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대상서 우승 주역으로…“한국시리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게 지금의 목표”
차 단장은 당시 김진성의 전화를 받고 “네가 김진성인데 무슨 입단 테스트냐”며 “검토해보고 연락주겠다”고 말했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김진성은 차 단장의 그 말 한 마디에 눈물을 쏟았다. 그때 김진성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약 LG에 입단한다면 단장님을 위해서라도 죽기 살기로 야구를 할 것’이라고 말이다.
2022시즌 김진성은 LG 유니폼을 입고 67경기 58이닝을 소화했고, 6승 3패 12홀드 평균자책점 3.10을 기록했다. 이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그는 2022년 12월 LG와 2년 7억 원에 사인하며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23시즌 김진성은 KBO리그 역대 우투수 최다인 한 시즌 80경기 출장 70.1이닝 5승 1패 4세이브 21홀드, 평균자책점 2.18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LG 팬들은 김진성을 ‘킹진성’으로 부르며 올시즌 LG에 김진성이 없었다면 어려운 시즌을 치렀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규시즌 최종전을 치른 다음 날인 10월 16일, 서울 송파의 한 스튜디오에서 김진성을 만났다.
#여전히 부담스러운 강타자 ‘양의지’
LG는 10월 1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홈 경기를 5-2로 승리하며 정규시즌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날 5-2 상황에서 9회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김진성. 김진성은 선두타자 강승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으나 김인태에게 안타, 박준영에게 볼넷을 내주면서 위기를 맞이한다.
이때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선수가 양의지. 만약 홈런이 나오면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김진성은 직구, 포크볼, 직구로 3루 땅볼을 유도했고, 병살타가 나오면서 경기가 종료됐다. 김진성은 양의지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내가 NC에 있을 때인 2013년 (양)의지한테 만루 홈런을 맞고 역전패당한 적이 있었다. 그날 경기 마치고 야구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올 시즌에도 의지한테 홈런을 맞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의지와 다시 맞붙기를 바랐는데 중요한 순간에 대타로 나오더라. 내심 복수(?)를 하고 싶었다. 포수 (허)도환 형의 볼 배합이 정말 좋았고, 도환 형 덕분에 의지를 병살타로 잡고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2013년 4월 26일 두산전에서 NC 마무리 투수 김진성은 9회 양의지한테 역전 만루 홈런을 허용하며 뼈아픈 패배를 경험했다. 이후 양의지가 FA를 통해 NC에 입단했을 때 김진성은 양의지와 배터리를 이루며 포수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한다. 양의지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으면 그의 리드대로 공을 던지면 됐기 때문이다.
“양의지한테 맞은 만루홈런의 충격이 컸지만 그 일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의지랑 NC에서 만났을 때는 리그 강타자 한 명과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고마움이 컸다. 투수한테 의지는 늘 부담스러운 타자이기 때문이다.”
#차명석 단장의 그 한마디
김진성은 어려운 환경에서 야구를 했다. 프로 입단 후 세 차례 방출을 경험했는데 202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룬 다음 2021시즌 마치고 NC에서 방출됐을 때의 충격이 가장 컸다고 한다. 그는 야구 선배들한테 부탁해 9개 팀 단장들 연락처를 받았고, 시간될 때마다 전화를 걸어 입단 테스트를 문의하게 된다.
“차명석 단장님께 전화드렸을 때는 내가 가족들과 캠핑을 가 있는 상황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캠핑장에서 즐거워하는데 난 그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다. 아내한테 이해를 구하고 캠핑장 밖으로 나와 용기를 내 차명석 단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단장님께 날 소개한 다음 입단 테스트를 받고 싶다고 했더니 대뜸 “김진성 선수가 왜 입단 테스트를 받아야 하느냐”면서 내부 논의 후 전화주겠다고 말씀하시더라. 전화 끊고 나서 어찌나 울컥하던지…. 단장님과는 어떤 인연도 없었는데 상대 팀 선수였던 내게 그렇게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LG에 입단하게 된다면 단장님한테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겠다고. 단장님이 김진성 영입은 정말 잘했다는 평가 받을 수 있도록 모든 걸 바치겠다고 말이다.”
김진성은 차명석 단장이 해준 말들이 자신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자존감이 떨어진 선수 입장에서 테스트 기회를 달라는 선수한테 자신감을 심어준 차 단장의 한마디가 지금의 김진성을 존재하게 만들었다는 것. 김진성은 자신이 어렵게 LG의 끈을 잡게 됐고, 그걸 도와준 사람들이 있기에 더 열심히 야구에 빠져 살았고, 그 결과 ‘킹진성’으로 LG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로 변모하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LG의 정규시즌 1위가 확정된 날, 김진성은 자신의 SNS에 차 단장에 대한 고마움을 직접 표현하기도 했다.
#38세의 나이에 리그 최다 출장 기록을!
김진성은 올 시즌 KBO리그에서 가장 많은 80경기에 출장했다. 그의 나이가 만 38세라는 걸 떠올리면 그가 얼마나 절치부심했을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최다 출장 기록보다 개인적으로 통산 100홀드, 600경기 출장을 기대했다고 말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어느 정도 던지면 600경기 출장은 달성하겠다 싶었다. 100홀드는 시즌 초반엔 필승조가 아니라 홀드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시즌이 거듭되면서 홀드 기회가 주어졌고, 9월에만 7홀드를 올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9월 27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KT와의 더블헤더 경기다. 그날 1,2차전 모두 등판해서 2홀드를 올렸다. 그 경기 연승으로 LG의 1위 확정 매직넘버를 6으로 만들었던 터라 잊을 수가 없고, 더블헤더 경기를 모두 소화했다는 점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날 마운드를 내려갈 때 LG 팬들이 ‘김진성 김진성’하면서 박수를 보냈다. 정말 소름이 돋은 순간이었다.”
김진성의 100홀드는 10월 5일 사직 롯데전에서 이뤄졌다. 당시 선발투수는 임찬규였고, 그의 13승이 걸려 있던 경기였다. 김진성은 FA를 앞둔 임찬규의 13승을 위해 마운드를 이어 받은 후 굉장히 집중해서 경기에 임했다고 말한다.
“지난해에는 내가 임찬규의 승을 날린 적이 있었는데 올 시즌에는 찬규가 남기고 내려간 주자들을 다 막았다. 농담 삼아 임찬규가 자동차 휠을 바꿔주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FA를 앞두고 찬규도 정규시즌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고, 나도 기대했던 기록들을 달성하고 한국시리즈 직행에 성공해 정말 큰 보람을 느낀다.”
김진성은 NC에서 통합 우승을 이룬 경험이 있다. KBO리그에선 정규시즌 우승보다 한국시리즈 우승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지금은 기쁨을 만끽하기보다 한국시리즈 대비에 집중해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그 감격을 맛보고 싶다고 말한다.
“NC를 떠나며 서운함도 컸지만 LG에서 베테랑의 가치, 진가를 입증한 것 같아 오히려 고마움을 느낀다. 나이 많은 선수가 왜 중요한지, 왜 필요한지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 후 샴페인을 터트리며 해피엔딩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는 게 지금의 목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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