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의 잇단 ‘허술행정’에 국민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중연 회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물론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허술행정’ 시리즈물로 워낙 유명했으니 말이다. 국가대표팀 사령탑 교체의 무리한 추진부터 비리 직원에 대한 징계와 질책은커녕, 포상을 했던 부분은 그나마 국내에서 벌어진 사태였으니 양해를 조금이나마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국제적인 망신은 참기 어렵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축구계의 최근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축구협회가 잘한 것은 없었다. 조광래 전 감독을 대신해 지휘봉을 잡은 최강희 감독의 국가대표팀이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계속 선전하고 있고, 홍명보호는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최초로 메달 획득의 쾌거를 이뤘다. 형님과 아우들이 모두 좋은 분위기를 연출해줬다. 그러나 이건 한순간의 달콤한 꿈에 불과했다.
박종우(부산 아이파크)가 런던올림픽 동메달결정전 한일전이 끝난 뒤 관중석에서 건네받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종이를 건네받고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세리머니를 하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이 ‘독도’를 정치적 문구로 해석했다. 동메달을 딴 웨일스 카디프를 떠나 런던으로 되돌아오는 길에서 “박종우를 시상식에서 제외하라”는 IOC 뜻이 전해졌다.
불편했지만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워낙 독도 문제가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양해해줄 수 있다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됐다. 그러나 이후에 보여준 축구협회는 번지수를 잘못 짚는 행동을 되풀이했다.
일본축구협회에 조중연 회장 명의의 이메일을 보내 “박종우가 스포츠 정신에 위배된 행위를 했다”는 취지로 사과를 했다. 축구협회는 “‘사과’라는 표현은 쓴 적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정작 이메일 전문은 공개하지 못했다. 정치권에서 먼저 이메일을 공개한 후에야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일본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는 양해 문구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 사과가 명백했다. 국민들은 굴욕감을 느꼈다. 거의 같은 시기, 축구협회 김주성 사무총장은 FIFA 본부가 있는 스위스를 방문해 관련 동영상과 각종 자료들을 제출하고 충분히 상황을 설명했다고는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특히 일본축구협회에 보낸 이메일 작성을 주도한 이는 김 총장이라 모든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파장은 국회까지 넘어갔다. 조 회장은 8월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에 출석해 십자 포화를 감내해야 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책임질 수 있느냐”는 연이은 질타에 마지못해 “어쩌면 책임질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앞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서처럼 결코 “책임을 통감하고 회장직을 내놓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책임질 수 있다”는 조 회장의 코멘트는 ‘물러나겠다’는 내용이 전혀 섞여있지 않았다. 그저 책임 회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국민의 눈높이와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대한축구협회의 운영은 이에 따라가지 못해 국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
조 회장의 입지는 다시 한 번 좁아졌다. 빠져나갈 구멍도 재고의 여지도 없다. 내년 1월 예정된 신임 회장선거에 조 회장의 재선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한 축구 원로는 “실추된 명예와 자존심을 모두 지킬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는데 왜 자꾸 먼 길을 돌아가려는지 통 모르겠다. 이쯤 상처를 받았으면 스스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뼈있는 지적을 했다. 정몽준 축구협회 명예회장도 이번 일로 완전히 조 회장에게 등을 돌렸다는 시선이 파다한 상황. 사과 이메일 사태 직후 엄청난 분노를 터뜨렸다는 전언도 있다.
이미 세 번째 사태다. 조광래 전 감독의 경질 때는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비리 직원 사태 때는 김진국 전무이사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썼다. 그런데도 최고 수장이자 결정권자는 별 움직임이 없다. 그저 자리를 지키려는 태도에 축구계 안팎의 공분을 사고 있을 뿐이다.
특히 조 전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잔여 연봉 문제도 매끄럽지 못하게 해결됐다. 국제 분쟁까지 벌였던 브라질 국적의 가마 전 국가대표팀 피지컬 코치에게는 꼼짝 없이 1차 계약기간인 올해 7월까지 잔여연봉을 지급하라는 대한상사중재원의 결론이 났다. 한심스러운 건 이뿐이 아니다. 국내 지도자들에게는 더욱 박했다. 박태하(서울), 서정원(수원), 김현태(인천) 등 조 전 감독과 운명을 함께했던 한국 코치들은 올해 7월까지이 잔여 연봉 전액을 받은 게 아니라 4개월 치밖에 받지 못했다.
당시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자진사퇴’가 아닌 축구협회의 ‘해고’를 받았기 때문에 무조건 잔여 급여는 받게 돼 있다. 법적으로 봐도 축구협회의 몰상식한 행정처리가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 한국 코치들이 이렇듯 비상식적인 축구협회 측 협상 요구에 따른 건 ‘돈 문제’로 가슴앓이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 전 감독도 런던올림픽 직전, 김주성 총장으로부터 ‘4개월 치만 받으시라’는 통보를 받은 뒤 크게 분노했다는 후문이다. 축구협회는 일부 언론들의 보도가 나오자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조 전 감독과는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문구에 문제가 있었다. ‘4개월 치 연봉 지급’을 ‘협의’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래저래 조 회장은 사상 최악의 임기 말을 보내고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