에 띄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콘텐츠가 없어서 이런 결과가 더 뼈아프다. 넷플릭스는 2021년 ‘오징어 게임’, 2022년 ‘수리남’을 앞세워 추석을 휩쓸었다. 올해는 배우 김남길이 주연을 맡은 ‘도적: 칼의 소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여기서 디즈니 플러스(+) ‘한강’, ‘최악의 악’ 등이 가세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는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극장가의 성적표가 형편없다는 것이 더 위기감을 키운다. 업계 내에서 “엿새의 연휴 동안 해외 나들이를 계획한 이들이 많아져서 극장을 찾는 발걸음이 더 줄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 근본적으로는 극장에 가는 문화 자체가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송강호 하정우로도 힘들다
‘1000만 관객’은 극장 흥행의 정점을 뜻한다. 이 때문에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배우는 흥행보증수표라 불렸다. 이들이 참여한 차기작은 ‘믿고 본다’는 분위기가 한동안 팽배했다. 하지만 이는 옛말이다.
오랜만에 신작 ‘1947 보스톤’을 선보인 강제규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로 1200만 관객을 모은 경험이 있다. 이외에도 ‘쉬리’와 ‘은행나무침대’ 등으로 한국 영화의 도약기를 다진 인물이다. 그러나 ‘1947 보스톤’으로는 100만 관객 동원도 빠듯해 보인다.
이런 상황은 지난여름 극장가에서 김용화 감독이 먼저 경험했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로 도합 2700만 관객을 모았던 김 감독은 신작 ‘더 문’으로 고작 51만 명을 극장으로 데려왔다. 반면 ‘콘크리트 유토피아’(384만 명)의 엄태화, ‘천박사’(151만 명)의 김성식 등 신진 감독들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달콤한 인생’ ‘밀정’ 등으로 평단과 관객을 두루 만족시켰던 김지운 감독도 통 힘을 쓰지 못했다. 앞서 선보였던 ‘인랑’(2018)에 이은 흥행 참패로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이란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1000만 배우들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여름과 추석 극장가에 줄지어 신작을 낸 하정우의 티켓파워도 예전 같지 않다. ‘비공식작전’으로 105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고, ‘1947 보스톤’은 현재까지 73만 관객을 동원했다. 두 영화의 제작비를 고려할 때 각각 1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게다가 ‘비공식작전’에는 배우 주지훈도 참여했다. 하정우·주지훈은 ‘신과 함께’의 또 다른 주역이다. 김용화 감독의 실패와 더불어 ‘신과 함께의 저주’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 문’의 주인공인 배우 도경수 역시 ‘신과 함께’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기생충’ ‘괴물’ 등 다양한 1000만 영화에 출연했던 송강호 역시 ‘거미집’으로는 관객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밀정’ ‘조용한 가족’ 등을 함께했던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의 재회로 화제를 모았지만 관객에게는 그리 매력적으로 작용하지 못한 셈이다.
이를 두고 1000만 감독들의 안일한 기획과 1000만 배우들의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연기 톤이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많은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작품을 남겼던 만큼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여기에 팬데믹을 거치며 스마트폰으로 OTT 콘텐츠를 즐기고, 비싼 티켓값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며 극장가는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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