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비열한 교사 등 시대 흐름에 반하고 뻔한 전개 거듭…‘김순옥 월드’ 균열 조짐
임산부를 폭행하고 사람을 생매장해도 참고 봤다.(황후의 품격)
‘막장의 대가’라 불리는 김순옥 작가의 세계관에 동참한 시청자들은 인내했다. 왜일까. 그들은 외친다. “재미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연쇄살인마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고 해서 연쇄살인마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맥락으로 김 작가가 집필한 일련의 작품 속 캐릭터들이 온갖 악행을 일삼아도 대중의 적잖은 지지를 받았다. 이른바 ‘순옥적 허용’이다.
그런데 그 세계관이 흔들리고 있다. 김 작가가 시즌3까지 제작된 ‘펜트하우스’의 큰 성공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SBS 주말드라마 ‘7인의 탈출’의 성적이 신통치 않다. 6%로 시작한 시청률이 여전히 5∼7%를 오간다. 2회 만에 10%를 돌파한 ‘펜트하우스1’과 1회부터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거뒀던 ‘펜트하우스3’를 고려할 때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왜 ‘김순옥 월드’에 균열이 가는 것일까.
‘7인의 탈출’의 몇 장면을 보자. 고등학생인 한모네(이유비 분)는 학교 미술실에서 교복을 입은 채 출산한다. 그리고 한모네는 동급생인 방다미(정라엘 분)가 양아버지의 아이를 낳았다는 루머를 퍼뜨린다. 이 루머는 SNS를 통해 삽시간에 사실인양 둔갑해 방다미를 고립시킨다. 어릴 때 그를 버린 친엄마 금라희(황정음 분)는 딸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등 아동학대를 저지른다. 심지어 인분으로 고문하는 장면도 나온다. 김 작가답다.
그동안 김 작가는 온갖 자극적 설정과 장면으로 작품을 도배했다. 불륜과 치정은 기본이고, 살인과 이에 따른 사적 복수도 서슴지 않았다. 김 작가의 펜이 서슬퍼런 칼춤을 출 때마다 시청률 곡선도 요동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시청자들은 높은 시청률이 아니라 “‘7인의 탈출’을 징계해달라”는 민원으로 화답(?)했다. ‘7인의 탈출’ 방송 직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개연성과 맥락이 없다”는 분석만으로 ‘7인의 탈출’의 부진을 설명하기 부족하다. 김 작가의 앞선 작품들 역시 개연성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 ‘아내의 유혹’이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할 때, 대중은 이미 김 작가에게 “재미있으면 개연성은 없어도 된다”"는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다.
하지만 김 작가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과거 작품을 비롯해 ‘7인의 탈출’ 등은 상식에서 벗어난 내러티브를 반복하고 있다. 선인이 아니라 악인이 주인공이고, 그들이 주장하는 당위성에 더 귀 기울인다. ‘7인의 탈출’ 역시 ‘방다미의 실종에 연루된 7명의 악인들의 생존 투쟁과 이들을 응징하는 서사를 그린 피카레스크(악인이 주인공인 작품) 복수극’이라는 기획 의도를 선명히 드러낸다. 악인들이 연대해 잘못이 없는 이들을 괴롭힌다는 설정은 ‘펜트하우스’와 유사하다.
이는 최근 상식에서 벗어난 이들의 행동을 바로잡으려는 사회적 분위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비롯해 유력자들의 자녀들이 결부된 여러 학폭 사례 등을 보며 대중은 공분하고 “정의를 바로세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7인의 탈출’은 이런 사회적 공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전개로 스스로 공감을 걷어찼다.
‘7인의 탈출’의 또 다른 장면을 보자. 고등학교 교사인 고명지(조윤희 분)가 뇌물을 받는 장면이 삽입됐다. 이 장면을 두고 몇몇 현직 교사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 드라마의 온라인 게시판에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고, 한여름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서이초 진상규명!’을 매주 교사들이 절절하게 외쳤는데 현 시국에 뇌물 받는 교사를 묘사하는가”라고 꼬집었다.
김 작가의 안일한 대본도 대중이 등 돌린 이유다. 김 작가의 작품은 인기가 높다. 그만큼 그의 패턴은 이미 시청자들에게 읽혔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7인의 탈출’은 누명 씌우기, 악인이 승리하기, 죽은 줄 알았던 인물이 살아 돌아오기, 신분을 바꾸고 복수하기 등 뻔한 설정을 반복하고 있다. 김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아는 시청자들은 더 이상 ‘반전의 묘미’를 느끼지 못한다. 결국 ‘7인의 탈출’은 거듭된 성공에 도취한 김 작가와 그의 대본에 자극을 더해 시각적으로 옮기기 급급한 주동민 PD의 자기 발전 없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뒷북’식 방심위의 징계 역시 이런 드라마의 범람을 부추긴다. 김 작가의 앞선 작품들은 이미 방심위에서 법정 제재이자 중징계에 해당되는 주의 등을 받았다. 이는 향후 방송사 재승인·재허가 과정에서 감점 요인이 된다. 하지만 이를 편성하는 방송사들은 기꺼이 감수하는 분위기다. 왜일까. 방송되는 시점에 높은 시청률을 기반으로 광고 판매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라마는 이미 종영된 뒤다. 방송 윤리보다 방송 수익이 우선인 셈이다.
하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광고 판매가 미미하고 방심위에서는 중징계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 향후 방송사들은 달라진 행보를 보일 것이다. 분명 ‘순옥적 허용’의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김소리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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